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도綠島로 향하는 미로: 기억과 예술을 찾아가는 여정

Lyu Dao 혹은 Green Island

by 강제욱

타이베이의 새벽, 미로 속 여정의 시작

타이베이의 새벽은 늘 그렇듯, 잠든 도시의 깊은 숨결과 곧 깨어날 생(生)의 예감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5월 15일 목요일, 아직 어둠이 새벽의 푸른빛에 온전히 자리를 내어주지 않은 이른 시간,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녹도(綠島)로 향하는 여정을 채비하고 있었다. 이번 여정의 길동무는 왈리 아트(Waley Art)의 펑차이쉰(Peng Tsai Hsun) 대표. 대만 현대 미술계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리한 통찰과 거침없는 추진력으로 이미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그는, 이번 녹도 비엔날레의 주관을 맡아 그 격동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와의 인연이 어느덧 햇수로 8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예술이라는 교집합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며 묵묵한 신뢰를 쌓아왔다. 우리는 오전 7시 14분발 기차를 타기 위해 6시 50분,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한 터였다. 전날 밤, 그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기차 예약 정보가 담긴 모니터 화면 캡처 이미지와 함께 "We meet in here 6:50 in the morning, we take 7:14 train"이라는 그다운 간결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만은 네 번째 방문임에도, 타이완 철도(TR, 臺鐵)를 타고 동쪽 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것은 처음이라, 익숙한 설렘 뒤편으로 미묘한 긴장감이 작은 파문처럼 일렁였다. 나는 타이베이 중앙역 북편에 자리한 체크인 호텔(Check Inn Taipei Main Station)에서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 아직은 인적이 드문 거리, 그 청량하고 약간 싸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거대한 역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타이베이 중앙역은 그 규모와 복잡함으로 익히 알려져 있듯, 초행자에게는 일종의 도전 과제와도 같은 공간이다. MRT(지하철), 공항철도, 고속철도(HSR, 高鐵), 그리고 일반철도(TR)가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그야말로 거대한 미로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호텔에서 역까지 걷는 동안, 이제 막 셔터를 올리고 개장을 준비하는 가게들의 부산함과 출근을 서두르는 이들의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묵음의 도시를 서서히, 그리고 활기차게 깨우고 있었다.


역사에 들어서자 예상대로 길 찾기는 만만치 않았다. MRT와 공항철도 표지판은 반대 방향으로 비교적 쉽게 눈에 띄었지만, 정작 내가 이용해야 할 기차역으로 가는 길은 마치 어린아이의 숨바꼭질처럼 좀처럼 그 모습을 시원스레 드러내지 않았다. 일단 인파의 미미한 흐름과 운에 몸을 맡긴 채 MRT 표지판을 따라 걷다가,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조심스레 길을 물었다. 그녀는 다행히도 낯선 이의 물음에 친절한 미소와 함께 분주한 출근길 발걸음을 잠시 멈추며 MRT로 향하는 통로 근처,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법한,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철도역(HSR과 TR)으로 방향이 나뉘는 지점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어렴풋이나마 옳은 방향으로 걸어왔다는 사실에 작게 안도하며 기차역 구역으로 들어섰다. 왠지 모르게, 오늘의 시작이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음 관문은 예약된 기차가 HSR인지 TR인지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었다. 펑 대표가 보내준 예약 화면만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 기억으론 역사 내에서 HSR과 TR의 매표소 및 탑승구 위치가 서로 달랐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 메신저로 "What kind of train? Tell me exact name of train"이라며 HSR인지 TR인지 궁금증을 담아 재차 물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정작 궁금해하는 질문의 핵심에는 에두르듯 답하지 않은 채, "Here is your ticket, show them with the ticket" 그리고 열차 편명 "自強號 3000 NO408" 이라는 메시지만을 수수께끼처럼 보내왔다. 늘 분주한 그에게 구체적인 정보를 캐물으며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한번 나의 '감'이라는 불확실한 나침반을 믿어보기로 했다.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이다, ‘자강호’라는 명칭이 HSR보다는 TR의 열차 등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TR 매표소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늘의 두 번째 ‘찍기’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도 정답의 문을 두드린 셈이었다.


