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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an 05. 2020

내 아들의 고향은 서울 말고 대전

82년생 종손의 아들



“자긴 그냥 밖에 있어.”
“왜???”
“남자들 애 낳는 거 보고 실신하는 사람도 많대.”
“아니 내 자식 낳는 걸 보는데 무슨 실신까지 하지?”
“뭐 징그럽다고 하던데? 토하는 사람도 있대. 괜찮겠어?”
“그 사람들은 날개 달린 캐릭터 아기가 나올 줄 알고 들어갔나 보지?”

나는 무조건 분만실에 들어갈 테니 그리 알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기를 낳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부터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는 모든 과정을 다 내 눈으로 볼 거라고 했다. 엄연히 지구의 한 생물로서 자신의 새끼를 맞이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렇게 아기의 탄생을 기다렸다.  

출산예정일로부터 열흘이 흘렀다. 이제는 아기가 나올 때가 되었다는 의사의 말에 아내는 그 날로 대전의 한 병원 분만대기실에 입원했다.

아내는 유도분만 링거를 맞았다. 그래도 아기 문은 좀처럼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일을 기약하자 하며 돌아갔다. 링거를 빼자 극도의 고통을 호소하던 아내가 언제 그랬냐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우리는 티비를 보며 갸웃갸웃했다.


내일은 아기가 나올까?


아침이 되자마자 양수가 터졌다. 다시 링거를 꽂았다. 아내는 온갖 아픔이 밀려오는지 거의 데굴데굴 구르다 싶더니 나중엔 나도 거슬리는지 아예 밖에 나가라고 했다. 여전히 아기 문은 열릴 생각을 안 했다. 속이 타 들어갔다. 양가에서 전화가 쏟아졌다. 그렇게 네 시간이 지났을까. 아내가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서는 의사를 불러달란다. 더 이상 힘들어서 못 버티겠다고. 그냥 제왕 절개하자고.

의사가 상태를 보더니 말렸다.

이제 아기 문이 열리고 있다. 조금만 더 기운 내라. 자연분만할 수 있다.


정말 순식간에 아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오후 1시. 아내는 급히 분만실로 옮겨갔다. “아버님 들어오실 거예요?” 묻는 간호사의 말에 냉큼 옷을 차려입고 따라 들어갔다. 힘주라는 의사와 간호사의 말에 아내는 이마의 힘줄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손에 꼭 쥐고 있는 쇠받침대가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이 ‘젖 먹던 힘’까지 다 쥐어짜며 악을 썼다.



2018.1.5. 오후 1시 20분.


아들은 그렇게 15분 만에 세상에 나왔다. 탁탁 아기 엉덩이를 두 번 치고 나니 곧 우렁찬 울음소리가 분만실을 가득 채웠다. 나는 가위를 받아 아들의 탯줄을 잘랐다. 간호사는 능숙하게 아기의 배꼽을 만들어서는 체중을 쟀다. 3.3kg. 정상이었다. 아들이 내 품으로 쏙 하고 안겼다. 옆에서 눈코입귀 손가락 발가락 다 확인하라고 한다.


다 정상이구나. 나를 보고 있구나.


아내에게 다가가 아들을 안겨줬다. 아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아기, 내 아기” 그 조그마한 생명체를 가슴에 얹고서 꼬옥 쓰다듬었다. 셋이 한번 같이 안아보자. 내 그렁그렁한 눈에서 주르르 기쁨 흘렸다.




다음 날, 나는 구청에서 가서 출생신고를 했다. 출생지는 대전광역시. 내 아들의 고향은 서울이 아니라 대전이다. 대전을 중심 터로 삼아 성장할 것이다. 치열한 각축의 장 중원 땅이 아닌, 넉넉한 형주의 땅에서 수많은 명사들과 함께 둥글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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