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인터넷에서 이상형 찾기라는 이벤트를 하고 있더라. 재미 삼아 생년월일과 이것저것 간단히 입력하고 나니 며칠 뒤에 이메일이 날라왔다. 어떤 여성분의 사진과 함께 말이다. 물론 신상정보는 블라인드가 된 상태로 =.= 뭐, 그분이 내 이상형인가봉가...
그러고선 듀X라는 곳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첨에는 그냥 생각 없다고 하고 끊었다가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연애가 끊긴지 좀 되기도 했고, 마침 바이 올리는 배우러 주말마다 강남에 가고 있던 터라 약속을 잡고 상담을 받기로 했다. 듀X가 강남역 옆에 있다는...
별 생각 없이 찾아간 곳에서 이런저런 상담을 했다. 뭐 상담이라기보다는 수다라고나 할까? 창업자가 특정대학교 출신이라서 같은 대학교 분들은 할인을 해준다고 하는데 할인을 받아도 100만 원이 넘어가니 뭐 가입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애초에 가입할 생각이 아니라 수다 떨러 간 거였으니 말이다. 비용을 듣곤 속으로 절레절레.. 그래도 난 아직 수백을 쓰면서 여자를 만나야 하는 그런 남자는 아니야 라는 핵존심을 발휘하며...=_=
인상 깊었던 건 처음 30분간 대화를 통해 내 성향을 파악하는 매니저의 전문성이었다. 아무래도 매일 사람을 만나고 성격이나 성향을 파악해서 매칭을 시켜주다 보니 사람 파악하는 일에 도가 트지 않았을까? 그래도 몇 분간의 대화를 통해 나를 쫘~악 파악하다니 소름이 끼친다면 끼친 일이다.
그 뒤에도 계속해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연말이라 마지막 할인을 하니 이 기회에 결제를 하라고 말이다. 너무나 티 나는 영업전화에 대놓고 물어봤다. "혹시 연말 인센티브 주는 프로모션 해요? 엄청 영업하시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영업하는 우리의 매니저 아주머니. 역시 한국 아주머니들은 강하다!
결혼정보업체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서글퍼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결혼 적령기 분들이 많이 가입하시니 그분들의 생각이 현실이겠지만 너무나 재고 따지는 게 많다. 그리고 그에 맞춰 비용을 지불하고 매칭이 되는 것도 뭔가 계급화된 느낌이다. 약육강식 혹은 경쟁력에 따라 대접받는 게 현실이라면 현실이겠지만 말이다. 의사인 친구 놈은 40만 원에 가입을 했다고 하는데 일반인 남자는 170만 원이고 여자는 190만 원인가 200만 원이 넘는다고 하니 이것부터가 서글프다.
여기 가입된 여자분들이 선호하는 남자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뭐 다 똑같지 않겠냐고 하신다. 키 크고 직업과 집안, 재력을 주로 본다는... 지금껏 꿀린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왠지 모르게 상담을 하면 할수록 전문직이 아니고, 금수저가 아니라는 것에 서글퍼짐을 느끼게 하는 게 인상적이다. 마술인가?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판사를 하는.. 변호사를 하는.. 의사.. 재력 1조 원이 넘는 회장의 딸.. 이런 얘기를 듣고 있자면... '그래서요? 전 일반인인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게 하는 분위기다. 뭐랄까 돈을 더 내면 당신도 전문직 배우자를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 제안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그렇게 3시간 정도 재밌게 수다를 떨고 나면 '가입하면 재밌기 하겠군!' 하는 생각에 잠시 빠지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선 매니저와 빠이빠이를 진행한다. 후에 계속되는 영업전화에 능청맞게 대처하곤 언제 다른 세상 이야기에 서글펐냐는 듯 친구들과 만나 내 현실에 맞춰 신나게 논다. 역시나 각자의 현실에서 각자의 역할과 재미가 있기 마련이다.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젠 내 나이가 결혼정보업체에서 전화가 엄청 오는 나이구나... '어렸을 땐 연애 못하는 찐따들이 가입하는 곳이 결혼정보업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타깃이 되고 보니 그런 건 아닌 거 같다는 합리화를 하게 된다. 이런 젝슨!, 뭐 그래도 연애결혼을 하든 중매결혼을 하든 결혼정보업체에서 만나서 하든 뭐가 중요하랴,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면 그게 바로 위너!
그런 의미에서 결혼정보업체도 뭐 나쁘지만은 않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