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절대적 기준에서의 내 시간은 감소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회사-집-아이-생활의 소용돌이에 우어어 쓸려가면 거의 없다고 보면 맞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첫째 당신이 결혼을 하고 나서 묻는 건지,
둘째 아기가 태어나고서 묻는 건지.
니가 결혼하고 애 낳고 살아봐야 알지. 백번 말해 뭐하냐.
엄마아빠가 허구언날 달고 사는 그 핀잔, 어쩌면 그게 답일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남긴다.
우선, 결혼부터하고 나서 묻는 게 맞다.평생 내 몸 하나 건사하려고 발버둥 치다가 갑자기 두 사람이 한 집에 들어가한 마음, 한 팀이 되어 살림을 차리고 방귀 트고 다 까놓고 살아보면 깨닫는 바가 하나 있다. 시공간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여기서 내 시간이라는 개념은 변화를 겪으며 분절 내지는 융합을 거쳐 새로 탄생한다. 이른바 상대적 개념의 '내 시간'이다.꼭 나 혼자 뭘 해야만이 내 시간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영화를 보던 여행을 가던 그것까지도 내 시간의 개념으로 확장된다.(끝까지 부정하겠다면 이제 싸움으로 간다.)
부부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면 내 시간은 더 넓고 깊은 영역으로 나아간다. 부부의 연에서 피로 맺은 연, 즉 혈맹의 세계로 진입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본 남자라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저 평범한 가정의 남자라면, 아이를 품에 안고 먹이고 재우고 놀아준 남자라면, 머릿속에 한 가지 다짐이 아로새겨진다.
만약 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경우, 내 목숨과 바꿔야 한다면 주저 없이 내어 준다.
내 아이를 얻는다는 건, 그리고 그 곁에서 내가 함께 한다는 건, 세상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신비롭고 감격스러운 경험이다. 이 경건한 세상 앞에 내 시간은 자연스레 가족의 시간으로까지 번진다. (부정하면 매우 기나긴 인생의 싸움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내 시간'은 크게 세 가지로 펼쳐진다.
1. 온전히 나만의 시간
2. 부부만 함께하는 시간
3.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
1번.
인간이 365일 내내 모두를 안고 살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이란 건 여전히 필요하긴 하다. 목욕탕에 가서 늘어져 있던, 집 앞 커피숍에 가서 신문을 보던, 모두 자는 밤에 게임을 하던, 달이나 보며 위스키 한잔을 하던 뭘 하던 간에 말이다. 조금은 예외 상황이지만, 술자리 좋아하고 술친구 없이 못 사는 남자에게는 그 시간이 내 시간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기 때문에 그걸 빼앗으면 아마 술병 대신 우울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
1번은 스스로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자는 아침 새벽, 모두가 잠자리에 든 늦은 밤, 아니면 애가 자고 있는 동안의 시간을 활용하면 된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조금 더 늦게 자면 된다. 약 1시간에서 길면 2시간. 그것밖에 안되냐고 할 수 있지 모르지만 사람이 궁하면 통한다고 흥청망청 시절보다 더 소중하게 잘 쓴다.
아. 술자리. '공적' 회식(환영회, 환송회, 단합회 등) 또는 배우자에게 승인받은 술자리가 아니면 나머지는 스케줄 목록에서 싹 지워라.
2번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양가가 근처에 있어 육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좀 나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오로지 부부만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면, 서로가 감내하고 배려하면서 가끔 주어지는 몇 안 되는 시간을 감사히 여기며 써야 한다.
3번.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단,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설명을 더 한다.
자기애가 강한 남자.
이 유형의 남자는 가족도 타인으로 뇌에서 자동적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그 스스로 ‘내 시간’의 범주에 넣기 쉽지 않다. 그는 선택을 해야 한다.
애 보기 싫으면 배우자와 대판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안 보면 된다. 단, 그에 따른 현재와 훗날의 대가는 기꺼이 치르겠다는 책임 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자식이 훗날 본인을 썩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섭섭한 감정에 대해서도 감내하면 된다.
에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가냐고 묻는다면, 3번에 대한실사례로 부드럽게 한번 살펴보자.
사실 애를 볼 때도 세밀하게 관찰하면 분명 자기 시간(1번)이 보인다. 예를 들면 엄마아빠가 동시에 애를 보다 보면 잠시나마 어느 한쪽에 붙어 신나게 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면 나 혼자 보더라도 애가 무언가에 엄청 집중해서 뚝딱뚝딱 뭔가를 할 때가 있다. 그런 때 옆에서 생각나는 글을 쓰거나, 한 곡이라도 피아노를 치거나, 신문을 보거나, 누워있거나, 풋샵을 하거나, 그 간 못치웠던 서랍장을 정리하거나 그러면 된다.
심지어 애랑 이거 저거 하며 놀면서도 아 이거 재미있구나 하며 같이 하다 보면 3번의 내 시간이 1번의 내 시간과 같아지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특히애들 장난감을 갖고 놀다 보면 생각보다 재미난 것들이 수두룩 하다. (블록 쌓기, 기차놀이 이런 걸 하다 보면 나도 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엔 1번, 2번, 3번이 떨어졌다 붙었다, 섞이고 풀리고를 반복하면서 내 시간이라는 것은 이것이요 딱 칼로 자르듯 정의 내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