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4.(최종) 사랑의 기술

부모님들께

by 강울이

대학교 마지막 학기, 저는 사회의 보호에서 벗어나 초년생으로 거듭되는 단계에 있습니다. 살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그 미지의 미래가 참으로 두려운 것 같습니다.


이는 현재의 부모님 세대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난 후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 와중에 생각나는 가족들을 위한 책임감. 그분들의 두려움은 잃을 것 없는 젊은 이들의 두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들과 자식들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글을 작성해보고자 합니다. 제 부모님만을 위해서가 아닌 친구들과 친구들의 부모님들을 위한 글. 이 글에서 오랜 기간 유지해왔던 삶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점에서 생각해보면 좋은 것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절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정답을 두고 가르치는 듯한 글이 아닌, 그저 소통의 창구로서 이 글을 소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모순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잘 살고 행복해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운이 좋고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잘 사는듯 합니다. 나는 얼마 먹지 않아도 살이 찌는데 유튜브에 나오는 어느 사람은 5-6인분 을 먹어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고는 합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을 횡령한 권략자가 죄에 비해 적은 형량을 선고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보고 사람들은 각기 다른 믿음을 가집니다. 그 권력자의 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불충분 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고, 판사와 모종의 커넥션으로 생긴 결과라 믿기도 합니다. 많이 먹는 유튜버의 신체 구조가 음식에서 칼로리를 흡수하는 비율이 적다고 믿 는 사람도 있고, 카메라가 꺼지고 난 후 엄청난 양의 운동을 한다고 믿는 사람도 존재합 니다.


- 이러한 모순은 왜 생기는 걸까요?


바로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 내에서는 이 사건의 결과는 이러이러 해야하지만 현실에서는 예상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 입니다. 결과가 달라진 이유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사 건으로 인해서 반전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숨겨진 사실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의견을 뒷받침하는 원인을 알아내기란 매우 어렵고도 불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세상의 모순을 무시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 모순의 진짜 무서움은 때론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나'에게 있는 모순이 더더욱 스스로를 힘들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평소 소비습관을 고치며 힘들게 차곡차곡 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은 맛있고 이쁜 것들을 먹고 즐기며 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 화려하게 소비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렇게 소비하면 서 살면 어떻게 나중을 살려고 그런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생각 없어 보이는 아둔함이 유쾌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사람은 그런 행동으로 자신보다 더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순간 자신이 돈을 이렇게 차곡차곡 모아야 한다는 믿음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깊게 생각하고 결정했던 내 행동들이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내가 하나하나 아껴 돈을 모으며 사는 것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멋진 곳에 여행을 가고 화려하게 사는 삶이 부러워지며 나도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 다 상상해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얼마까지 모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더 쉽고 빠르게 돈을 벌 방법은 없나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는 우리를 속이려 는 사람들에게 더더욱 노출시키는 원인이 될 뿐입니다.


나는 많은 돈을 가지고 싶어 돈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모순이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곤 돈을 모으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는, 실천하지 않는 욕구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싶다 라는 욕구 안에 숨어 있었던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더 커져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된 것입니다.


위 예시는 제가 한때 가졌던 생각과 경험을 조금 변형한 내용입니다. 저는 다음 두가지 사실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자신의 욕구를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 둘째, 자신의 행복과 실천의 주체가 스스로가 아닌 외부의 요소가 주가 되었다는 사실.


단편적인 것들을 보고 판단했으며 수많은 '단편'으로 저 사람은 나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 확신했습니다. 그 확신을 사용해 제 도전과 믿음을 포기하게끔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게 다가 아니고, 비교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위와 같은 흐름은 인생의 목표와 의미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잡았을 경우에 필연적으로 생깁니다. '돈', '아름다움(몸무게, 키, 이목구비의 조화)' 등등. 측정 가능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살게 되면 우리는 비교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되고, 상대가 나 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초점이 잡혀 행복과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나보다 나은 인생을 산 것인가요? 나보다 아름답거나 멋진 사람이 있다면 나보다 더 멋진 인생이라고 할 수 있나요?

넵! 농담입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목표와 의미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설정해야합니다. 측정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목적으로 삼아야합니다. 오롯이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들로부터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인생 목표는 '사랑'이다.


1. 사랑은 기술일까요?


유명 드라마나 로맨스 영화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게 죄는 아니잖아요.” 이 명대사는 사랑의 숭고함, 애절함을 나타내는듯 합니다. 드라마에선 말이죠. 하지만 어느 날 실제 상황에서 저 대사를 듣게 되었습니다. 같은 대사가 그날따라 예의 없고 상대방 입장에서 불쾌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랑 자체가 죄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그것이 ‘상대 입장에선 불쾌해질 수 있구나’ 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스피치 연습을 하기도 하고, 어떠한 일을 잘 다루기 위해 오랜 시간 기술을 배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깊게 사랑하기 위해 연습하는 시간을 가지진 않습니다. 사랑이라고 그저 마음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닙 니다. 상대방을 위해,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해주기 위해선 기술이 필요합니다.


