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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Aug 20. 2020

창옷 짓는 집

종갓집의 찬이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그림에나 등장할 법한, 양반들이 입는 옷으로만 알고 있던 소창의*입은 사람을 눈으로 직접 본 건, 시집와서 처음 맞는 그 해 추석이었다.

(*소창의 : 창옷이라고도 한다. 조선 초부터 말기까지 사대부들은 집에서 입거나 외출  도포나 대창의  겉옷의 밑받침 옷으로 입었고, 서민들은 겉옷으로 입었다. - 지식백과사전)



방금 막, 김홍도의 그림에서 곰방대 털고 나온 듯한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시아버님이셨다. 뭔가 하얗고 바삭바삭하고 앙드레김 의상과 흡사한 중량이 느껴지는, 마른 김에 하얀색이 있다면 딱 그것으로 만들었음직한 옷을 입고 계셨다. 옷감이 몸을 따라 흐른다는 표현은 절대 쓸 일이 없어 보였고, 사뿐히 걷는 걸음 따라 몸을 에워 싼 의복의 형태도 같은 각도로 움직이는 모양이 신개념 갑옷 같다. 여긴 어디? 난 누구? 타임 슬립이라도 한 듯 혼자 신음하듯 뱉어내며 건넌방에 고이 접어둔 한복을 다시 꺼내 입어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종갓집 전통을 제대로 잇는 안동엘 가면 이보다 더 그림 같은 사람을 만날까. 한국민속촌에도 계량된 패턴과 관리하기 쉬운 옷감으로 공장에서 만들어 입던데, 내 눈앞의 아버님은 그야말로 찐!!!이다. 중국산 모시도 아닌, 순도 100프로의 국산 모시를 구해다 순화 씨(시어머니) 손으로 직접 지었다는 창옷을 바삭바삭 입고 계셨다.






어쩌면 근현대 이전의 옷차림일지도 모를 창옷을 갖춰 입은 것이었는데, 사계절 내내 시대적 착오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려면 양복이라는 아이템은 등장해선 안 될 일이었다. 근현대 이전인지 이후인지, 현대인지 아닌지, 어떻게 이런 의복 관습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지 호기심이라도 갖는 날엔, 구구절절 세월이라도 읊어야 할까 봐 어느 날엔 서둘러 한복을 갖춰 입으셨다.



여러 해를 반복하는 아버님 의복의 변화 속에 창옷은 왜 입는 건지 궁금해진 나는 순화 씨에게 물었다. 순화 씨는 한복 입기 더운 날이면 창옷을 입는다고 했다. 가만히 있어도 떠다니는 물방울이 맨살 위로 내려앉는 장마가 끝이 나면, 내리쬐는 햇볕을 반갑게 맞으며 풀 먹이는 일을 한다고 했다. 스물셋에 시집을 와 44년을 내리 철마다 풀을 먹이며 다림질을 했다고. 아버님이 흘려야 했을지도 모를 땀방울까지 끌어 모아 대신 흘리며 순화 씨가 풀을 먹인 창옷은 어느 때보다 하얗고, 어느 때보다 시원해 보였다.



블루베리가 실하게 맛있다며 가져다 먹으라는 전화 한 통으로 며느리를 꾀어낸 순화 씨는 내가 도착할 시간을 주먹셈이라도 한 듯, 모락모락 김이 나는 큰 솥을 가스불에 앉혀 놓고는 휘젓고 있었다. 푹푹 찌는 한여름 더위에 선풍기 하나 윙윙 켜 둔 시댁의 부엌은 할 말이 참 많아 보였다.



관자놀이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솥 안으로 떨어지는지조차 관심을 잃은 순화 씨는 풀죽이 다 됐다며 딸아이가 들어앉아도 넉넉할 다라이에 풀물을 풀었다. 옆으로는 황금색 곶감 보자기에 아버님과 남편의 창옷이 여름 모시 이불과 함께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그건 순화 씨와 내가 하나씩 지은 창옷들이다. 남편의 창옷은 내가 시집와서 5년째 되던 해에 지었으니, 순화 씨의 그것보단 느긋한 편이라 하겠다.





쌓아둔 말이 풀 먹일 옷들만큼 켜켜이 쌓였는지, 풀물에 담근 옷을 주무르며 순화 씨의 입담은 멈추질 않는다. 어쩌면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온 시절마다의 사연을 풀어내기라도 할 듯 거친 손을 움직이며 입을 풀어냈다. 옷 하나를 주물러 풀물을 먹이고 단정히 짜내면, 그걸 받은 나는 오뜨 뚜왈렛 뺨치는 땀내 밴 패랭이를 쓰고 옥상으로 올라가 탈탈 털어 넌다. 끈덕하게 달라붙는 손으로 이왕이면 순화 씨의 다림질이 편하도록 쫙쫙 펴며 넌다. 삼십 보쯤 걸어야 끝이 날 빨랫줄에 빈틈없이 널고 서야 오뜨 뚜왈렛 패랭이를 벗을 수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과 가장 가까운 옥상에 널었으니, 두어 시간 뒤면 빳빳하게 마를테다. 그동안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순화 씨의 이야기를 마저 듣는 것.





원더키디가 하늘을 날지도 몰랐을 2020년에도 여전히 모시 창옷을 갖춰 입는 집에 시집을 왔다. 아버님의 아버님과 아버님의 아버님의 아버님은 모두 유매독자有妹獨子이거나 무매독자無妹獨子셨고, 유매독자 아버님의 아들은 유매독자였다가 무매독자가 됐으며 그 아들을 만나 결혼한 나는 딸과 아들을 하나씩 낳았다.


그중 아들인 찬이는 유매독자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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