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뵈는 게 없었지

2002년 X월 X일

by Ten

얼마 전에 아는 여자 사람 동생과 콘서트를 보러 갔다. 그리곤 차이나팩토리라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나 연애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요약하면 이렇다.

소개팅으로 사귀게 되어 주선자에게 보은을 하려고 약속을 잡았다. 당일에 남자친구가 야근을 하게 되어 식사시간이 거의 끝나서야 도착했다. 식사를 하지 않은 남자친구는 계산대에서 여자친구에게 "이거 내가 계산해야 돼?"라고 물었다. 기분이 상한 여자친구는 자기가 계산한다.
기념일에 맞춰 여자친구는 타미 힐피거에서 20만 원 정도 가디언을 사서 선물했다. 그리고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에서 제이에스티나 목걸이를 선물로 줬다. 그 목걸이는 도금으로 약 8만 원 정도 상당이었다. 여자친구는 26살이었고 남자친구는 32살이었다.

뭐, 둘 다 돈에 관련된 이야기긴 했다. 손편지나 소소한 선물을 받기 좋아하는 나는 비싼 선물을 주고 받음에 대해서 필요성을 잘 못 느끼는 편이긴 하다. 말하다 보니 예전에 만나던 여자친구가 헤어질 때 쯔음 나에게 이런 말을 한 게 기억난다. "네가 지금까지 해준 선물, 이전 남자친구가 해준 거에 절반도 안돼" 비싼 주얼리와 액세서리를 받다가 내가 주는 틴트나 물병, 찻잎 같은 것들이 마음에 차지 않았나 보다.


선물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내가 주고 싶은 선물과 상대방이 받고 싶은 선물이 다르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대학 동기 중 한 명은 참 예쁘고 집안도 좋은 여자와 사귀고 있다. 잘 사귀고 있냐고 하니 잘 사귀고 있긴 하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성격도 좋고 소소하고 예쁘고, 집안도 좋고 다 좋은데... 백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작년에만 백 선물로 1,000만 원을 썼어" 그 와중에 여자친구 개인이 산 백도 있으니 연간 2,000만 원은 백 값으로 들어간 것이라 하겠다.


된장녀, 김치녀, 허세남, 과시남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신상 백을 소유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생각과 신념을 바꾸라고 하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부질없는 짓일까! 신상 백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그 누가 삿대질을 할 수 있으랴! 그런 사람을 감당할 수 없다면 감당하는 관계가 되지 않으면 될 것이고, 감당할 수 있다면 열심히 사랑하고, 그녀가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맞다.


또 어떤 후배는 나이키 운동화를 정말 좋아한다. 운동화 수집이 취미이고, 사귀면 항상 커플 운동화를 신고 기념일에 운동화를 선물한다. 예전에 사귄 하이힐만 신는 여자친구에게 운동화를 선물했을 땐 좀 문제가 생겼다고는 들었다. 운동화를 신지도 않는 애인에게 왜 그런 선물을 주냐고 물으니 "선물은 무조건 +아니야? 어차피 공짜로 받는 건데 왜 자기가 받고 싶은 걸 받아? 주는 사람이 주고 싶은 걸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 듣다 보니 묘하게 설득된다. 덤으로 받은 건데 거기다 대고 내가 받고 싶은 걸 달라고 요구하거나 불평하는 것도 웃긴 일 같긴 하다. 그래도 본인이 주고 싶은 선물과 상대방이 받고 싶은 선물이 균형이 맞아야 싸울 일은 없어 보인다.


선물이라는 개념을 확장해 보면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욕구를 들어 주는 데에 현실적인 계산이 들어가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다. 돈은 그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곤 한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들어간다. 예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에게서 공황장애가 와서 길가에 앉아있으니 지금 당장 올 수 없냐는 전화가 왔다. 그 당시, 나는 새로운 부서에서 신입으로 눈치를 보던 때였다. 미리 신청을 한 것도 아니고 당일에 갑작스럽게 반차를 내는 상황은 용납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반차를 내지 못하였으나 서로 찝찝한 경험을 남기게 되었다.


왜 이런 계산을 하게 되는걸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집을 살 돈을 모아야 하고,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눈치 봐야 하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 등등 여러 가지 역할과 짐을 떠안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릴 때와 달리 실패하면 회복이 어려운 나이로 진입했기 때문일까?


그 스케일은 작지만 사실 학창시절에도, 역할과 짐은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눈에 뵈는 거 없이 퍼주고 사랑했다. 수업도 땡땡이치고, 막차 타고 바래다주고 수십 킬로를 새벽에 걸어오고 말이다. 돈이 없으면 일단 친구들에게 꿔서 데이트를 한다거나 선물을 산다거나 하고 말이다. 그런 무모함이 나이 들면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 같다.


현실적, 계산적인 사람의 매력은 준비가 철저하고, 생존에 탁월하다는 것이다.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에게선 인간적인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감성적인 사람의 매력은 끌림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감정적이고 퍼주는 사람에게선 현실적으로 생존이 불안정하다고 느끼게 된다. 뭐, 적당히가 좋다는 게 대부분 하는 말이다.


20대를 생각해보면 참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짝사랑의 고통에 인사불성으로 새벽 신촌 길바닥에 쓰러져 보기도 하고, 여자친구의 화를 풀어주고자 눈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 길바닥에서 6시간 동안 서있어 보기도 하고,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꿔서 맛있는 거 사주고, 선물해 주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어렸을 때나 그렇게 하지.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하지" 그런데 아이러니 한건 그 많은 사람들도 마음 한켠엔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을 만나기를 꿈꾼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현실감 있고 계산적인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결국 마음이 끌리는 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아닐까?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참 어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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