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약 Dec 30. 2019

아내의 가위질, 바느질, 뜨개질

복잡 미묘한 아기 물건

2017년 가을의 태교일기


꼬마 적, 난 저걸 무쇠가위라고 불렀다. 고모할머니는 저 가위로 세월 따라 억세어진 단단한 줄기 같은 당신의 손톱과 발톱을 잘라내곤 했다. 똑깍똑깍 소리에 물끄럼히 바라보고 있으면 할머니는 배시시 웃으며 "뭘 이런 걸 보고 있어" 멋쩍어하셨다. 30년이 지난 지금, 아내가 저 가위로 아기의 속싸개를 만들고 있다.





처음엔 아기신발, 그다음엔 모자, 오늘은 배냇저고리를 완성했다. 왼쪽 가슴에 태명을 뜻하는 '뿌리' 마크를 새겨 넣었다. 아들이 당장 품에 안길 것 같은 상상에 쭈뼛 머리칼이 선다.

손싸개, 발싸개, 베개도 곧 완성될 거다. 이렇게 남은 시간을 채워간다. 아기는 아는지 모르는지 꼬물꼬물 엄마의 배를 간지럽힌다. 가을 풀벌레 소리가 새벽을 가득 채운다.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의 쇼팽 야상곡이 하얀 천 위로 또르르 흘러간다.




‘아기 물건’이라는 건 참 복잡, 미묘, 다단하다. 아내가 지은 배냇저고리가 참 예쁘다 하는 찰나, 선배형이 아들이 전에 썼던 중한 물건들을 물려주며 옷 한 벌을 선물로 함께 주었다. 거기에 아내의 직장 동료들이 귀여운 수염 달린 쥐 모양 옷 한 벌을 선물로 주었다.

더 재미난 건 처남이 물려준 옷이다. 아내가 조카 태어날 때 선물로 준 것인데, 이제 조카는 장난감 자동차를 붕붕 몰고 다닐 나이가 되어 다시 처남에게 그 옷을 ‘돌려받는’ 셈이 되었다.

그런데 그 옷을 처남이 주는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처남댁이 주는 것이다. 대개 아기 물건에 대한 결정권은 엄마가 쥐고 있다. 아빠가 엄마 뜻에 따라 구입하면 그 순간으로 그 옷은 엄마 의사에 따라 향후 거취가 결정된다.

그래서 아빠들 사이에서는 “집사람이 누구 주기로 한 거라 그건 못 주고 다른 건 줄 수 있어”라든지, “집사람이 그 집 생각난다고 하면서 산 거야”라는 아내의 조항을 종종 붙이곤 한다.



아기 물건을 보면 그 집의 육아관도 알 수 있다. 당장 옷가지만 하더라도 그 집만의 스타일이 있는데 아가ㅇ만 입히는 집은 매우 스탠더드 한 편이라 일절 티비나 휴대폰 사용을 하지 않는다 한다. 반면 MLㅇ이나 NBㅇ 같은 힙합 전사로 입히는 집은 티비, 휴대폰, 게임기, 오디오까지 아기가 디지털 기계의 노출 범위가 굉장히 넓다. 또 캐릭터 위주의 귀염귀염한 옷들을 입히는 집은  아기와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곳들을 찾아다니기에 바쁘다.


물건에 담긴 스토리는 고마움의 표시를 할 때 요긴한 정보가 되어준다.


그동안 만들고 받은 옷을 뿌듯하게 지켜보는 아내를 바라본다. 나도 나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준비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피아니스트의 나비 채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