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얼마나 닮았는가⌟
우린 진정으로
눈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보영 ⌜얼마나 닮았는가⌟
“엄마! 염색하고 왔어요?"
“아니, 파마했어. 어때?”
“할머니 같아요!”
...... ㅡㅡ+
우리가 눈빛 교환을 이렇게 찐~하게 해 본 적이 있던가. 그리고 넌 다시 힘주어 말했지, 맑디맑게.
“할머니처럼 예뻐요!”
...... ㅡㅡ;
우린 진정으로 눈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 같아 보여서 할머니 같다 했을 뿐, 할머니 같다는 말에 엄마 눈이 커질 일인가 싶은 열세 살 찬이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입니다. 할머니의 머리카락과 엄마의 머리카락이 같은 굴곡으로 구불거리는 것이 다르지 않아 보이니까요. 정녕 할머니 머리가 되어버린 건가, 자가 검열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사람들의 뇌는 '눈치 프로그램'으로 가득 차 있다. 기계로 치면 복잡한 연결선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와 같다. 부품이 들어갈 자리가 좁은 상자다. 애초에 많이 넣으면 연결선이 꼬여 버린다. 그래서 늘 어떤 부품을, 어떤 정보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계속 판단해야만 한다. 내 뇌에는 연결선이 없다. 내 부품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 관계가 없으니 무엇이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나는 모든 것을 같은 무게로 기억한다. 길거리에서 잠시 내 앞을 스쳐 간 차 번호와 아버지의 차 번호를 같은 무게를 갖고 기억한다. 길 가다 잠시 만난 사람과 내 친척의 얼굴을 같은 무게를 갖고 기억한다.
열세 살의 찬이는 포동포동 살이 찐 모양새가 보는 것만으로도 포옹을 부르는 몸매가 되었습니다. 와락 껴안으면, 혹은 안기면, 느껴지는 안락함과 포근함은 남편의 그것과는 견줄 수 없는 말랑 달콤한 맛이 납니다. 이 맛에 푹 빠져 침대 위에 찬이가 보이기만 하면, 부둥켜안고 침대가 들판인 것 마냥 뒹굴곤 해요. 간 밤에도 무작정 끌어안고서 초록 풀 밭 위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빙구 미소를 지었더랬죠. 일종의 수면 의식이었달까요. 해도 해도 너무나 격렬하게 구르는 엄마에게 찬이가 한 마디 하더군요.
"엄마! 나 사랑해서 이러는 거 맞죠?!"
우린 진정으로 눈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 왜 신호 위반을 하는 거예요?”
“응, 오른쪽으로 꺾을 때는 신호가 없거든. 알아서 사고 나지 않게, 잘 보면서 지나가야 하는 거야.”
비보호 우회전을 모르는 찬이가 빨간 신호임에도 교차로를 지나가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눈치껏 운전하는 일을 찬이가 이해하는 날이 올까요. 비보호라는 자율적 신호는 ‘규칙 없는 규칙’이라 어렵기만 합니다.
우린 진정으로 눈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그 모두가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슬펐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사람들의 화를 돋우지 않을 방법이 없어 늘 무력했다. 사람들은 같은 행동을 해도 어느 때에는 화를 내고 어느 때에는 화를 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규칙이라는 것이 없는 것만 같다. 나는 규칙이 없는 것은 파악할 수가 없다. 나는 언제나 무력했다.
어떨 때는 파란 신호등에 건너가는 거라고 말해놓고는, 빨간 신호등일 때도 지나가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찬이 세계의 신호등엔 오색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 화 풀렸어요?”
나른한 소파 위, 젖은 빨래 마냥 널브러진 열셋과 열 살의 남매를 보고 있으려니 뒷골이 당겨 폭풍 같은 잔소리를 하고 난 참입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목소리 톤이 높아졌을까, 화를 내는 것과 비슷해 보여서 엄마가 화가 난 건지 되묻습니다.
“엄마, 화났어요?” 찬이의 물음에 짜증이 밀려오는 건, 보통 엄마니까 당연한 거 맞지요? 정리하라는 말을 화가 난 듯 이야기하고, 세수도 안 했느냐는 말을 화가 난 듯 또 이야기하고, 양치는 했는지 화가 난 듯 물으며, 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어리둥절한 얼굴입니다. 그래서 찬이는 다시 묻습니다.
“엄마! 화 풀렸어요?”
화가 풀렸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계속 물을 모양입니다. 엄마가 화가 난 이유는 모르지만, 화내지는 말았으면 좋겠으니까요.
“엄마! 화 풀렸어요?”
사람들이 화를 낼 때 불행하다. 왜 화가 났는지 말해주지 않을 때 불행하다. 그들은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고, 언제 화를 내고 언제 친절해지는지도 알기 어렵다.
계속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 불행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을 때 불행하다.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 귀는 소음과 대화를 구분할 수가 없고 중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수가 없다.
이 짧은 글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찬이에게 운동회란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실감이 되어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없다며, 밀어붙였더랬죠. 적응하기까지 걸리는 ‘속도의 차이’를 생각하지 못한 나의 아둔함에 매질을 해댑니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사람의 목소리보다 드럼 소리를 먼저 듣고 따라 부르는 사람 - 찬이 -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찬이가 편안할 수 있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 경쟁쟁이 엄마여서 미안했습니다.
눈치가 없는 건, 엄마였습니다.
✔︎ 위 글에서 초록으로 표기된 글은 김보영 작가님의 ⌜얼마나 닮았는가⌟ 중 ‘같은 무게’라는 단편에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