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을 바꾸니 생겨난 삶의 방식
찬이를 키우는 데 딱 2년만 초인적 힘을 쏟아붓고 싶어 졌다. 다섯 살이 다 되도록 ‘엄마’ 소리도 못 들어본 터였다.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태어난 건 아연이었는데, 찬이가 새로 태어난 것 같은 시절을 보냈다. 세 살 터울의 쌍둥이를 키우듯 살기 시작했다. 다시 태어났으니 더 잘하고 싶었다. 마음이 그랬다.
뭔가를 마음먹으면 왜 그렇게 쇼핑을 하게 되는지. 괜히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며 열어 둔 핸드폰을 보며 어느새 쇼핑을 하고 있다.
‘이것만 사면 찬이가 더 잘 걸을 수 있을 거 같아’, ‘이거면 찬이랑 단어 말하기 연습하는 데 그만이겠어’, ‘이거를 사면 찬이랑 눈 맞춤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이거면 숙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찬이에게 쏟고 싶다던 초인적 힘을 쇼핑하는 데 쓰고 있었다. 물건을 사는 순간, 찬이는 이미 말이 트였다.(진짜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도 내가 할 일을 다 한 기분이었다.
신생아 아연이의 물건에 찬이의 물건까지 매일같이 쭉쭉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기를 보느라 바빴던 게 아니라, 쇼핑을 하느라 그렇게 바빴던 것 같다. 꽤나 많이 사재 꼈는지 제주로 이사를 가는데 5톤 트럭이 온다 해서 놀랐다.
한 날 한순간에 계획도 없이 무작정 시댁으로 몸뚱어리를 옮겼다. 부모님 동의 없이 쳐들어가다시피 한 이사였기 때문에 우리의 5톤 트럭은 과수원 복판의 창고로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물건이 어떻게 쌓이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의 짐은 몽땅 창고에 쌓인 채 6개월의 먼지를 뒤집어써야 했다. 필요한 옷가지와 아기 물건만 챙기고 그야말로 몸만 시댁으로 들어갔다.
마치 피난이라도 가는 듯했다. 급한 대로 시어머니의 몸배와 시아버지의 츄리닝을 얻어 입으며 반년을 살았다. 텃밭에 배추를 뽑아 먹으며 살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상당히 궁상맞아 보이지만, 그때의 우리 기분은 참으로 낭만적이었다. -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든 최선의 선택은 이 길뿐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다.
사실, 시어머님이 6개월이나 버텨주셔서 그만큼이나 살 수 있었다는 걸 안다. “집을 얻어야지 않겠니...”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1년을 더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6개월을 그리 살고 보니, 창고에 고스란히 쌓아둔 물건들이 우리에겐 그다지 중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의외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그다지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산다는 기분이 이렇게 단순하고 명쾌한 기분을 주는 것인 줄 새삼 알게 되었다. 잘 먹고 잘 사는 데는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더구나 찬이에게 집중하려고 만든 물리적 환경이다 보니 더욱 그러했다. 서울 집보다 방이 하나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가벼움이 만들어 준 기분 좋음이었다.
물건에 쓰던 신경 씀이 줄어드니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야말로 초인적인 힘을 쏟아부을 시간이다. 좋은 옷, 좋은 신발, 좋은 음식, 가끔은 기분을 채워줄 외식과 뮤지컬 관람, 철마다 기분 낼 여행을 내가 선택한 시간과 맞바꾸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조금이라도 낭비되는 시간을 허락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시간이 금이 되었다.
찬이에게 시간을 올인할 생각에 의식주에 들어가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장 걷는 다섯 살 찬이와 단 10분이라도 더 걷고 싶었다. 옷을 고르고 사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낭비되는 공간을 줄이는데 신경을 썼다. 계절마다 갖춰 입을 극소량의 옷만 가지게 되었고, 최소한의 옷장으로 살게 되었다. 냉장고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어 썩어 나는 음식들이 아까워지자, 눈에 보일 만큼의 재료만 두고 해 먹었다. 자연스레 냉장고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가 되니 간소화된 식탁을 꾸릴 수 있었고 난 더 부지런해졌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는 이미 미니멀리스트였다.
지금도 난 우리 식구가 바로 꺼내 먹을 최소한의 그릇으로 식탁을 꾸린다. 예쁜 그릇이 왜 탐이 나지 않겠는가. 누구보다 예쁜 그릇에 담아내고 싶은 낭만 주부가 나다.
딸아이를 키우는 최고의 재미는 옷 입히는 재미라던데, 나는 95%의 옷을 물려 입혔다. 다행히도 물려주는 송 언니가 예쁜 옷들만 공수하는 능력자였다. 딸이 세 살 때부터 아홉 살이 된 지금까지 얻어 입혔으니 옷값으로 밥을 샀으면 수십 번으로도 모자를 일이다. 옷을 얻어 입히며 알게 된 건, 표현 수단으로 생각했던 옷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거다. 옷을 고르고 챙겨 입는다는 건, 당연히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고 그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신경을 써야 마땅했다. 그리고 의생활이란 것은 스타일을 어느 정도 배제하면 고르고 사 입는 시간과 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늘 입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옷도 의외로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재미는 덤이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집중하며 꾸리는 삶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