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으로 충만한 세상 #2

by 이룸

“그러는 자기는 누가 이상형인데?”


마담이 B를 향해 물었다.


“나?” B가 말을 받았다. “난 전지현.”


“전지현은 결혼했잖아.”


“호날두는 뭐 결혼 안 했나?”


“결혼했어?”


마담이 눈을 치뜨며 놀라워했다.


“그럼, 애가 몇 살인데…….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야, 마치 결혼 안 했으면 뭐가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네?”


B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하자 마담이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아니, 그냥…… 결혼 안 한 줄 알았지.”


“어이구, 자기도 결혼했으면서…….”


“결혼했다고 뭐 한 남자만 보고 살라는 법 있나?”


“그럼, 난 어때?”


“돈 많아?”


“에이, 돈이 중요해? 사람 됨됨이가 중요하지.”


마담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사람 좋아 봐라, 먹고살기 힘들면 갈라서게 돼 있어. 나라고 뭐 나이 들어서 이런 고생 하고 싶겠어? 남편이 돈벌이 못 하니까 나라도 돈 벌어서 자식 뒷바라지 해야지. 나니까 이렇게 참고 사는 거야.”


“남편이 뭐 하는데?”


S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화가야. 말이 좋아 화가지, 백수나 다를 바 없어. 나 같은 여자 만나서 호강하고 사는 거지.”


“그럼 왜 화가를 만났어, 처음부터 돈 많은 남자 물었어야지.”


B가 북어를 씹으며 비죽거렸다.


“에휴, 어릴 땐 돈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지. 그냥 사랑 하나면 다 되는 줄 알았지. 어른들 하는 말이 딱 맞았어. 사랑이 밥 먹여주는 거 아니더라고. 그러나 지금 와서 뭘 어쩌겠어. 팔자려니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뭐.”


“에이,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씁쓸하다.”


B가 맥주를 비우며 말했다.


“자기는 이상형이 누구야?”


마담이 이번에는 S를 향해 물었다.


“이상형 같은 거 있으면 뭐해…….”


시간이 흐를수록 S는 자꾸만 허무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가라앉았다. 메시, 호날두, 그리고 전지현……. 우주 저편에 사는 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 친구는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해.”


B가 S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그러자 마담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S는 날카로워지는 신경을 억누르려 애쓰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게 왜, 뭐 잘못됐어?”


“누가 뭐 잘못됐대?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 애기 때 아마 엄마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해서 그럴 거야.”


B의 말에 마담이 다시금 피식피식 웃어 보였다. S는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때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왔고, 마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담이 자리를 비우자 S는 맞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는 넌 다리 긴 여자 좋아하는 게 다리가 짧은 콤플렉스 때문이야?”


공격을 받자 B 또한 곤두서려는 신경을 다독이려 애썼다. S는 술잔을 비우고 북어를 양념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머리 빠진 것보다는 나아. 키만 크면 뭐해.”


B가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맥주를 마셨다. 그러곤 술병을 들어 올려 술을 따르려다가 병이 빈 것을 확인했다. 눈으로 마담을 찾으니 마담은 주방에서 안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B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가서 맥주 두 병을 꺼내 가지고 돌아왔다.


B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병을 내려놓았다. S도 맥주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S는 유치한 대화를 그만두고 화제를 돌리고 싶었지만, 부아가 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땅콩만 연거푸 입에 넣으며 우물거렸다. S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건드리자 B도 상한 감정을 수습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상황이 안 좋아서 너 같은 애를 만난다.”


B가 혼잣말하듯 웅얼거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딴청 부리듯 시선을 텔레비전을 향해 옮겼다. 텔레비전에서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소비시장이 변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뭐라고?”


S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에 휩싸였다.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나이 40이 넘었는데 백수로 지내면서…….”


B가 쯧, 혀를 찼다.


“내가 왜 백수야?” S가 B를 노려보며 말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건 일도 아니야?”


B가 한쪽 입 언저리를 들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자리 못 구해서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식당 일 거드는 거잖아.”


B가 자신의 잔에 맥주병을 기울인 다음 꿀꺽꿀꺽 술을 마셨다. S는 실내의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화를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아니,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냐. 사업 하다가 망해서 청소 일 하는 주제에…….”


S는 맥주를 마신 다음 병을 들어 다시 자신의 잔을 채웠다.


“아이 썅…… 왜 지나간 얘기를 끄집어내고 그래?” B가 미간을 찡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보다는 내가 나아.”


S가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참 내……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