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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순 Nov 13. 2023

오월의 레퀴엠

오월 속에서 죽은 사람들이 쏟아져요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묻힌 휘장 속에서, 전단을 뿌리듯 손을 내밀어요     

저 손들을 덥석 잡고 싶어요 무슨 사연인지 받아들고 싶어요 아이스크림 같은 잠일지 몰라요 계절 지난 꽃잎을 일기장 갈피에서 꺼내듯 메마르게 바스러지는 목숨들 우크라이나에서 미얀마에서 예멘에서 광주에서 제주에서 사월에서 오월에서 아무렇게나 쏟아져요

     

어떤 장면은 TV 뉴스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으로 쓰러지며 말을 잃고 어떤 장면은 영화 속 사람들이 신음을 흘리다 눈을 감아요 또 다른 장면, 바닥에 버려지는 사람들의 연속, 그들은 폭풍 같은 악몽 속에서 몸부림치다 서서히 잠잠해져요      


나는 저 손들을 보관할 병이 없는데 오월은 한 겹 두 겹 계속 쌓여가요 어떤 화해도 없이 태양의 흑점처럼 검어지는 계절, 죽은 자들이 퇴장 없이 계속 반복되는 무대, 신들은 이미 버려졌고 죽은 사람들도 계속 버려지는 무대

     

언제 얼굴을 들어야 할지 몰라 젖은 벌레처럼 구석에 웅크리다 나는 물어요 언제 깨어날까요 당신들은 새인가요 날아갈 곳이 없어 내게 국경을 묻는 건가요 박쥐의 동굴은 사나흘 더 가야 찾을 수 있는 아주 깊은 곳

     

오월이 나를 가두고 있는지 내가 오월을 가두고 있는지 욕조는 아이스크림 같아요 검은 잠이 계속 쏟아져요


-시집 『크로노그래프』(여우난골, 2023)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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