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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May 29. 2020

시간을 사서 쓰기 위한 조건

최소한의 돈이 필요했고, 건강엔 이상이 없어야 했다.



내 시간을 내가 사서 쓰기로 마음먹은 후, 이어졌던 고민은 생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돈이다. 4인 가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은 얼마일까. 재벌이 아닌 이상, - 그랬다면 그만 둘 직장도 없을 일이지만 -  잘 나가는 남편 덕에 돈 걱정일랑 하지 않아도 될 팔자가 아니라면 당연히 돈은 필요하다. “나 곱게 자란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었으니, 대한민국 가장 보편적인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결혼 초반의 살림엔 당연한 고민이었다. 나만 잘 써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이가 둘이나 될 살림이었고,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살아야 할 큰 변화였다.



외벌이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결혼의 가장 큰 이점이다. 혼자 벌어 혼자 쓰는 것과 달리, 버는 것과 쓰는 것의 적당한 분배가 가능하다. 한쪽에서 집중해서 벌고, 다른 한쪽에서 집중해서 관리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관건은 최소한의 지출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하루아침에 덜컥 내려온 아들 내외를 보며 가슴이 철렁했다 시는 시어머님은 지금도 그날을 “하루아침”으로 추억하시지만, 사실 난, 계획 없이 지르는 대담한 성격은 못 되는지라 오랜 시간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연필을 들고 작정하고 세웠던 계획은 아니었다. 멍하게 뭔가를 생각할 때면 연일 그 생각뿐이었던 듯하다. 씀씀이가 꽤 커져있던 우리 살림에 외벌이로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줄이는 것이었다. 사지 않는 것, 오래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고쳐 쓰는 것, 얻어 쓰는 것, 빌려 쓰는 것.



그리고 이 외, 중요하고도 결심이 서야 했던 큰일은 남들이 좋다 말하는 기준에 흔들리지 않을 ‘의지’였다. 비싼 미용실을 포기하고 적당히? - 봐줄 만하게 - 타 들어가는 나의 머리칼에 만족할 담담한 ‘의지’가 필요했다. 시장에 즐비한 명품 가방은 무시할지라도, 버*스탁st 슬리퍼는 무시하지 못할 너그러운 ‘의지’를 가져야 했다. 내 시간을 벌어 쓰기 위해 부모님의 시간도 빌어 쓸 뻔뻔한 ‘의지’를 생각하기도 했다. 곧 태어날 둘째에 만만치 않은 시간이 들어갈 터였기 때문. 그러는 사이, 내 마음엔 나도 모르는 계획이 생겨났다.



‘좋은 직장 관두고 뭐 먹고살려고?, 돈도 다 때가 있는데, 아이의 장애는 부모 탓이 아니야, 그렇게 쓰던 사람이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키워봤자 다 소용없어, 너 자신을 생각해, 후회할지도 몰라.’



좋은 옷, 좋은 신발, 좋은 음식, 기분을 채워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좋아하는 뮤지컬 관람, 철마다 기분 낼 여행, 지인들과의 저녁 만찬,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은 마음을, 찬이와의 시간과 맞바꾸는 결심이었다. 그렇게만 산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나왔다. 기존의 수입을 물리적으로 정확히 1/6로 줄이는 삶이었다. 마음에 낭만을 장전하고 최소한의 수입으로 살아볼 만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때 마침 결정적 팁을 얻을 수가 있었는데, 시어머니의 밥상이었다.



명절 때마다 보아왔던 시어머님의 밥상이 눈에 익을 때쯤이었다. 멸치 육수를 끓이다 말고, 냉큼 나가 뜯어오는 부추와 미나리는 어느 마트에서 사 온 채소보다 신선할 수 없었고, 물을 주거나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절로 자라는 채소들이 집 주변을 가득 둘러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터였다. 1월이면 동지 나물을, 2월이면 냉이와 달래를, 3월이면 향이 좋은 쑥과 대파, 4월에 뽑아 먹는 양하와 고사리, 5월이면 다시 뜯는 부추와 미나리, 그리고 완두 콩이 그득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호박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잘 주워먹고 산다.


8월부터 따다 먹는 늙은 호박의 정은 “날 따다 먹으시오”라며 퍼다 주는 오래된 이웃 같았다. 9월엔 무화과를, 10월엔 단감을, 11월엔 귤을 따 먹고, 12월엔 무를 뽑아 먹으며, 돈 없어도 나무라지 않는 자연의 먹거리들이 날 마구 안아 줄 것만 같았다. 비록 자연에서 얻어먹을 생각을 하긴 했지만, 퍽이나 낭만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먹거리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 나오고, 교육비에 대한 대안이 필요할 때쯤 바우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당장에라도 이용할 수 있다는 바우처라는 것은 사회보장제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놓치고 살면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어 질 정도였으니까. 알고자 하지 않는 한, 알려주지 않는 일종의 노다지 같은 세상이었으니까 말이다. 바우처를 모르고 살던 내가 헛배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열 냥을 버리고 얻을 것이 한 푼만은 아니었으니, 얻어걸린 물고기처럼 고마울 따름이었다.



가고자 하는 길이 어렴풋이 보일 때쯤, 우리는 5톤 트럭을 끌고 시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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