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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27. 2022

귀에서 들려온 소리


  시골에서는 고요함이 지배적이다. 하염없이 심심한 시간 속에 둘러싸여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들려오는 소음이 반갑기까지 하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제트기나 헬리콥터 소리, 딸딸딸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경운기, 가을에 추수할 때 탈탈탈 소리를 내는 탈곡기……. 시골에서 자란 S에게 아로새겨진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자락이다.


  도시에서의 삶은 소음에 저당 잡힌 삶이다.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은 속도와 편리를 얻었고, 고요함과 느긋함을 잃었다. 고요함과 느긋함은 시대에 뒤처지는 특성으로 전락하였고, 시대의 흐름에 동승하기 위해 사람들은 너도나도 도시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듯이, 속도와 편리는 자연을 이용하고 환경을 훼손한 대가로 이루어진다. 소음 또한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적절한 선에서의 이용과 훼손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임계치를 넘어서게 되었다. 사춘기에 들어설 무렵부터 도시에서 지내고 있는 S도 시간이 흐를수록 심하게 훼손된 환경의 몸살을 느낄 때가 많아졌고,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어질 때 또한 많아졌다. 


  사람들은 고요함과 느긋함을 찾아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가끔씩. 오랜 시간을 시골에서 보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맑은 공기와 고요함이 좋긴 하지만, 속도와 편리를 잃고 싶지는 않아 한다. 속도와 편리의 혜택을 좀 더 풍부하게 누리기 위해 고요함과 느긋함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많이 쓰는 용어로 ‘재충전’이다.


  사람들의 전반적인 사고방식이 곧 그 시대와 사회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고요함과 느긋함보다 속도와 편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 환경 훼손과 소음 번창의 가속화를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S는 이명에 시달리고 있다. 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나오는 잡은 같은 소리가 귀에서 흘러나온다. 언제 어떤 연유로 시작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어느 날 문득 귀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줄곧 이명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고요한 밤 같은 경우엔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명 증상이 나타난 이후로 S는 소음에 민감해졌다. 길거리를 걸어가는데 바로 옆에서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 공사 현장을 지나칠 때 들려오는 쿵쾅, 땅땅 같은 소리들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되도록 그런 소음 근처엔 가까이 가고 싶지 않지만, 언제 어디서 그런 소리들이 출몰할지 어찌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속도와 편리의 삶을 얻고 누리기 위해 S도 나름 노력했으나 뒤처진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채로 주어진 속도와 편리만큼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언제나처럼 흘러나오는 이명에서 어떤 메시지가 섞여 들려왔다. ‘속도와 편리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한 제대로 듣고 보고 느낄 수 없다. 제대로 듣고 보고 느끼려거든 고요하고 느긋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계시처럼 들려온 그 소리를 떠올리며 S는 이제 고요함과 느긋함의 세계를 되찾는 것이 자신의 남은 삶에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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