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전히 기록형 인간이다.
난 그저 기록형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랬던 것뿐이다.
인간관계로 치자면 철저하게 좁은 인간형이다. 내재된 배터리 용량 자체가 남들의 반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배터리 소비보다 80%는 남겨두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하루에 한 사람 이상을 만난 후에는 일정 시간을 혼자만의 시간으로 할애해야만 한다. 철저하게 내향형 인간인 셈이다. 마음속에는 돋보이고 싶고 나서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숨겨 왔던 나의 수줍은 외향성을~ 불쑥 꺼내어 보길 고대하며 살고는 있다. (이래서 블로그든 별 그램이든 끊을 수가 없다.)
속으로 파고들어도 너무 파고드는 내향형 인간인지라 기록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애정 한다. 기록하고 내 속에서 아등바등 싸우며 살아가는 걸 즐기는 편이랄까. 이런 나에게 찬이의 문제가 인생의 화두가 되었을 때, 블로그는 소중한 도구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기록을 했을 뿐이다. 나만의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였다. 오늘을 기록하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일이었다. 찬이만 알았고, 찬이만 몰랐다. 찬이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나를 탓하며 알고 싶어 기록했다. 찬이가 왜 이럴까, 관찰하고 기록하고 비교했다. 오래 걸렸지만 찬이를 알아갔다. 찬이와 비슷하다 생각되는 친구들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유일한 비교대상은 어제의 찬이와 오늘의 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난 그저 기록형 인간이었을 뿐이다. 나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건, 하나둘 늘어가는 이웃님의 숫자에서였다. 비공개 전환을 고려하다, 이왕 기록하는 거 누군가가 함께 읽고 공감이 된다는 것이 외로운 싸움을 덜 외로운 싸움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도움이 되었다는 댓글이라도 받는 날엔 보람찬 하루 일이 되고도 남았다. 찬이도 키우고 보람도 찾는,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재미있는 육아를 했다.
이웃님들의 응원을 먹으며 일기체였던 쓰기 형식도 구어체로 바뀌었다. 이를테면, 찬이가 드디어 십 세가 ‘되었다’에서 ‘되었습니다’로 어투가 변했다. 해시태그도 붙였다. 더 많은 이웃들의 응원을 먹고살았다. 더 필요한 인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수경님을 알게 됐고, 비버쌤을 알게 됐다. (이 외 엄청난 응원을 받은 분들이 많다.) 두분만 언급하는 이유는 블로그로 얼굴을 알게 된 유일한 이웃님들이기 때문이다. 수경님의 얼굴을 알게 되면서 무척 친근한 느낌을 갖게 됐다. 수경님의 아드님을 보며 돕고 싶고 듣고 싶었다. 구하기 어렵다던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를 우편으로 빌려 보면서 소중한 선물까지 받아보면서 제2의 펜팔 시즌을 맞이하며, 신이 나게 지냈다. 비버쌤(치료사님)을 알게 되면서 찬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들을 많이 듣게 되었다. 특수 교육 티칭 정보도 제법 도움이 되었다. 신이 났다.
그랬다. 그렇게 잘 살았다. 그렇게 잘 살았더랬다…
그랬던 어느 날, 치료실에서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의 한 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찬이 맞죠?! 어머 연예인 보는 거 같아요!” 말하시는 그분이 더 연예인스러운 모습으로 말을 걸어왔다. (당시의 내 모습은 분명 초라한 옷을 입었거나 초라하기 그지없는 스타일이었을지 모른다.) 구불거리는 단발머리에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흩날리며 우디한 향이 단아한 목소리와 온화한 미소와 함께 퍼져 나오며 세련된 커리어우먼의 착장과 함께 뭔가 다른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분이 덧붙이시길, 블로그 이웃이라 했다.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었으니,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난 그저 기록형 인간이었을 뿐이다. 누군가가 찬이의 얼굴을 보며 익숙한 얼굴이 되어간다는 것이 나도 모르는 어떤 실체를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체감했다. 나는 좁게 사는 인간이다. 좁게 사는 인간의 영역에 한 사람이 들어왔을 때,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큰 것이라 한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친분 유무를 떠나 대단히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되고야 만다. 그분이 나와 친분을 쌓겠다 하신 것도 아니 건만, 좁은 인간은 이미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긴장을 했다.
