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그러니까 동사다
깨다 일어나다 가다 보다 앉다 서다 눕다 울다 들이
뭉치고 엉키는 자리에
꿈틀대다 치대다 우물거리다 씹다 내뱉다 걷다 삼키다 들이
해변 위 파도처럼 넘나든다
운명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시간 장치 속에 들어가 있으면
밤은 죽은 듯 활개치는 동사다
초침보다 더 빨리 어제 한 말을 후회하고
오늘 못다 한 말을 반성할 때
동사들이 쓸려오고 쓸려간다
가만히 있어도 밤이 우리를 움직인다
동사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합한 말
숨을 내쉬면 네가 썰물처럼 쓸려가고
숨을 들이쉬면 내가 너를 해변에 심어 놓는다
우리는 밀려갔다 밀려왔다 밀었다 당겼다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지구와 달처럼
우리 인력과 원심력을 밤에 슬피 쓰고 있다
쓴다, 라는 말은 내가 가장 아끼는 동사
너의 발자국과 나의 속눈썹도 모두 쓴다, 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지
우리는 파도의 심장을 달고
시간 속에서 서로를 철썩이다가
우리를 다 쓰기도 전에
파고를 서둘러 떠나는 심해 잠수정 같아
우리를 떠나 더 깊고 캄캄한 우리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밤의 동사들 그것이 우리인 거지
-시집 『크로노그래프』(여우난골, 2023)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