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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May 05. 2020

빨간 양말과 맑고 파란 운동화

아이의 즐거움을 지켜봐 줄 용기를 갖고 싶어요.




'그때의 형아와 누나들은 어디로 갔을까.'


몇 해전 자주 보던 형아와 누나들은

어디로 간 건지 궁금해하던 차에

산책 삼아 걷던 올레시장에서
형아를 만났습니다.


그리워하니 만나지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난간에 기대
바나나를 먹고 있던 터였어요.

한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좁은 시장길을 지나갑니다.

찬이 어릴 적 치료실에서 만났던 형아였어요.

그때가 고1이었으니,
지금은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 되었겠네요.

이름까지 또렷한 형이 반가워 불러보지만,

형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해요.



형은 우리 앞에 자전거를 멈추고,

기타를 돌려 맵니다.
연주가 시작되고,
가만가만 들어봅니다.



노랫말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누군가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힐끗힐끗 지나가요.

아연이 표정이 이상해져요.
한 아주머니께서 인사를 건네시네요.
시장에선 이미 스타였던 가봐요.


가만가만 들어봐도

알 수 없는 노래를 들으며
제 눈에 들어왔던 건,
형아의 빨간 양말과 맑고 파란 운동화였습니다.



흙 한 방울 묻지 않은
- 누가 봐도 어머님이 빨아주신 게 분명한 -
빨간 양말과 파란 운동화를 보니
형아의 연주가 달리 들립니다.



즐거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아들을 위해

옷과 운동화를 세차게 빨았을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던 탓이죠.



사람들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진 않을까
망설이셨을지도 모를 그 마음이 느껴져

울컥합니다.


종일 집에서 티브이만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보다야
훨씬 좋은 모습이었던 거예요.


기타를 둘러 매고 나서는 아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한껏

용기를 냈을 어머님의 마음을 보고 나니,
먹먹해지는 마음 뒤로
내가 걸어야 할 길이 보입니다.  


장애가 있을지라도,
똑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의 즐거움을 빼앗지 않을 용기”를
가져야 하는 거였어요.  


머지않은 미래의 찬이 오빠도
내 마음에 차지 않는 즐거움을 가지고 오더라도
무던하게 지켜봐줄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반가웠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오늘은 저도

찬이 운동화를 세차게 빨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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