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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Oct 11. 2023

이중섭 전시회 일기

사진 출처:네이버 캡처   


 7 년여 동안 하드 디스크 속에 갇혀 지내던 미완의 ≪이중섭의 전시회 일기≫가 화룡점정을 찍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일필휘지를 소개해 본다.   

       


한 획 등뼈처럼 내리그은 화필 끝에

언 땅을 노려보는 잠들 수 없는 눈빛

삭혀도 되살아나는

어쩔 수 없는 멍울인가     

네 뿔이 이고 있는 군청(群靑)의 하늘 아래

주린 창자 안고 가는 흰옷 입은 이웃들과

뒤틀린 발자국 같은

배리(背理)의 길도 있었지     

나눠 지닌 궁핍 앞에 바람막이로 버티면서

묵묵히 네가 갈던 이 땅의 묵정밭에

오늘은 또 다른 문명이

짙은 그늘 딛고 섰다.    

  

-하순희(시조시인): <이중섭의 흰 소를 보며>   


            


 중학교 2학년 늦둥이 아들 방학 숙제 중 ‘부모와 함께 미술전시회 관람 후 감상문 쓰기’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현재 서울에서 개최하고 있는 종류를 검색하던 중 ‘이중섭 전시회’가 눈에 띄었다.

 세 명의 아이와 그들의 어머니들까지 여덟 명이 덕수궁 나들이를 나섰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일단 전체를 휘익 둘러보았다. 관람시간 계산을 위해서였다. 1, 2층으로 전시된 작품들은 익히 눈에 익은 소 그림이 주류였고, 작은 메모지나 은박지 등 쓴 글씨와 스케치 등이 전부여서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1시간 후 미술관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흩어졌다.


신혼부부 침실처럼 아늑하고 몽연한 조명아래,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이 나신인 듯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활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은밀한 애정의 늪을 창호지에 침 발라 낸 틈으로 숨죽여 엿보고 있던 그때, 누군가 나를 툭 건드렸다.

-허이, 깜짝이야!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아직 여기 계신 거예요? 저희는 다 둘러보고 내려왔는걸요.

-벌써요?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그러면 밖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얼른 훑어보고 갈게요.

 급한 마음에 1, 2관을 대충 훑고 2층 3, 4관으로 올라갔다. 진정한 엑기스는 거기 다 있는 듯했다. 한 점 한 점 눈을 맞추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서둘러 전시장을 나왔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밥 먹고, 덕수궁을 돌다 집으로 왔다.



 다음날, 아들을 등교시킨 후 바람난 여자처럼 다시 이중섭을 만나러 갔다. 어제 눈앞에서 절정을 놓쳤다. 타의에 의해 중지된 애욕이 터질 풍선처럼 부풀어 다시 오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는 밀실에서 온전한 오르가즘을 경험하고 싶었다.


 이른 오전의 미술관은 한적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신랑이 기다리고 있을 신방으로 들어갔다.

 “나의 가장 높고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나만의 오직 한사람, 건강하오?….“

 “그대처럼 멋지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오직 하나로 일치해서 서로 사랑하고, 둘이 한 덩어리가 되어… 참 인간이 되고….”

 “이제 곧 당신의 상냥한 당신의 모든 것을 포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만족스러워 혼자서 히죽거리고 있다오….”

 “당신의 모든 것을 만지고 싶소, 구석구석 빈틈없이….”


 '한 방에서 껴안고 뒹굴고 싶다. 잠자리를 하고 싶다, 당신의 보드라운 살결에 내 입을 맞추고 싶다….' 

 아내만 보라고 보낸 편지는 뜨거운 남자의 심볼이 용트림하는 기운까지 전해져…, 관음증 환자처럼 탐닉하며 전관을 돌았다.      


 민족적 비극인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산가족이 되고, 경제적 궁핍으로 그와 가족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떨어져 지냈다.

 “당신과 아이들과 소풍을 가고 싶다, 함께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하루빨리 돈 벌어 자전거 사줄게, 다 같이 모여, 가족이 다 함께 야유회 가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의 ‘sad ending’을 알고 작품을 접했던 탓일까, 감정 선이 무너져 내린 듯 쉴 새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수 시간여를 이중섭의 포로로 잡힌 채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 밖으로 나오니 한 여름 뙤약볕이 덕수궁을 가마솥처럼 달구고 있었다.

 탈진한 듯 가라앉은 몸을 미술관 기둥에 기대고,

저 멀리 청와대를 끼고 있는 북악산 하늘을 바라보았다.


 짧은 생애를 아내와 자식들을 그리워만 하다 저 세상으로 떠난,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이  마침내 위대한 예술로 승화되었다. 그 뜨거운 용암이 여전히 양분된 채 있는 민족에게 절규하듯 외치는 듯했다.

 “제발 한 민족으로 살라!”        

  


 아들이 전시회 감상문을 쓰고 있었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쓰니?”

 “엄마는 가장 크게 느낀 점이 뭐야?”

 “그러게.“

 “나는 이중섭을 왜 천재화가라고 부르는지, 그것을 주제로 쓰려고 해.”

 “왜지?”

 “그림을 그리다 보면 대상의 표정을 표현하기 엄청 어렵거든. 그런데 이중섭 그림들은 하나같이 강렬해. 

 특히 소의 표정들 봤지?

 '웃는 소, 선한 소, 기운이 넘치는 소, 싸움하는 소, 잔뜩 화난 소...'

  미술 시간 또는 학원에서, 원하는 표정을 담아내기 위해 수 없이 스케치하고 지우거든. 그런데 이중섭은 선 몇 번 긋는 것으로 다 표현해 낸 것 같았어. 그래서 천재라 고 하는 것 같아.”


 민족적 비분강개로 치닫던 감정이 아들의 촌평(寸評)에 눈 녹듯 사라졌다.

 ‘한 시간 만에 훑고 간 그들이 뭘 봤으랴, 현장에 몸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제발, 너희들이 세상을 바꿔주렴….”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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