TR 자동발매기(키오스크) 앞에 서서 펑 대표가 보내준 예약번호와 내 여권번호를 차례로 입력하자, 마침내 매끄러운 종이의 감촉과 함께 실물 기차표가 손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臺鐵公司"라는 정갈한 글자와 함께 "2025.05.15", "408次 自強(3000) T.C. LTD EXP(3000)" 문구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출발시각 "07:14 開 DEPARTURE", 출발지 "臺北 Taipei", 도착지 "臺東 Taitung", 도착시각 "11:09 到 ARRIVAL", 좌석 "4車14號 CAR.4 SEAT.14", 운임 "NT $783". 손에 쥔, 아직 인쇄기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듯한 기차표는 단순한 종잇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펼쳐질 여정의 구체적인 증표이자, 미지의 시간과 공간으로 나를 인도할 마법의 양탄자나 다름없었다.


문득, 대만에서 로마자 표기 시 D 발음을 T로 적는 방식이 여전히 낯설게, 때로는 생경하게 느껴졌다. 'Taitung'이라는 문자를 눈으로 좇고 있자면 그 실체가 흐릿한 안갯속처럼 선뜻 다가오지 않다가도, 입으로 소리 내어 "타이동"하고 발음해볼 때 비로소 그 도시의 이름과 이미지가 또렷한 윤곽을 그리며 명확하게 다가왔다. 작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나는 마음속으로 그 간결한 이름을 다시 한번 천천히 끊어 읽어 보았다. “타이동.”


플랫폼으로 향하기 전, 짧은 여유와 만남

표를 발권하고 나니 시계는 6시 30분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펑 대표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한숨 돌릴 여유가 있었다. 플랫폼으로 내려가기 전, 새벽부터 이어진 공복감을 달래기 위해 역 구내 세븐일레븐으로 향했다. 홀로 즐기는 아침 식사는 단출하지만, 언제나 나름의 특별한 의미와 고요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진열대를 찬찬히 둘러보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몇 가지를 골랐다. 카스테라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지녔으면서도 미묘하게 짭짤한 맛이 감도는 빵, 아마도 대만식 옛날 케이크인 ‘구짜오웨이 시엔딴까오(古早味鹹蛋糕)’이거나, 혹은 다진 돼지고기를 말려 만든 고소한 가루인 루로우송(肉鬆)이 넉넉히 곁들여진 빵일 것이다. 그리고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차예단(茶葉蛋)’. 찻잎과 간장, 여러 향신료를 넣고 뭉근하게 삶아낸 이 계란은 특유의 깊은 향과 감칠맛으로 기차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믿음직한 동반자다. 거기에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빠오즈(包子) 하나를 더하고, 편의점 아메리카노의 진한 향으로 이 모든 것의 조화로운 마침표를 찍었다. 대기 공간 한편의 의자에 앉아 조촐하지만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를 즐기며, 다가올 여정을 위한 마음의 채비를 차분히 마쳤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약속 시간인 7시가 다 되어갈 무렵, 펑 대표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했다. "I’m at flatform 4b." 내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는 간결한 신호였다. 타이베이역 4B 플랫폼(4B月台)의 사진도 함께 전송했다. 곧이어 약속한 대로 펑 대표를 만났다. 젊고 활기 넘치는 그는 언제나처럼 명쾌한 미소와 함께 나타나, 가벼운 악수로 인사를 대신했다. 함께 기차에 올랐다. 창가 좌석인 14호에 앉으니, 비로소 긴 여정의 시작점에서 오는 안도감이 온몸으로 잔잔히 퍼져나갔다. 내 좌석(기차 좌석 배열이 특이하게도 짝수 좌석은 왼편, 홀수는 오른편에 배치되어 있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분주한 플랫폼의 풍경은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과도 같았다. 좌석 앞 선반에는 객차 시설 안내도가 깔끔하게 부착되어 있었다. 다국어와 직관적인 그림으로 친절하게 설명된 안내도에는 각 객차별 화장실(일반, 다목적, 남성용, 수유실), 수하물 보관 공간, 쓰레기통, AED(자동심장충격기), 소화기, 차장/승무원실 등의 위치가 상세히 표시되어 있어, 모든 승객이 한눈에 기차의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세심함이 돋보였다. 좌석 밑에는 110V 전원 소켓과 함께 USB 충전 포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스마트폰은 충실히 충전할 수 있었지만, 아뿔싸! 노트북용 110V 어댑터를 한국에서 가져오는 것을 깜빡했다. 이 사소한 실수가 이후 녹도에서의 작업에 얼마나 큰 지장을 초래할지, 이때는 미처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섬에서는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어댑터를 구하기 위해 수소문 끝에 겨우 하나를 샀지만 220V용임에도 플러그 날의 두께가 맞지 않아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유연함을 자랑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란, 때로 이처럼 예기치 않은 아날로그적 난관에 봉착하며 그 허술한 이면을 드러내곤 한다. 또한 한편으로 대만 현대사에서의 미국의 영향을 110V 전원 소켓의 불편함에서 미묘하게 읽어낸다.


