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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un 15. 2019

이발원과 아저씨

익선동 이발원과 대전청사 이발원

                    색깔통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원’



참... 이발원........ 

가본 지 백만 년은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단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다. 두발 검사 걸리면 가는 징벌형 부속실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직히 꼴도 보기 싫었다.


'우와앙~~~~~치지 지지 지지....'


톱날 돌아가는 바리깡 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쭈뼛 선다. 그래서 나는 미용실을 고를 때도 가급적 바리깡을 최대한 쓰지 않고 가위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능력 있는' 곳을 최우선으로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의 등굣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교 입구 앞에는 언제나 몽둥이를 든 선생과 완장을 찬 선도부가 게이트를 통과하는 학생들을 에워싸고서는 '어디 머리만 길어봐라' 잡아먹을 듯 한 눈으로 학생들 하나하나를 눈이 뚫어지게 쳐다봤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왠지 거기만 지나가면 모두 죄진 놈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교실로 쏜살같이 걸어간다. 이때, 


 "거기 너!!!!!!"


하고 찍히면 현장에서 즉시 두발 검사가 시작된다.


검사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손가락을 머리카락 사이에 넣고 손가락 위로 3센티미터가 넘어가면 걸리는 거다. 두 말 없이 현장에서 교사가 바리깡으로 걸린 학생 머리에 '고속도로'를 낸다. 도로 방향은 교사 마음이다.


밀리고 나면 두 말 없이 바리깡 이발소로 향한다. 체념하고 이발사 아저씨에게 머리를 내어준다. 단 3분 만에 반스님을 만들어준다. 밀린 것도 분한데 돈도 내야 한다. 눈물을 머금고 교실로 들어가면 담임 선생님에게 늦었다고 욕먹고, 걸렸다고 또 한 번 욕먹는다.


일타 쌍피.


국민학교 저학년 때 엄마 손 잡고 들어갔던 '익선동 이발원'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최초의 기억이다.


언젠가는 엄마가 혼자 한번 다녀와 보라 하여 갔더니 이발사 아저씨가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꼬마신사 멋지게 만들어주지' 하며 쓱싹쓱싹 머리를 금세 다듬더니 '어때? 맘에 들지?' 거울을 보여주고서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보내줬다. 걸 본 엄마는 이게 초가지붕이지 머리냐며 나를 끌고 이발원에 가서 노발대발 따지니, 자신감 넘치던 그분은 온데간데없고 얼굴 붉어진 뚱한 표정의 아저씨가 되어서는 입술을 삐쭉 내놓고 엄마의 입맛에 맞게 다시 고쳐줬다.


익선동 이발원은 내가 대학교를 마칠 때까지도 남아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발원 운영자가 건물주였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저씨 냄새.


어린 시절에도 그 앞에만 지나가면 약품내가 진동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직장 아저씨들이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들에게 머리를 맡기고 뒤로 누워져 있다시피 퍼져 있는 광경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면도크림이었다. 뜨거운 수건을 얼굴에서 벗겨낸 자리에 큰 붓으로 슥삭슥삭 하얀 생크림을 두껍게 발라, 기다란 면도날로 샥샥 과일 껍질을 도려내듯 돌려 깎는 모습이 내겐 제일 중요한 구경거리였다.


당장 내일 공식 행사의 사회를 봐야 하는 급한 사정이 생겨 시간 상 어쩔 수 없이 ‘이정수 미용실’을 뒤로 두고, 입사 이후  한번 출입해보지 않은 ‘청사 이용실’로 향했다. 하도 기계식 이발의 이미지가 뇌리에 박힌지라 내심 불안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들어가니 부부처럼 보이는 두 분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남자 주인장이 자리 앉으라 청하고 ‘어떻게 해드릴까요?’ 묻는다. 악. 담배냄새! 온몸에 담뱃재가 내 몸을 휘감는 것 같은 크 지독한 쩌든 내에 후회막심의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일어날 수도 없고...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고 있자니 주인장이 다 깎았단다.


“네 수고하셨어요. 머리는 어디서 감나요?”

“면도 안 하세요?”

“면도요?”

“네. 다 준비됐는데요?”

“면도... 아... 네...”


얼떨결에 대답하니 여성 주인장이 바통터치를 하며 의자를 눕힌다. 배에 두툼한 수건을 올려두고 손을 올려두란다. 그리고는 얼굴에 크림을 바른다. 그런데 그 옛날 크림은 아닌 것 같다. 젤 형태의 무언가인데 열촉발 기능이 있는지 얼굴이 조금씩 뜨거워진다. 여 주인장은 크림을 꼼꼼하게 바른 후에 따듯한 손수건을 얹어둔다. 잠시 기다리란다.


몸에 힘이 빠지고 긴장이 풀린다. 그래서 옆에 아저씨는 코를 골고 있구나. 그렇다. 칼을 쥔 누군가에게 내 목을 훤히 내놓는다는 건 완벽한 신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짓이다.


한 3분 정도 지나자 손수건이 벗겨지더니 다시 크림이 온 얼굴에 듬뿍 발라진다. 그리고, 어릴 적 봤던 바로 그 칼날이 눈 위를 번쩍 가른다. 주인장은 피부 마디마디를 손가락으로 잡아 피부의 모든 잔털까지 싹 밀어낸다.


츠츠측. 츠츠측.


눈썹, 이마 라인, 귀털, 귀 뒷부분까지 거의 아트의 경지로 면도 작업을 한다. 세세하게 날이 치고 들어올 때마다 정수리가 찌릿찌릿하다. 뇌파를 조종당하는 것 같다.


“네. 다 끝났습니다.”


어? 그런데 정작 코 밑은 면도를 안 해줬다? 원래 그러는가 싶어 ‘네 고맙습니다’하고 일어나 주섬주섬 외투와 가방을 챙기는 찰나, 다시 한번 면도날을 봤다.


‘현금으로 내야겠다’


구둣방까지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잠시 슬리퍼를 신고 앉아 있으니 구둣방 주인장이 가스불에 약을 녹이며 이리저리 물광을 내준다.


“주말에 어디 가세요?”

“아 네. 행사가 있어가지고...”

“깔끔하게 가셔야겠네.”


삼천 원으로 십 분 만에 새 구두가 되었다. 얼굴을 만져보니 정말 미끄러울 정도로 손가락 끝이 매끈하다. 미세먼지 부는 날에 머리 깎꼬, 면도하고, 구두 광 냈다.


나도 이제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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