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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an 04. 2020

우리는 아직도 성냥에 불을 기댄다.

LED 시대에도 촛불잔치는 열린다.


“불 좀 붙딥시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첫 대사이다.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어 종이갑 붉은 옆줄에 착 붙여 밀면 ‘훅’ 하고 불이 솟는다.

치이익..... 스.... 읍.

굳게 다문 입술, 담배와 심지와 불이 만나 지글지글 타오르는 소리. 입으로 꿀떡 연기를 삼키고 나면 서서히 휘발 냄새가 피어오르며 자글자글한 불길이 담뱃속을 타고 오른다.

‘띵’ 소리를 내며 쏙 하고 파란불이 고개를 내미는 금색 라이터가 흡연의 판을 뒤집어도, 여전히 가스불보다는 유황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수한 불맛이 당긴단다.

‘성냥애연가’들은 밥 먹고 식당 나오는 카운터에 성냥갑이라도 보일 참이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사장님. 성냥 좀 가져갈게요” 하며 게눈 감추듯 세네개를 주머니에 꾹 찔러 넣는다.


나가기 무섭게 ‘츄악’ 날카로운 불을 훨훨훨 일으켜 세워 한 손으로 바람막을 친다. 조심스레 불과 입을 맞추고는 검게 그을린 성냥개비를 두어 번 흔들어 끄고 나서는 입안에 머금은 연기를 후아하고 날려 보낸다.


“초는 큰 거 작은 거 몇 개 드릴까요?”



케이크 박스에 담긴 초 옆에는 항상 기다란 성냥이 붙어있다. 생일 축하에 앞서, 제일 먼저 전기불을 끈다. 온통 암흑 속에서 성냥개비에 불을 그어 초에서 초로, 그다음 초로 이어 붙인다. 박수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나면 주인공은 후우 하고 불빛을 날려 보내는 것으로 또 한 번 태어난다.

어릴 적, 집집마다 성냥은 필수품이었다. 플래시 등도 분명 있었지만 혹시라도 배터리가 나갈 것을 대비해 두툼한 8각형의 UN성냥이 찬장이나 장롱 위에 하나씩은 꼭 있었다. 커다란 하얀 초와 함께.


그때는 예고도 없이 정전이 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럼 플래시 등도 켜고 촛불도 켜서 집안을 밝히고 나서 아빠나 엄마가 밖으로 나가 우리 집만 전기나 나간 것인지 아니면 동네 전체가 다 나간 것인지 확인하곤 했었다.


불이 나지 않게 조심히 성냥을 그어 촛불에 불을 옮기고, 또 다른 초에 불을 나누어 담아 집안 곳곳에 두면 그런대로 공간과 물건의 식별이 가능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2020. 우리는 아직도 '진짜불'을 놓지 않고 있다.



백만 년 전 인류와 지금의 인류의 지능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여러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어두운 동굴 속, 이번 한 해도 살아남았음을 감사하며 쏘시개로 모닥불의 불씨를 키워가며 두 손을 쬐던 그 누군가의 기억이 초에서 초로, 그다음 초로 이어져 지금 우리의 가슴속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간편한 불을 놔두고 기꺼이 성냥개비를 집어 들어 옛불을 되살려내어 신성한 의식을 치른다는 것. 전기가 만들어 낸 복잡다단한 세상 속에서,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각별한 영역 존재함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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