녹색 섬으로 향하는 길, 그 의미와 무게

우리가 녹도로 향하는 이유는 명확하고도 절실했다. 지난 13일, 타이베이에서 녹도 비엔날레의 공식(원격) 개막식과 국제 콘퍼런스가 이미 성황리에 열렸지만, 실제 전시의 문이 대중에게 활짝 열리는 것은 17일부터였다. 수많은 스텝들의 고단한 노력과 숱한 난관을 거쳐 마침내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전시가 관객과 만나는 그 역사적인 첫 순간, 그리고 전시 준비의 막바지 열기가 최고조에 달하는 그 생생한 현장을 함께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그것이 바로 이른 아침 기차에 몸을 실은 가장 큰 이유였다. 제 4회 제주 비엔날레 그리고 올해 제주 4.3예술제와 협력관계인 비엔날레이기에 더욱 특별했다. 특히 17일은 과거 녹도에 수감되었던 정치범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이 섬을 방문하여 역사의 상흔을 위로하는 매우 특별한 날이라고 했다. 그들의 침묵하는 발걸음이 닿는 곳, 그들의 깊은 기억이 아로새겨진 공간에서 펼쳐지는 예술은 과연 어떤 무게와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가.


여정의 날짜들이 지닌 상징적인 무게감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5월 19일. 이 날은 대만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었던 날이자, 길고 어두웠던 백색테러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묘하게도 내 고향 광주의 오일팔 민주화운동은 대만의 계엄령 선포일(5월 19일)과 녹도 감옥 정치범들이 탄 배가 처음으로 지룽항을 떠났다는 1951년 5월 17일, 그 사이에 아련하게 위치한다. 이러한 역사적 기억의 교차점은 단순한 시간적 우연을 넘어,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의 험난했던 여정에 대한 깊고도 숙연한 사유를 불러일으켰다. *5월 19일은 대만의 White Terror Memorial Day白色恐怖記憶日이다. 1949년 5월 19일에 타이완에 계엄령省戒嚴令이 공포되었다. 또한 1986년 동일한 날짜에 언론인 정난룡(鄭南榕)이 주도한 계엄 해제를 촉구하여 대만 민주화 운동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 두 역사를 아울러 권위주의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민주화를 일군 시민 저항을 기리는 날로 자리매김 하였다.


국가인권박물관(國家人權博物館)이 주최하고 왈리 아트가 주관하는 이번 녹도 비엔날레가 바로 이 시기에 열리는 것은, 이러한 특별한 역사적 사실들을 현재의 시간 속으로 불러내어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일 것이다. 예술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숙고하며, 미래의 인권을 이야기하려는 숭고한 의지가 담겨 있으리라. 이번 비엔날레의 큐레이팅은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노부오 타카모리 씨가 맡았다. 역사에 대한 그의 정교하고도 폭넓은 이해와 날카로운 국제적 시선이 녹도라는 섬에 아로새겨진 역사와 현대미술의 다양한 결들을 어떻게 직조해낼지 자못 기대가 컸다. 그리고 그 여정에 주관사 대표인 펑 대표가 함께한다는 것은 더없이 든든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여러 상념이 교차하는 사이 기차가 마침내 타이베이의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남쪽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차창 밖 풍경은 시시각각 새로운 색채와 형태로 변해갔다. 익숙한 도시의 마천루가 점차 시야에서 멀어지고, 그 자리에는 생명력 넘치는 푸른 논밭과 부드러운 능선을 그린 완만한 구릉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졌다. 대만 철도 노선도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서쪽 해안을 따라 고속철도(HSR)가 눈부신 속도로 도시들을 연결하는 반면, 우리가 탄 TR 자강호는 동쪽 해안의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풍광을 따라 비교적 느긋한 속도로 추억을 실어 나를 것이다. 신주(Hsinchu), 타이중(Taichung)을 거치지 않고, 이란(Yilan), 화롄(Hualien)을 지나 타이동(Taitung)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거친 파도를 가르며 녹도로 들어가야 한다. 어쩌면 이 길고 지난한 여정 자체가 하나의 ‘동아시아 인권 순례길’일지도 모른다는, 경건한 생각마저 스쳤다. 과거의 아픔이 응축된 채 서린 섬으로 향하는 길,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타이동역, 후덥지근한 공기와 항구로 향하기 전 나눈 대화

