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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Jun 05. 2020

내 삶을 애정 하는 방식, 글쓰기

마무리 좀 하려고 글 쓰는 중입니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듯이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글쟁이 습관에 관한 이 이야기는 멈췄던 나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는 그의 말에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글을 쓰면서 복잡했던 생각들을 정리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써도 되는지 고민스러운 글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멈추게 되었다. 그런데 그리 써도 된다니! 더구나 하나도 둘도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할 거란다!



찬이와의 10년을 정리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름 쓴다고 썼는데, 이야기의 결론이 어디로 향할지 윤곽이 나오지 않았다. 모로 가도 서울인지, 제주인지 찾지 않고서는 글을 써야 할 이유가 딱히 없는 것만 같았다. 재밌는 입담으로 술술 써 내려가는 작가님들의 글을 볼 때면 폭소하며 같이 웃다가도 한없이 좌절했다. 쓰면 쓸수록, ‘나의 시답잖은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까’, ‘누구에게 도움이 되긴 할까’ 점점 글을 써야 할 명분이 서지 않았다. 어떤 날엔 도서관을 서성이다 만난 누군가의 책 - 내가 쓰면 이 정도는 쓰지 않을까 싶은 - 이 발행 연도가 2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걷어 읽은 흔적이 전혀 없음을 확인할 때, 나는 그 책이 나의 책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데, 나까지 일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의 글쓰기가 점점 하찮아졌다. 괜한 나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의 귀한 시간을 뺏는다는 건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더구나 나 같은 비주류의 주제를 책으로 낸다는 것은 종이 낭비와 다름없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이왕 종이를 쓸 일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볼 글을 써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극단적인 긴축 재정의 삶은, 목적 잃은 가성비를 남기기 마련이고, 엉뚱한 곳에 가성비 운운하는 아줌마를 양성해냈다.



누군가 그랬다. 자신의 경험이 3년을 넘기기 전에 책으로 남겨야 한다고. 이미 지나가 버린 경험은 기록으로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면 나의 이야기는 완전 쓰레기가 될 터였다. 그대로 글쓰기는 멈춰 버렸다.


그런 나에게 무라카미는 그리 써도 된다고 해주었다.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고 달래주었다.




출처 : MBC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던 그 날, 연예 뉴스의 헤드라인을 보게 됐다. “복면가왕 주윤발의 정체는 강승윤!” 그와 관련된 연예 뉴스들이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실시간 검색까지 섭렵한 그를 보며, 연예 뉴스엔 관심조차 없던 내가 클릭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듣게 된 강승윤의 “Bounce!”. 와우! 완전한 그의 노래였다. 리메이크곡엔 감흥이 없는지라, 기대조차 없던 내 마음을 총으로 그냥 쏴 버렸다. 원곡의 정서를 담은 듯, 달리 들리는 그의 노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런 거구나!’



같은 음일 지라도, 같은 생각이더라도,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바로 이거구나! 그렇게 태어난 것들이 나를 비롯한 뭇사람들의 마음에 뭉클한 뭔가를 일렁이게 해주는 거였구나!


낭비가 아니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거였다. 독백이 될지라도, 내 삶을 애정 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해내야 하는 거였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림으로 소일거리를 하다가도, 끝내지 못한 나의 이야기는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잘 써서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썼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앞세울 일도 아니었다. 덤덤하게 나의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 게 중요했다. 그러지 않으면, 마무리되지 못한 이야기는 계속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터였다. 새 일을 시작하려면 더욱 마무리가 필요하다. 시작하고픈 새 일 앞에 나의 마무리는 더욱 중요해졌다.



생각을 고쳐 먹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쓰는 이야기가 아닌, 나를 위한 기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았다. 써도 뻔한 이야기,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나도 모를 일이지만, 나의 이야기는 나만 할 수 있는 거라고 고쳐 생각했다. 용기를 냈다. 하다못해 의리로 사는 남편만은 내 이야기를 새롭게 봐줄 테지.



오늘 아침,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내가 학교 가면 엄마는 뭐해?”

“응. 글 써.”

“글 쓴 다음에는 뭐해?”

“응. 글 써.”

“하루 종일 글만 쓰는 거야?”

“글 쓰다가 오빠 공부 같이 하고, 오빠 치료실 다녀오기도 하지.”

“그런 다음엔, 또 글 쓰는 거야?”

“응.”

“왜? 글만 쓰는 건데?”

“엄마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거든.”



학교 가는 딸에게 이렇게 일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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