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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n Apr 29. 2020

아빠 오면 소개해 주려고 했지

인생이 시트콤 ep.02

캐다나에서 어학 연수 중이던 강군은 봉사활동 중이던 박물관에서 가방 털이를 당했다. 가방 털이로 지갑과 학생증까지 잃어버린 것도 억울한데 박물관 직원은 요거트를 떠 먹으며 “oh~ poor~” 따위 소리만 지껄였다. 강군은  차비도 챙겨주지 않는 직원을 뒤로 한 채 서러움을 안고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든 범인을 색출해 보고자 경찰에 연락해서, CCTV를 확인하려 했는데 이를 위해선 몇 일간 박물관을 여러 번 왔다갔다 해야 했다.  강군은 룸메이트였던 네덜란드인 친구에게 자전거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블라블라 내가 이런 일을 당해서) 혹시 자전거를 좀 빌려 줄 수 있어? 박물관을 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음.. 너 자전거 수신호 할 줄 알아? (블라블라) 음.. 미안한데  난 경찰 일에 연관되고 싶지 않아”

박물관 직원의 노배려에 1차 빡침을 느꼈던 강군은 룸메이트의 노배려에 2차 빡침을 느꼈다. 이래저래 정내미가 떨어진  채 타지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고 느낀 강군은 예정보다 1개월 빠르게 귀국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귀국하기로 결정한 날, 현지 동네에서 우연히 알게 된 김군으로부터 고민되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애초에 강군은 신문기자를 준비하고 있는 언론 고시생이었다. 그런데 국내 중견 언론사 국장으로 재직 중에  있는 김군의 아버님이 2달 뒤에 아들을 보러 캐나다로 오신다는 거였다.

“그래서 아빠 오면 형 소개해 주려고 했지”

강군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6월. 애초에 7월 말경에 귀국하여 1달간 토익 준비를 하고  2번 정도 토익을 본 후, 9월에 취업 원서를 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2개월을 기다리면 8월 말에 귀국하여 다음 날 바로 마지막 토익을 봐야 하는  일정이었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김군의 아버님을 만나 인턴 자리를 요청할 기회를 가져볼까?, 아니야, 토익 점수를 못 얻으면 취업 재수를 해야하니 불확실한 기회를 포기하고 토익 준비를 하는게 좋을까? 고민 끝에 강군은 2개월을 기다려 인턴 기회를 노려 보기로 결심했다.

2개월 뒤, 김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아빠 왔는데 여기 해안 도시니까 랍스터를 드시고 싶다는데 형이 아는 곳 있어?” 강군은 자기가 알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검색을 통해 해안가 근처 랍스터 식당을 찾아 메모한 후, 약속 장소로 서둘러 갔다.

김군의 아버님을 만난 강군은 인사 드린 후, 식당 안내길에 나섰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확인했던 길과 사뭇 다른 길에 강군은 혼란에 빠졌다. 허둥대던 강군은 어떻게든 식당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주변 캐나다인들에게 서투른 영어로 식당을 묻기 시작했다. 뛰어다니며 묻고 물은 결과, 천만다행으로 식당을 찾게 되었고, 아버님과 식사하는 자리를 갖게 됐다.

강군이 안 되는 영어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인상깊게 봤는지 김군의 아버지는 김군에게 강군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넌 이 형을 보고 배워야 해, 이 형은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야”

이 때다 싶었던 강군은 인턴 자리에 대해 슬쩍 물었다.
“제가 언론 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급이라도 좋으니 인턴을 하며 경험을 쌓고 싶은데 혹시 가능할까요?”
“음.. 우리 회사에 인턴 제도가 없어서 내가 답하기가 어렵네. 경력직으로만 채용하고 있거든. 미안하네”

결국 강군은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래, 내가 언제 언론사 국장님을 만나서 이야기 해 보겠어. 좋은 경험한거야’ 라며 자기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귀국 후, 일주일 쯤 지났을 무렵 김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 귀국 잘 했어? 아빠가 귀국 했으면 사무실에 한 번 놀러 오래” 무슨 일인지는 몰랐으나 강군은 사무실에 방문 했다. 강군을 본 김군의 아버님은 깜짝 놀랄 제안을 했다. “인턴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놨네”

그러나 이 언론사와 강군은 인연이 아니었던 것일까? 졸업 한 학기를 남겨 놓은 강군은 교수님들께 취업계를 내고 학교를 빠질 수 있는지 문의 했으나 6과목 교수님들 모두 불가 의견을 주시는 바람에 인턴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군의 아버님은 이 또한 배려해 주셨다. “그럼 우선 학교를 다니고, 인턴은 다음에 하도록 하지. 그리고 우리 신문사 말고, 더 큰 신문사를 우선 지원하도록 해 보게”  아버님께 감사를 표한 뒤, 강군은 학업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언론사를 준비 중이었으나 일반 기업도 병행해서 취업을 준비하던 강군은 운 좋게 중견 IT 기업에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이에 강군은 또 다시 고민 했다. ‘신문기자를 더 하고 싶지만 인턴이라... 그래도 해 보는 게 좋을까? 아니야, 취업하기 어려운데 정규직인 IT기업으로 가는 게 좋을거야!” 라고 합리화한 강군은 IT기업에 최종 입사를 결정했다.

몇 달 뒤, 김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김군, 잘 지내냐? 형 IT기업에 취업 했어”

핸드폰에서 김군의 답변이 들려왔다.
“어, 그래? 축하해 형, 근데 아빠가 형 오면 정규직 입사 시키려고 자리 만들어 놨었다고 하더라고”



짧은 생각_ https://kangsunseng.tistory.com/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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