드디어 차장 밖으로 녹도가 저 멀리 눈에 들어온다. 펑 대표가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11시 9분, 기차는 예정된 시간에 타이동역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타이베이와는 사뭇 다른 공기가 밀려들었다. 5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타이동의 햇살은 이미 한여름처럼 뜨거웠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후덥지근하게 살갗에 달라붙었다. 푸강항에서 녹도로 향하는 배는 2025년 5월 15일 13시 30분 출항 예정인 '천왕성 21호(天王星21)'였고, 돌아오는 편은 2025년 5월 18일 15시 출발 예정인 '개선 3호(凱旋3號)'로 왕복표를 미리 끊어둔 상태였다. (펑 대표가 건네준 승선권에는 내 이름과 신분증 번호 'M7347****', 그리고 표 일련번호 '97563002'가 찍혀 있었다.) 출항까지는 제법 여유가 있었다. 펑 대표와 나는 역 근처에서 간단히 식사와 음료를 해결하기로 했다. 역사를 나서자, 뜻밖의 반가움이 우리를 맞이했다. 바로 녹도 비엔날레의 공식 포스터였다. 타이동역과 푸강항 곳곳에서 마주친 포스터는 마치 이 먼 곳까지 찾아온 우리를 환영하는 듯했고, 여정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가슴을 뛰게 했다.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긴장을 풀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의 풍경과 생각들로 두서없이 이어졌다. "이 역에 고양이 한 마리 있는 거 아세요?" 펑 대표가 불쑥 말을 건넸다.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 어린 호기심과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은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역장 고양이에요, 역장 고양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번 보러 가죠. 운이 좋으면요." 그의 말에 문득 2월에 방문했던 필리핀의 사진 축제 ‘포토모토(Fotomoto)’가 떠올랐다. 행사가 열렸던 아얄라 미술관이 위치한 마닐라의 그린벨트 쇼핑몰에도 고양이들을 특별히 돌보는 안내판과 함께 자유롭게 노니는 고양이들을 볼 수 있었던 기억이 선명했다. 타이동역의 고양이 이야기와 마닐라에서의 기억이 겹쳐지면서, 낯설었던 타이동이라는 도시가 한결 친근하게 다가왔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작은 공통점 하나가 우리 사이의 대화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어주는 윤활유가 되었다.

나는 문득 터키 여행 중 만났던 수많은 길고양이들의 기억을 떠올렸다. "터키도 비슷하죠. 그리고 제가 갔던 아제르바이잔의 오래된 원도심에도 길고양이가 정말 많았어요. 사람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더라고요. 그곳 사람들은 고양이가 신과 인간 사이를 잇는 일종의 메신저라고 믿는다고 하더라고요." 펑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만의 나이 든 세대 중 일부가 고양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아제르바이잔이라는 낯선 이름의 등장에 우리는 잠시 구글 지도를 펼쳐 그 주변을 살펴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웃 국가인 조지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지아가 대만인에 대해 비자 발급을 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배경에는 아마도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조지아는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우선시하는 듯 보였지만, 정작 조지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내가 조지아에서 목격했던 중국의 대규모 토목 건설 붐으로 이어졌다. 아름다운 코카서스 산맥 곳곳이 붉은색 중국어 건설 구호로 뒤덮여 있던 광경, 그들의 수려한 산들이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펑 대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 돈. 중국은 물론 돈이 많죠, 그들이 돈을 찍어내니까요."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체념과 함께 복잡한 심경이 배어 있는 듯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전환하려 나는 조지아에서의 또 다른 경험을 보탰다. "맞아요. 그래서 어느 날 제가 (조지아에 있는) 친구에게, 도대체 중국인들은 여기서 뭘 만들고 있는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들이 조지아 산맥에 터널, 아주 큰 터널을 뚫고 있다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죠, '그거 혹시 중국으로 가는 터널이야?' 그랬더니 그들이 허탈하게 웃었어요. 어떤 터널이냐고요? 그저 산을 관통하는 거대한 구멍, 자동차와 기차를 위한 터널이라고 했어요. 중국은 그곳에도 정말 많은 것을 건설 중이었죠, 아주…"


