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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an 20. 2020

처가 문중 선산에는 '서울 할아버지'가 계신다.

82년생 종손의 아들



1년 전 새벽, 처 조모님께서 돌아가셨다. 아내는 애를 데리고 아침 기차로 부리나케 내려가고, 나는 서울 일정을 서둘러 마치고 대전집에 들러 옷가지며 아기 물건들을 챙겨 광주행 버스를 탔다.

창틀에 턱을 괴고 스쳐가는 풍경들을 밀고 밀었다. 한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기 무섭게, 다른 한 사람의 영면을 추도한다는 건 인간사 당연한 순환 같으면서도, 생자와 망자가 결국은 같은 우주의 선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긴 생각에 잠긴 채 담담히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내 나이 스물한 살, 집안의 마지막 큰 어른이었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발인날이 되자, 할머니는 어마어마한 꽃상여를 타신 채 동네 주민들의 행렬을 따라 마을 어귀와 논밭을 돌고, 수백 장의 사잣돈을 즈려밟으며 저승으로 가셨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본다는 것, 나로서는 참으로 고결한 경험이었다.

집안의 큰 어른이 영면에 드심으로써, 그 간 드문드문했던 혈육의 모든 끈과 그 각각의 끈이 쥔 다른 끈까지 모두 한 공간으로 수렴토록 하는 거대한 행사가 열린다. 근 20년 만에 맞는 집안의 큰 장례식, 그리고 사위로서 참여하는 첫 근조인지라 생경하기까지하다.

‘호상’의 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다. 혈육지간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한데 모여 왁자지껄 짹짹대며 검고 어두운 식장에 밝은 불이 되어준다. 어른들은 아이들 이야기를 꽃피우며 누가누가 닮았는가를 둥가둥가 업고서 다음 세대의 시작을 통해 마음의 위안과 희망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오늘은 처 조모님의 첫 기일이었다. 족히 스무 명은 넘는 대가족이 광주집에 모였다.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은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들과 함께 나주의 반남박씨 선산에 가서 성묘를 드렸다. 강씨 집안 아기가 박씨 문중 선산을 찾아왔다고 껄껄껄 어른들이 좋아하셨다.

가장 볕이 잘 드는 맨 위에서부터 8대, 6대, 4대, 3대, 2대 순으로 조상님이 자리를 트고 계시다. 선산 앞으로는 넉넉히 논밭이 펼쳐져 있고 맨 밑 경계점에는 푸른 대나무 숲을 가꾸어 보기에 참 편안하다.



모두가 8대 할아버님을 "서울할아버지"라 칭하여 아내가 그 연유를 물으니 어른들 왈 할머님이 서울에서 시집을 와서 그리 부른다고 했다. 그 시절 서울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오셨을까 하니 벼슬하던 남편을 따라 낙향한 모양이다 하신다.


문득 나는 훗날 무슨 할아버지로 불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에 둥지를 틀었으니 '대전할아버지'인가, 아니면 서울에서 한참 살다가 내려왔으니 서울을 연고로 '서울할아버지'인가 떠올리다가도, 내가 '낙향'하는 최종지를 붙여 불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 문제는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구나 싶어 고민의 스위치를 내렸다.



아들은 "이거 뭐야?"만 하면서 낙엽이고 솔방울이고 줍고 다니기 바쁘다. 요 장난꾸러기 녀석은 할아버지, 엄마, 아빠 품을 번갈아가며 선산에 잠들어 계신 선조들에게 모두 인사를 드리고 왔다.

제사는 생전 할머님의 신앙에 따라 기독교식으로 지냈다. 사도신경을 외우고 찬송가, 증언, 축도 식으로 지내는데 사십 평생 처음 보는 나로서는 굉장히 어색했다. 아들 역시 이게 뭔가 하고 엄마품에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또 "이거 뭐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어머님은 그 바쁘신 와중에 식구들의 끼니를 푸짐하게 준비하셨다. 흑산도 홍어가 적당히 삭아 톡 쏘는 그 맛이 입안을 얼얼하게 한다. 나는 삼합보다 홍어만 먹는 게 훨씬 좋다. 본연의 맛. 제사는 안 지내도 제사음식은 풍족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내 아들이었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가 오늘 일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밥 먹고 빽빽 소리 지르고 춤추며 족히 세 시간을 뛰어다녔다. 어른들 왈 박씨 집안에는 저런 캐릭터가 없는데 강씨 쪽이 아니냐 물어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도 된다고도 했다.

이 녀석이 앞으로 박씨 집안의 많은 것을 보고 배웠으면 한다. 자고로 처가에서 큰 아이가 마음이 밝고 넓은 법이라 아버님어머님과 오래도록 여러 추억을 만들어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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