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순 Nov 13. 2023

집의 방향  -마녀일기 11

          

눈을 감으면   

   

죽은 이들이 모래사막을 끌고 왔다 

발을 내딛으면 발목이 사라져 사막에 갇혔다 

손을 흔들자 검은 새들이 어디선가 솟아나 

난민들이 모여드는 국경 쪽으로 사라져갔다

     

사막이 바람 앞에 엎드려 목숨들을 묻을 때

사람들은 신의 목소리를 잊는 법을 배워 

인공지능 제품에 스마트한 예의를 갖췄다   

  

나에게 남은 건 지팡이 하나뿐 

아직도 심장 속에는 펄떡이는 귀가 있는가

     

죽은 이들의 말 조각들이 얼굴에 부딪혔다 

모래 속에서 그것들을 주워 올려 어루만졌다      


집은 어디로 가나요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우리는 모두 묻히나요

질문에서 붉은 눈물이 솟아나 울음 기둥이 되었다

     

이름 없는 무덤들을 사생아로 낳은 바람아 

나는 꿈인 듯 바보인 듯 마법 지팡이를 든 사람    

 

무심한 구름은 사막 위에서 언제 비가 되는가

숨은 별은 암흑 속에서 언제 나침반이 되는가  

   

속수무책과 오래 손잡은 회전초처럼     

묵묵부답에 잡혀 기울어진 자세로  

    

앞이 보이지 않는 모래폭풍 속

거친 숨소리 쪽으로 지팡이를 계속 휘둘렀다     


집은 어느 방향인가요 

거기에는 만년 전에 사라진 또 다른 신이 있나요

지친 눈동자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걸어올 때  

   

지팡이를 더 크게 휘두르자      


폭풍이 잦아들고 하얀 새 몇 마리 날아올라 

마지막 아껴 두었던 말은 발목뼈로 만든 것

조각조각 모래와 섞여

새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하얗게 튀어올라 

    

눈을 뜨면 

기적처럼  

    

방황하던 발목이 돌아오고

단단한 눈물 기둥이 홀연 

     

푸른빛 강줄기가 되어 우리 모두  

검은 손을 씻으며 강가에 짐을 부릴 것 같았다     


-시집 『크로노그래프』(여우난골, 2023)에 수록

이전 09화 오월의 레퀴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