젊을 때 많은 이성과 교제해라 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위 내용을 포함한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를 마냥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될까요? 만약 결혼을 하고 나서 쉽게 상대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요?


우리는 스스로의 사랑이란 감정을 자세히 드려다 보아야 합니다. 회피하면 안됩니다. 침묵이란 시간과, 고독함이 느껴질 때 술 마시는 행위 등으로 모른 척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문제는 어느 누구를 만나도, 언제까지나 지속될 테니까요. 예를 들어 ‘내 사랑은 이제 끝났어’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가정합시다. 혹시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 생긴 불만이 쌓이고 쌓여 생긴 생각은 아닌가요? 자신이 해주는 사랑에 비해서 기대 이상으로 사랑을 주지 않아 실망감을 느껴 그런 것 아닌가요? 나는 이만큼 잘났는데 상대방이 그에 못 미치는 것 같 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나요.


영화에서는 아름다운 사랑,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랑을 하는 듯 하고, 그것이 사랑인 것 같기도 합니다. 주인공을 위해서 알아서 착착 만족감을 채워주는 전개. 그러한 일들이 나에게 찾아왔으면 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기에 주는 간식 같은 것이 아니고, 내가 줬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대가성 물품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배우자나 이성 친구에게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기를 강요하며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위 내용은 싸움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싸우고 화해하며 성취감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건강한 관계를 만들 것입니다. 다만 혼자가 낫다, 대화가 안통한다는 식의 생각으로 결론을 내리거나 드라마속 주인공처럼 해주지 않냐 억지를 부리며 진짜 문제를 회피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문제가 아닌 내 안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기분이 나쁘지 않게 불만을 표현하거나, 진심을 통해 칭찬함으로서 상대방을 기쁘게 만들거나 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건강하게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 과정에서 모든 감정을 항시 다 표현해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참으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시간도 가지고. 때로는 용서 하고 친절을 베풀기도 하고, 명상이나 취미 활동으로 스트레스 해소하는 것 또한 매우 건강한 행동이죠.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와 맞서 싸우고, 다양한 해결 방식에서 취사 선택 하며 마치 게임을 플레이 하드 즐기며 사는 것. 그것이 인생 살아가는 재미이자 사랑하 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 나를 사랑하자.


일기를 작성하듯 말하기 형식으로 한 상황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좋은 글,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어제와는 다른 하루를 다짐하고 오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사랑을 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았으며 부지런하게 행동해 오늘 하루가 뿌듯하기만 합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점점 뿌듯함 은 무뎌져 가기만 하고, 여러 진상?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사랑을 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자 저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이 생겼고,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스스로에게 사랑은 주는 거니까, 참아야 어른인 거니까, 언젠간 그 사람도 내 진심을 알아 주겠지 생각하며 넘어갑니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가 밥 한끼 사달라고 장난을 쳤습니다. 평소 치던 장난이지만 그날따라 말투와 제스쳐가 유난히 오버스럽습니다. 그때, 내 머릿 속에는 감정의 회오리가 요동칩니다. ‘내가 호구로 보이나?’, ‘더이상 참는게 맞아?’, ‘더는 못 하겠어’. 폭발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곤 나는 친구에게 온갖 이야기를 다 합니다. 나는 많이 참았다고, 평소에 계속 밥 사달라고 장난치는 것 하나도 유쾌하지 않다고, 너 이렇게 예의가 없는 사람이냐고 말합니다.


위와 같은 상황은 생각보다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이야기 입니다. 넘어갔던 감정이, 참고 억눌렀던 감정이 사실은 사라진게 아니라 무의식 속에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숨어있던 감정들은 타인의 사소한 행동이 트리거가 되어 분출됩니다. 타인의 입장에선 당혹스럽고 난처하기만 합니다. 이 사건의 진짜 무서움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인지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과를 받기 위해, 억눌린 감정을 풀기위해 자신이 화를 내야만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방어기제로 스스로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소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고, 스스로를 탓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생각보다 인자하지 않고,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으며, 생각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것을 인정하면 때론 너그럽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때론 실수했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 입니다. 그러곤 깨닫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매력 있고, 생각보다 부지런하며, 생각보다 올바른 길로 나아가려는 사람이 바로 ‘나’ 라는 것을. 나 자신을 너무 미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나’와 함께해야 하니까요.


이렇듯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타인을 끊어내는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나 자신에 게 고통만을 주는 상대방을, 나를 위해 내칠 때에 적용하는 것이죠. 하지만 반대로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과거의 나’, ‘나와 함께 하며 서로 영향을 줬던 시간’을 사랑해 상대방을 용서하는 곳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나를 사랑하자’라는 말을 이기적이게 행동해도 된다라 고 이해해선 안됩니다. ‘나를 사랑하자’라는 말을 저 사람과의 순간적인 감정의 충돌로 관계를 끊어 내기 위한 변명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조차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자신의 마음조차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참 슬픈 일이니까요.


3. 내가 속한 집단을 사랑하자.


