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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n Apr 03. 2016

#이게 다 헤밍웨이와 겔혼 때문이다

아마도 2014년

 내 여자친구는 매우 예쁘다. 내 눈에는 말이다. 내 눈에 그렇게 예뻐 보이는 여자친구이기에 27년 평생 한 번도 남자를 사귀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그녀가 소개팅 첫 만남에서 내게 적극적(?)으로 대시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알고보니 그게 참 오묘한 인연이었다.


  20일 정도 지난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처음 본 소개팅 남에게 조각 케이크 2조각을 선물 해주고, 헤어지고 난 뒤 먼저 톡까지 보낸 그녀. 내 눈에 예쁘게 보이고 이렇게 매너까지 좋은 여자에게 들이댄 남자가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휘몰아치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나한테만 처음으로 특별하게 대해줬다는 그녀)


 내 여자친구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긴 하다. 교육과 개인의 성장, 그리고 철학적인 생각에 관심이 많은 점이 유사하다. 사실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소개팅이나 처음 본 사람에게 한다면 공감대 형성이 어렵긴 하다. 보통 개콘이나 태양의 후예 등 가십거리로 유쾌하게 소개팅을 진행하는 게 일반적인 작업 방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항상 소개팅을 해도 상대방과 친밀한 대화를 하긴 어려웠다. 나도 그랬고 내 여자친구도 말이다.


 첫 만남에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헤어졌지만 여자친구는 내게 폭발적인 관심은 없었다고 한다. 젠장... 다만 나와 대화거리가 잘 맞았기에 이 사람은 자기가 이런저런 걸 물어봐도 오해하지 않고 답변을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알파고스러운 소개팅 남이었던건가봉가...


 첫 만남을 끝내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 그녀에게 먼저 문자가 왔다. 아까 말했던 헤밍웨이 관련된 영화 이름이 뭐냐고 묻는 톡이었다. 보통 관심이 없으면 여자가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난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오해를 했다. "이 여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나 보군" 그렇게 나는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고, 대화를 이어 가게 됐다.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트며 또 만나고 또 이야기하면서 결국 사귀게 됐다.


헤밍웨이를 좋아하던 여자친구는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헤밍웨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남자는 어디 없나.. 특히나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 근데 내가 우연찮게 첫 만남에서 독서가 취미라고 말했고, 그걸 들은 그녀는 헤밍웨이를 좋아한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여류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서프라이즈(MBC)에서 본 건지, 책에서 본 건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의 애인에 대해 어디에선가 접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시대에 여성이라는 차별, 여성작가라는 차별, 예술가의 애인이라는 꼬리표 등등으로 인정받지 못한 천재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어찌 됐든 그런 여류작가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 헤밍웨이와 겔혼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꽤 실력이 있었던 겔혼은 헤밍웨이의 시기와 질투로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작가다. 그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 거다.


 그런 영화도 있다는 걸 그녀에게 말해줬고, 그녀는 거기서 폭풍 관심을 갖게 되었다. 헤밍웨이에 대해 자신이 모르고 있던 내용을 접하니 자연스레 나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게 된 것이다. 내가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 그녀는 나에게 먼저 그 영화 제목이 뭐냐는 질문을 먼저 하지 않고,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호감이란 것, 그리고 시작이 되는 계기라는 건 참 사소하고 작은 것 같다. 상대방이 정말 관심 갖고 있던 것 중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포인트만 이야기해도 대화의 집중도는 크게 올라간다. 물론 그걸 어찌 알겠는가? 나도 소 뒷걸음질 치다가 보물상자를 발견한 거지...


 그런 생각이 든다. 잡학다식한게 이럴 때 쓸모가 있구나. 앞으로도 세상과 사람에 대해 많이 읽고, 보고, 듣고, 체험해야겠다. 소개팅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쾌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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