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X월
저녁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아는 여자동생이랑 압구정에서 술 한잔 하자는 거였다. 심심하던 참에 콜을 외쳤다. 이촌동에서 여자동생을 픽업하여 압구정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여자동생은 무용과 석사생으로 예쁘장하였다.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 이라고 할까나?
11시경, 그렇게 우리는 K5를 타고 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차 뒤편에서 검은색 람보르기니가 '부아아앙~~~"하는 굉음과 함께 지그재그로 요리조리 차를 비껴나가며 지랄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허세를 싫어하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미친놈.. 야밤에 저렇게 소음을 내고 저렇게 위험하게 운전을 하냐.. 사고 나면 어쩌려고..'
반면 운전을 하던 친구는 람보르기니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와! 진짜 멋있다! 저거 살려면 얼마 있어야 할까? 아 저거 운전하는 사람 누구지? 부럽다"
순간, 저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고 멋있어한다는 게 놀라웠다. 뭐, 이 친구와 정신적으로 친한 건 아니니 그래 왔던 애니 그렇구나 하고 그냥 넘어갔다.
근데 갑자기 조수석에 앉아있던 무용과 동생도 거드는 거다. "와! 완전 짱! 저거 타 보고 싶다! 저기 옆엔 누가 타고 있을까?"
순간, 얼마 전에 헤어졌던 여자친구가 떠올랐다. 분명 이 자리에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저 차를 함께 욕하고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나는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을 선망하며 사는 사람과 만나야 된다면 어찌 살아야 되나 싶은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흔한 사랑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거야"
말뿐 아니라 그림이나 영상으로도 나올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던 명언이다. 하지만 저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좋은 건 함께 보고, 슬픈 건 함께 나누고 그런 종류로 간단히 해석 했다고나 할까?
예전에 여자친구와 서로 책을 선물해 주고 그 자리에서 함께 읽어본 적이 있다. 여자친구는 내게 에세이 한 권을 선물해 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에는 특정 패턴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다분히 한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을 끄적거린다. 그래서 쓸모 없는 글이라 생각했다.
다 읽고 나서 이 얘기를 해줬다. "너무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써서 재미는 없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거 같아" 그러니깐 여자친구는 이런 말을 하더라. "그래? 나는 오히려 그런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들 때문에 읽는 건데... 나와 참 다르구나"
얼마 전부터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말의 의미는 뭘까에 대해 한참 동안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방향이란 게 혹시 신념이 아닐까? 같은 신념을 가져야 뭘 봐도 비슷한 관점으로 이해가 되기 때문에...
예를 들자면... 없는 살림에 돈 벌기보다 힘들게 대학원을 다니겠다는 아내의 말에 현실적인 이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배움'이라는 신념을 동일하게 느끼고, 그 신념에 맞춰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장하기'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
예를 들자면... 여자친구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면 단순히 그냥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어주는 게 아니라 달콤해서 좋아하는 건지, 차가워서 좋아하는 건지 알고 실제 나도 달콤함이나 차가움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행복하게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는 것.
내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신념을 가진 사람만 아니라면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는 건 행복한 일이다. 세상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볼 그녀와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