유명은 선택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다. 유명이라고 말하면 우습지만, 결코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가길 원치 않았다. 블로그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엔 맞지 않았으니까. 얼마나 유명해질 수 있다고 이럴 일인가 싶지만, 나라는 사람은 원래 이다지도 좁다.
세월이 흐르고, 어쩌다 여전히 유지하게 된 블로그를 너머, 두 번째 개인 기록공간인 인스타그램까지 오픈을 했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그 기억은 차후에 돌아보기로 하고, 오픈 후 밀려들기 시작한 이웃님들의 모습에 쫄리기 시작한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블로그 때 이미 얼굴을 익힌 수경님의 육아 모습은 아름다웠고, 얼마나 쫄렸는지 모른다. 비버쌤은 흔하게 봐왔던 선생님의 얼굴이 이미 아니었다. 연예인만 예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난 얼굴 없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그랬는데… 인스타그램으로 나의 기록을 알릴 생각만 했던 내가 인스타그램으로 관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백 명 남짓한 팔로워만 유지하는 것도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나의 최대 용량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이런 내가 이웃님들의 삶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쌍방이 되기 시작했다.
골프채 휘두르시는 훌륭한 피지컬에 기가 죽는 건 자본주의에 시달리는 처절한 루저라서 그런 걸까고 <아메리카나>를 읽으며 몇 날을 파고들었고, 블로그 이웃 중에 제주도분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왜 몰랐는가 꿀밤을 셀프로 하기에 이르렀다. 최애 작가 김혼비님(나도 필명을 쓸 걸 그랬다) 이상의 유머 코드를 탑재하고 있는 이웃님이 있다는 것과 빛나는 셀카를 서슴없이 보여주신 탓에 <이기적인 유전자>를 읽으며 얼굴 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굳혔다. 파워블로거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무려 20킬로미터 내 거주 중인 같은 시민분이었다. 어깨너머 길이의 같은 구불 머리임에도 아버님이라서 더 빛이 나는 피지컬을 자랑한다. 게다가 카페 사장님(잠봉뵈르 먹으러 갈 겁니다).
이 외 더 밝힐 수 없는 이웃님들과 그 이상의 친분을 느끼며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별 거 아닌 일로 글까지 써댈 일인가 싶지만, 뭉클함의 포인트는 따로 있다. 제주 여행을 오신 한 이웃분이 커피 한 잔 하고 싶다며 조심스레 말을 툭 던지셨다. 그 말을 듣고 당황하는(만나고도 싶지만 만날 수가 없는) 나를 배려하며, “다음에 낯가림 안 할 나이가 되어 꼭 만나요…”라고 품위 있게 떠나셨다.
다음에 낯가림 안 할 나이가 되어, 낯가림 안 할 나이가 되어, 낯가림 안 할 나이가.....
문자를 받는 순간, 낯가림 안 할 나이가 되고 싶었다. 낯가림 안 할 나이는 대체 언제일까 생각했다. 낯가림 안 할 그 나이를 상상했다. 낯가림 안 할 나이란 문숙 님의 말씀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날이 아닐까. 세속적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때. 지금의 내겐 지킬 게 그다지 많지 않은 것만 같은데 여전히 난 내려놓을 수가 없나 보다.
그때가 되면 수경님과 비버쌤과 물빛님과 봄날님과 코끼리님과 파스타치오님과 묭이님과 달팽님과 81님과 율짱님과 이린님과 앨리스님과 콩지님과 클레오님과 날개꽃님과 요요님과 낭만님과 우쭈쭈님과 박꾼님과 나잉님과 아톰님과 알러뷰님과 앤지님과 성연맘과 동행님과 유쾌한님과 씨엘님과 비니모님과 찌니님과 댄스님과 팔랑님과 레이님과 호프세븐님과 사월님과 일일이 언급할 수도 없이 지지해주시는 이웃님들과(닉네임 찾아보고 그런 거 하지마요. 우리ㅎ) 도란도란 둘러앉아 살아냈던 이야기들을 모두 까 대며 웃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같은 아픔으로 똘똘 뭉쳐 각자의 삶을 살아낸 이야기가 서로에게 빛이 되어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되면, 어쩐지 나는 “그냥, 엄마”에서 “멋있는, 엄마”가 되어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난 여전히 세상을 너무나 모르고, 알아갈 것이 많아 행복한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