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이야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119.
앰뷸런스라는 걸 처음 타면 현실감이 없습니다.
들것에 들려 너른 차 뒷문으로 실려 가는 환자를 따라 허리를 굽신 숙이고 훌쩍 올라 타 앉으면, 오래지 않아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 거죠. 하얀 형광등 불빛이 차 안으로 가득 퍼진 것이 흡사 천국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부르고, 일으켜 세우는 시선을 따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봐왔던 앰뷸런스의 내부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칸칸이 나뉜 아크릴 서랍마다 갖가지 응급 도구들이 채워진 채 벽면을 가득 메운 차 안은 마치 80인치 FULL HD TV 속 4D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그 탓에 죽을 듯한 환자의 안위는 금세 잊어버립니다. 내 삶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 삼십 년 이상의 - 예측 탓으로, 이건 확실히 꿈이어야만 한다는 믿음까지 생기는 거죠. 분명 이건 꿈이어야 한다는 망상, 자꾸만 그것을 불러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안 된 아기 찬이를 엠뷸런스에 태우며, 그때의 난 그랬습니다.
'삐요 삐요'로 알고 있던 엠뷸런스 소리가 '위독 위독'으로 들리고, 학교 너머 엠뷸런스 소리가 가까이 들릴 때면 가슴이 철렁하다가 목이 칵하고 막혀오곤 했어요. 찬이가 뒤척이는 한 밤중의 소리에도 벌떡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나의 자동반사에는 그럴 만한 충분조건이 있었음을 봇물 붓듯 터놓는 중입니다.
혹시나 내 삶이 지루하기 짝이 없을까 봐 그랬는지,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처럼 타고 또 타보라는 뜻이었는지, 삼 년에 한 번, 일이 년이면 한 두 번씩 잊을만할 때마다 어김없이 엠뷸런스를 태워줬어요. 어떤 날엔 응급환자 이송차량이라는 것도 타기 시작했는데, 엠뷸런스에 대한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삐요 삐요'로 알고 있던 소리 외에 하나가 더 있다는 것. "이이이이이옹~ 이이이이이이옹~" 하는 소리인데, 이것은 '비켜어어줘요~! 지나갑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요.
모세의 기적을 부른 오토바이 뉴스가 근래에 나오던데, 오토바이가 아니더라도 구급차는 신들린 소리와 현란한 운전 실력만으로 모세의 기적을 부릅니다.
짙고 까만 밤이었습니다. 숨 가쁘게 도착한 의료원에서 응급처치를 마친 찬이는 또다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큰 병원으로 옮겨져야 했어요.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으로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촌각을 다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였어요.
“보호자 분이세요? 혼자 가실 거지요? 한 분만 탑승 가능합니다. 가실 분이 정해지면 앞자리에 앉으세요. 일단 앞자리 보조석에 앉아 벨트 매고 앉아 계세요!”
촌각이 채 되기도 전에 설명을 마친 선생님은 뒷좌석의 안전을 체크하러 바로 돌아서요. 찬이를 두고 어찌 앞좌석에 앉느냐 되물었지만, 입을 굳게 닫은 선생님의 표정에서 되물어선 안 된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입을 다물고 올라탔어요. 뒷좌석이 보이는 플라스틱 투명 창으로 찬이가 보입니다.
뒷좌석으로 눈을 처박고 찬이만 바라볼 뿐, 이송차량이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관심조차 없었죠. 달리기 시작한 차는 오래지 않아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다시 소리를 바꿉니다. ‘비켜어어줘요~! 지나갑니다!' 라는 소리를 내지르며 육거리 로터리 복판의 차들 틈을 귀신같이 비켜가요. “차 사이로 막가”차였습니다. 영화의 추격신이 따로 없었죠. 또다시 아들의 안위 걱정은 오갈 데 없이 사라지고, 당장 내 생명을 걱정할 지경이 이를 정도가 됐어요. 온몸이 저려올 정도로요. 단단히 매라 했던 벨트를 다시 깊게 꾹 누르며 잡을 수 있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꽉 잡았어요. 육거리를 막 지난 차는 이미 시속 150킬로를 넘기던 터였습니다.
'내 아들의 목숨을 위해 당신들의 목숨까지 내놓았구나!'
눈물이 주룩 흐릅니다. 아픈 아들보다 당신의 뜨거운 마음 때문에 주룩주룩 나오는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요. 달리고 달리고 달리는 이 길 위에서 쏟아지는 눈물이 살짝 열어둔 창으로 흩날리는 바람 따라 흩어지며 날아갔어요. 현실을 망각한 나의 직관은 이미 고장이 났습니다. 내 아들의 위독함을 주변의 반응으로 알게 되는 거였어요.
어두운 밤 도로 위를 달리고 달린 차는 잠시 멈춰섰습니다. 길을 비켜달라며 구슬프게 소리를 내며 울어요. 한 번의 울음으로, 홍해가 갈라지는 장관을 내 눈앞에 펼쳐 놓습니다. 모세의 기적이 있다면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구나, 사차선 도로 위를 가득 매운 차들이 엠뷸런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2열 종대로 쫘악 갈라집니다. 어두운 밤, 붉게 물든 차들의 후미등과 내 눈밑에 고인 눈물방울이 겹쳐 붉고 동그란 불빛들이 눈앞에서 아롱아롱 빛을 냈어요.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과 길과 자동차와 신들께 기도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찬이를 위하고 있다는 경험은 대단한 거였어요. 찬이가 소중했고, 내가 소중함을 하나같이 말하고 있었죠. 눈앞 붉은 홍해의 길만 지나면 끝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차는 이미 인도를 올라탔습니다. 가로수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올라 탄 인도 위에서 60킬로로 질주하는 차 안의 주인은 이미 신이었어요. 온 정신을 집중하고 순간의 교통 신호와 촌각 후의 신호까지 꿰뚫은 신의 눈빛이었습니다. 이쪽 인도를 후루룩 넘더니 노형오거리에서 신호가 바뀌는 순간을 재빠르게 낚아채, 냅다 가로지릅니다. 돌이켜 보면 신일 수밖에 없었고, 신이 아닐 수가 없었어요. 사람이라면 어찌 당신의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싶었어요. 사람을 구하는 직업은 의사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신과 함께, 의료원에서 종합병원까지 60분은 족히 걸렸을 그 길을 단 25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들 것에 실려 들어가는 찬이를 두고 흐르는 눈물일랑 흐르던 말던,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온 마음을 다한 인사가 나왔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인사밖에 없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고맙고 기적 같고 그랬어요. 그렇게 찬이는 만 하루를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복도에서 꼬박 하루를 보낸 엄마와 아빠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중환자실을 오가는 찬이의 이중생활은 생각만으로도 목이 막혀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으나, 글로 남기며 그날의 나와 남편과 찬이와 딸아이와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 터놓아 봅니다. 그랬던 적이 있었노라고. 나 119 많이 탔노라고. 이제는 과거형이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내 친구 중엔 동생을 먼저 잃은 Y가 있어요. Y는 찬이를 키우는 나를 보며 말을 합니다.
"그래도 찬이는 살아 있잖아. 뭐라도 해줄 수가 있잖아."라고요.
친구 Y의 프로필엔 “오늘 하루가 선물입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선물로 얻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까고 생각합니다.
이 순간에도 지나가는 엠뷸런스의 소리를 들으며, 모든 이들에게 그날의 찬이처럼 신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