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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ul 31. 2019

외할머니댁 가는 길

할머니와 호롱불

                                외할머니.



요즘 양성평등이라 해서 ‘외할머니’라는 말도 친족호칭 문제로 엮여 이래저래 한 것 같다만, 돌이켜보면 나는 정작 외할머니 앞에서 ‘외할머니’라고 불러본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냥 할머니.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따듯해지는 우리 할머니.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나에게 세상은 익선동과 그 밖으로 구분 지어졌다. 그밖에는 아빠 회사, 할머니 댁 이렇게 두 개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할머니 댁 가는 길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3호선을 타고 구파발 역에 가서 55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타고 가다 ‘두테비역’에서 내린다. 버스 타서 지나쳐도 반대편에서 다시 타면 되니 당황해하지 말 것, 도착해서는 바로 집으로 전화할 것.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는 방학 때면 혼자서도 쉽게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그곳엔 할머니가 차려주는 맛있는 대청마루 밥상이 있고, 골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알려주는 큰 형도 있었고, 고목나무 사슴벌레를 잡아주는 작은형도 있었고, 읍내에서 갓 사온 각종 최신 만화책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보는 동갑내기 사촌도 있었다. 심심할 틈이 없었다.

어릴 적 밤늦게 오줌이 마려우면 나는 형들 자는 틈새를 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어 나와 할머니를 깨웠다. “할머니 오줌 마려워요” 하면 할머니는 마루에 걸려있는 플래시 등을 켜고 나를 데리고 대문 밖 변소까지 길을 터 주셨다. 그리고는 내가 볼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밤바람 춥다시며 나를 포옥 감싸 안고 안채로 들어오셔서는 얼른 이불을 덮어주셨다. 나는 창가 위에 주렁주렁 걸린 메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버스가 40~50분 간격으로 있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갈 즈음이면, 할머니 손이 분주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절편과 신김치, 밑반찬, 참기름 이것저것 바리바리 비닐봉지에 몇 번이고 싸서 들고 가기 편하게 보자기에 담아 주셨다.

시멘트로 만든 작고 낡은 역 안 의자에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 주변의 강아지풀이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린다. “이거 엄마 갖다 줘라”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신다. “고맙습니다” 하면 또 할머니는 다른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뭉터기를 꺼내어 “이건 갈 때 뭐 사 먹어. 잃어버리지 말고 잘 갖고 가.” 하고 건네주신다.

스물한 살의 겨울, 엄마의 새벽 전화를 받고 그 걸음으로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할머니는 눈을 감으셨다. 할머니 손이 그렇게 거칠거칠했다는 걸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자식새끼 먹여 살리기 위해 온 몸을 사른다는 건 이런 것일까 하는 먹먹함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번 설에 올라가 내 방 한편에 있던 할머니 유품을 챙겨 왔다. 호롱이다. 컴컴한 밤 내 손을 잡고 빛으로 길을 터 주신 우리 할머니 손길이 묻어있다.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땐 이제 이 호롱불을 켜 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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