이야기를 나누며 역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곳에는 분주하면서도 평화로운 일상의 활기가 넘실거렸다. 그때 펑 대표가 문득 "타이완 더 럭키랜드(Taiwan the Lucky Land)" 복권 이야기를 꺼냈다. 입국할 때 공항에서 참여했냐는 것이었다. "아니요, 그게 뭔데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대만 정부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모든 입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비 지원금을 지급하는 복권 이벤트인데, 당첨되면 5000 타이완 달러(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대략 150~160 미국 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비엔날레 초청 작가 중 한 명이 실제로 당첨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관광객이 "Congratulations! NT$5,000"이라고 적힌 패널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관련 링크(https://5000.taiwan.net.tw/)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다음번 대만 방문 시에는 잊지 않고 꼭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당혹감과 함께 옅은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지금 이 시점에, 녹도로 향하는 이 여정의 엄중한 맥락에서 고양이와 이 복권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어쩌면 그 특유의 위트이거나, 아니면 팬데믹 시절의 기억을 환기하는 작은 농담일 수도. 혹은 그저 대만 여행에 유용한 정보라 생각해서 무심코 건넨 말일지도 모른다. 이 예기치 않은, 다소 엉뚱한 정보의 등장은 오히려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여정에 묘한 생기와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마치 잘 짜인 연극 무대에 던져진 즉흥적인 애드리브처럼, 그것은 우리의 깊은 사유를 잠시 다른 방향으로 이끌며 이번 여행이 지닌 다채로운 면모를 슬며시 드러내고 있었다.


항구의 백색 소란, 그리고 푸른 바다로

우리가 역 근처의 한 가게에 들러 지역의 토속 음식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을 때, 주변은 갑자기 시장과 같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여 웅성거렸다. 펑 대표와 나, 그리고 주변 상인들로 보이는 이들의 대화가 짧고 빠르게 오가며, 그 왁자지껄한 배경 소음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好好啊,沒關係,可以。對啊對啊,最後沒有看到。哪裡有沒有那邊?最裡面。沒有進去。我的包包幫我看一下。幹嘛?你要去哪裡?我買啦。我買了,OK, 你要的。強。講啊,你去大陸,我今天你合檸檬跑了,這邊餐,謝謝。哎喲好了。12分35歲可以八分鐘一個你那邊做帶著是啊帶著賣掉賣50塊,對,一個70塊,一個70塊,70塊,這要買。좋아요,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맞아요, 맞아요, 결국 못 봤어요. 저쪽에 어디 있나요, 없나요? 맨 안쪽이요. 안 들어갔어요. 제 가방 좀 봐주세요. 뭐해요? 어디 가려고요? 제가 살게요. 샀어요, OK, 당신이 원하던 거요. 강추. 말해봐요, 당신 중국 갔을 때, 오늘 당신 레몬 음료수 가져가려고 했는데, 여기 음식, 고맙습니다. 아이고, 됐어요. 12개에 35원? 8분이면 하나 만들어요. 당신 저쪽에서 만들어서 가져온 거죠? 네, 가져와서 팔아요. 50원에 팔아요. 맞아요, 한 개에 70원, 한 개에 70원, 70원, 이거 사야겠어요."


이렇듯 정신없이 분주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짧은 순간의 소란스러움은, 오직 여행지에서만 온전히 체감할 수 있는 생생한 현장감 그 자체였다. 그것은 마치 잘 편집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장면처럼, 타이동이라는 도시의 꾸밈없는 일상적인 단면을 강렬하게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푸강항으로 이동하여 배에 오르기 직전, 펑 대표가 나의 컨디션을 살피듯 물었다. "배멀미는 안 하세요?" 그의 질문에는 언뜻 걱정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내가 평소 차나 오토바이 운전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파도를 가르는 배의 움직임에도 유독 취약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나의 안색이나 긴장한 표정을 보고, 섬으로 향하는 뱃길의 고단함을 미리 염려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잔잔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저는 의외로 배멀미는 전혀 안 해요. 예전에 필리핀 동 비사야 지역 아주 악천후 속에서 배를 탔을 때도 멀쩡했던 적이 많아요." 나의 대답에 그는 조금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이내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타이동의 후덥지근한 공기, 손에 쥔 기차표와 배편의 온기, 펑 대표와의 간헐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대화들, 그리고 어댑터를 놓고 온 나의 사소한 건망증까지. 이 모든 크고 작은 순간들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특별하고도 내밀하고 특별한 여행기를 직조하고 있었다. 녹색 섬 뤼 다오, 그 이름이 품고 있을 수많은 이야기와 강렬한 예술적 조우를 향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게 부풀어 올랐다. 인권, 기억, 치유, 그리고 예술의 역할. 이번 여정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을 넘어, 한 시대의 깊은 아픔과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인간 정신의 고결한 노력을 목도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펑 대표와의 동행은 그 여정의 의미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예리한 통찰과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우리의 여정을, 그리고 우리가 마주할 예술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나의 지적인 호기심과 예술적 감성은 이미 저 멀리 아득한 푸른 바다 너머, 역사의 숨결이 깃든 녹도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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