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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Aug 21. 2019

그림을 보려면 니가 그려봐 2

바이엘씨 그 동안 미안했습니다



바이엘이라. 한숨부터 나온다. 바이엘하면 일단 지겨운 생각부터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왜냐면 실제로 지겨우니까. 그 다음엔 체르니 100번, 30번, 40번으로 가겠지. 중간에 소나티네 앨범에 하농이 붙고 할텐데 이거 너무 뻔한 코스 아닌가.

“선생님. 근데 바이엘 중에서도 하 부분부터 시작하자고 하셨는데...그게 어떤 뭐가 있어서 그런가요?”

“자. 같이 한번 두 손 올려놓고 쳐볼까요? 그냥 도부터 도까지 왔다갔다 몇 번 같이 하죠. 한나~두울~세엣!”

네 손이 건반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반복하고 나더니 선생이 유심히 내 손을 본다.

“자. 보면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들립니다. 손가락은 그냥 건반을 누른다는 느낌으로 건반에 붙어 있어야 돼요. 힘이 들어간 거에요. 그 얘긴 뭐냐면...”

“뭔가요?”

“손가락 근육이 다 빠진 거에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근육 말고 피아노 치는 근육이 지금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요.”

“아.....”

영화 ‘싸움의 기술’이 생각났다. 극 중 백윤식이 싸움을 배우려는 학생과 함께 빨래를 돌려짜며 이런 대사를 읊는다.


싸움하는 근육은 따로 있는거야. 그래. 그 힘 들어가는 부분! 꽉 짜! 물기하나 없게~~」

“자. 두 손에 계란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손을 쥐어 보세요. 네. 그대~~~로 건반 위에 내려 놓으세요. 잠깐만요. 손목이 너무 내려갔어요. 이 상태에서 치면 또 힘이 들어가고 그러면 지금처럼 어깨까지 힘이 들어가죠. 손목은 내려놓은 손가락과 일직선이 되게 가지런히 두시면 되요.”

족히 30분은 손가락 교정만 봤다. 엄지를 누르면 약지가 들리고, 약지를 누르면 엄지가 들리고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선생은 계속 힘을 빼라는 주문을 했다. 좀 치고 있으려니,

“바이엘이 재미가 없는 건 그냥 치니까 재미가 없는 거에요.”

“그럼...뭐를 더...”

“자. 악보 앞에 보면 돌체라고 써 있죠? 정말 부드럽게 치는거에요. 여기보면 연음처리로 되어 있어요. 연음의 첫 음은 보통 세기로, 마지막 음은 약한 세기로. 이게 기본이에요. 강~약. 강~약. 악보대로 치는 겁니다. 보세요.”

바이엘씨. 그 동안 미안했습니다.

“바이엘은 세 가지를 잡고 갑니다. 기본자세, 손가락 근육 만들기, 악보대로 치기. 이것만 잡으면 됩니다.”

“근데요. 하농 같은 건 안치나요?”

“하농이요. 좋죠. 좋은데...저는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왜요?”

“음...테크닉 연습에는 도움이 되지만 문제는 단선율이라는 거에요. 너무 단조로워요. 바이엘도 힘든데 하농도 하면 정말 지칠 거에요. 테크닉 연습은 바이엘만으로도 충분해요.”

“음. 그렇군요...근데요 선생님.”

“네. 궁금하신 거 또 물어보세요.”

“그래도 트로이메라이는 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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