뉴스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면 우리나라는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듯합니다. 넘치는 거짓 뉴스부터 정치인들의 행태, 갖가지 사건 사고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망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들을 보면 아직까지 망하지 않은 나라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진짜 우리나라는 빠른 시일 내에 망하고 마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들에겐 우리나라가 얼마나 더 망가져야 망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기준으로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시작되었고, 언제 우리나라를 보고 망했다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봅시다. 고조선이 우리나라 시작인가요? 고구려, 백제, 신라 3개의 나라로 있었을 때? 아니면 일본에 의한 식민지 생활이 끝나고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가 기준인가요.


망한다의 기준이 그럼 무엇인가요? 북한에 의해서 수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국가에 경제 위기가 엄청 크게 찾아 왔을 때? 여러분이 언제를 기준으로 잡던 과거에는 크고 작은 경제 위기가 있었고 다양한 형태의 전쟁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을 기록하고 관련 경험들을 후대에 물려오며 똑같은 ‘우리나라’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먼 미래에 우리의 존재, 우리나라의 문화 등을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면 그때는 확실하게 우리나라가 망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우리가 들여다 봐야하는 진짜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잊혀지게 되고, 기억되지 않게 될까.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나’ 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따라올까.


저는 국민들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기 시작할 때, 잊혀짐과 붕괴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때, ‘국민’들에게 고통이 동반되기 시작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한 기업 내의 집단이나, 한 가정의 구성원들 끼리의 관계에서 나, 서로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집단은 해체되거나 붕괴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 구성원들이 매우 큰 고통을 받을 것이라 믿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내가 일하거나 번 돈의 일부를 가져가기도 하지만, 내가 힘들 때 도와주고 외부로부터 ‘나’를 지켜주기도 합니다. 덕분에 ‘밤’이라는 시간에 안전하게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기업이라는 집단은 나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만들며 괴롭히곤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론 행복했고 그 덕분에 먹고 살 수 있기도 하였고, 자식들을 키울 수 있게 기회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때론 싸우기도 하고 귀찮게도 하지만,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고 또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런 집단을 하나 둘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도대체 어디서 ‘나’를 찾을 수 있나요. 도대 체 누가 ‘나’를 기억해 줄까요. 모두에게 잊혀진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과 마찬가지인 살 아있는 지옥이 아닐까요.


우리는 집단 속에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곳을 벗어난다면 전기 하나, 불 하나 만들기 어려운 존재, 세상에서 약육강식의 세계로 돌아가 여러가지 질병이나 야 생동물들을 걱정하며 살아가야하는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지구 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기술력도, 모두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사회라는 것의 일부이지 않은가요. 점점 나이가 들수록 내가 속한 집단의 개수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몇개 남지 않은 자신의 집단을 사랑하고, 함께 나아가려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4. 사랑을 실천하자.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일입니다. 성인군자가 해야 하는 행동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생각한 모든 사랑을 실제로 실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듯 합니다. 저는 이것에 대한 저만의 정답을 종교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교이지만 절도 구경하고 교회도 구경하러 다니며 다양한 종교 모임에 참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 모임에서 느꼈던 감정은 소속감과 사랑이라는 감정이었습니다. 각 종교마다 그 색이 다르긴 하지만, 사랑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지만 제가 느끼기에 그 감정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깨끗한 마음가짐을 위해 의식이나 기도 같은 것을 하였습니다. 짧지만 매주 또는 매달 꾸준히 모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사랑의 실천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꾸준히, 급하지 않게 천천히, 진심으로 행동하는 것. 소속감과 사랑의 감정을 그 모임에 가지는 것. 친구를 만날 때에도, 가족을 만날 때에도. 이러한 감정을 가진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실천이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부터 제 ‘사랑’을 믿어보려 합니다. 사랑하며 살아가보려 합니다.


마치며.


부모님들과 친구들에게 이 글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글 한 문장 한 문장이 정말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예시를 들 때에도 공감할 수 있는 예시를 들어야 했고,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내용을 담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제 문장이나 내용이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떨까 걱정되기도 하였고, 이 글을 읽고 난 후 저를 싫어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이 사랑이고 실천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보고, 제 마음을 온전하게 전하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그리고 뭔가를 바라지 않고 온전히 줄 수 있는 것.


부모님들이 항상 주셨던 것 또한 이와 같은 것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인생을 등산이라고 생각했을 때, 저희는 이제 막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부모님들은 이제 하산을 준비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 오르신 산들이 너무나 멋진 산이기에 지나간 과거를 아쉬워 하시지 마시고 차분히 조심스럽게, 건강하게 앞으로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시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인생이란 정답이 없는 길이니 저희와 함께 대화도 하고 생각을 공유하며 차근차근 나아가 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간 정말 고생하셨고, 앞으로의 행복과 건강을 바라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글을 작성하고 프린트하여 친구들 부모님께 전달했었던 기억이 있네요.

지금와 읽어보면 맥락이나 목적도 이해가 잘 안가지만 이 리포트 내에 사랑이 들어있음은 아직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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