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찾아야 할 것은 비법이 아니라, ‘힘’

오늘도 비법을 찾는 나에게 씁니다

by 반짝이는먼지



겨울을 지나며 신경이 쓰이는 일 중 하나는 찬이의 비염입니다. 여섯 살 즈음부터 찾아온 이 놈의 불청객은 찬이의 겨울을 힘들게 했어요. 병원을 전전하며 지내던 어느 날, 동네에서 좋다는 한의원에 갔습니다.



한의원... 감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육체적 피로감이 많을 때, 양약으로 이어가는 아들을 보며 마지막 보루로 남겨둔 곳이었어요. 힘 없이 툭하면 감기를 달고 사는 아들을 위해 뭘 하면 좋을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어르신들이 좋다길래, 명약은 아니더라도 빛나는 비법 정도는 알려주실까 싶었죠.



전방 50미터부터 진한 감초 향이 친근했던 그날의 한의원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들었어요. 당연하고 식상하기까지 한 말이었지요.



1. 운동시키세요.

2. 친구를 만들어주세요.

3. 어머니가 그만 끼고 사세요.

4. 스스로 하게 하세요.



결국 면역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의 면역력까지 아우르며 이야기를 하셨어요. 찬이를 길러왔던 방식에 대해 호되게 혼을 내셨어요. 비염에 걸린 아들을 데리고 한의원에 왔다는 것 자체를 나무라셨어요. 당황스러웠죠. 이렇게 혼을 날 일인가 싶었습니다.



한의원과 관계를 맺을 것이 아니라, 학원과 관계를 맺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친구와 관계를 맺고, 운동을 시키라고요. 친구 만들기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학원을 이용해서라도 어릴 때부터 만들어주려는 노력을 하라 하셨어요. 영어 같은 지식을 요구하는 곳 말고 운동을 하는 학원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하셨죠.





"정말로 태권도 학원을 다닐 수 있을까요?"라고 순진하게 물었어요. 그런 의문을 갖고 있는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혼에 혼을 보태서 나무라셨어요. 일반 아이들과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똑같다 하셨죠.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이미 알고 있다고. 그것을 역이용해서 엄마를 이용하고 엄마에게 의지하려는 성향으로 자란다 하셨어요.



"과잉보호하지 마세요. 이제는 더 이상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과잉보호를 해오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과잉보호 그만하라는 말씀에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요. 서른이 된 후로 그렇게까지 발개질 정도의 꾸지람은 처음이었어요. 내일 다시 올까 여쭈었더니, 알지 않느냐며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이 게 전부라 하셨어요.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가슴 안에서 자꾸만 울려 퍼집니다.



정말 내가 과잉보호를 해오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거친 들판에 내놓기가 걱정스러운 아이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엄마가 바로 나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며칠을 생각 속에 빠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씩 떼어놓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죠. 지금이 아니면 나중은 없었어요.



어차피 느리니까 엄마와 분리되는 시기도 당연히 늦을 거라 생각했어요.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를 빼앗아버리면 중학교를 가도 그 이후가 되어도 변화는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놀이터에 가도 불안한 마음이었던 저는, 노는 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줬어요. 그렇게라도 가르쳐서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랬던 제가 찬이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찬이를 혼자 놀도록 두고 지켜보기 시작했어요.



비록 쫄보엄마 덕분에 아직 태권도는 가보지 못했지만, 이후로 찬이는 성장했습니다. 혼자서도 궁금한 게 생기면 먼저 물을 정도의 친화력이 생겼고, 문제 해결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어요. 자폐성향의 이야기들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비법이 정말 있을진 모르겠어요. 찬이를 키우며 결론지어지는 한 가지는 우리 아이들 키우는데 명답이 없듯 쉽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일에도 정답은 없다는 거예요.



조금 더 힘든 상황은 있겠죠. 모두가 다 살아가는 과정일 뿐 더 잘 키우고 못 키우고의 차이는 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차이일 뿐이에요.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어요. 엄마의 마음은 엄마에게 힘이 생길 때 아이를 향하게 하지요. 엄마에게 힘이 없으면 엄마는 아이를 보지 못해요. 볼 힘이 없기 때문이죠. 아이는 아이대로 둔 채, 명약을 찾아 떠나는 엉뚱한 엄마가 되고 마는 거예요. 아이는 단지 목이 말랐을 뿐인데 말입니다.



엄마가 후련하게 잠을 잘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개운한 몸과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어떤 행동으로 힘들게 하더라도 미소 지을 수 있어요. 그리고 미소 짓는 엄마의 마음은 더욱 아이를 향하게 합니다. 답은 아이에게 있어요. 다른 누군가에게 물어 얻을 수 있는 답이 아니에요. 백인백색의 아이를 키우는 육아 노하우는 인터넷이나 책에 없어요. 백인백색의 아이 마다마다에 있어요. 그리고 엄마의 마음 속에 있어요.



우리가 할 일은 ‘힘’을 만들어 내는 일이에요. 충분히 잠을 자고, 좋은 음식을 먹고, 아이와 함께 적당한 운동을 하는 거죠. 햇볕을 쬐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가족에게 사랑한다 이야기하며 ‘힘’을 만들어 내야 해요. 그 힘만 가지고 있다면 계속 갈 수 있어요. 아이에게 절로 미소가 지어질 겁니다.



고민이 밀려올 때 더 잘 자고, 입맛 없어 기운 없으면 더 잘 챙겨 먹어요. 그러면 아이의 얼굴을 더 바라보게 될 거예요. 바라보면 볼수록 예쁘고,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아이는 세상없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정해진 해결법 같은 것은 없다. 인생에 있는 것은 진행 중의 힘뿐이다. 그 힘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 있으면 해결법 따위는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 생텍쥐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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