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룸 Feb 28. 2022

관심사의 변천

  어린 시절 S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딱지치기, 구슬놀이, 자치기, 땅따먹기 같은 것들. 때로는 삽과 괭이를 들고 칡을 캐러 다녔다. 활쏘기나 전쟁놀이도 많이 했다. 겨울에 눈이 쌓였을 땐 언덕 위에 올라 비료 부대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곤 했다. 


  사춘기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큰 관심사는 아무래도 성(性)이었다. 몽정을 하게 되고, 자위행위라는 걸 알게 되고, 그러나 아직 뭐가 뭔지 명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성(異性)에 대한 호기심이 부풀어 오르던 시기였다. 그 시절 남자 중학교, 여자 중학교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여자라곤 선생님뿐이었고, 그리하여 변성기에 이른 소년들의 호기심은 여교사에게 집중되었다. 여교사가 허리를 굽히는 상황에서 가슴골이 드러나면 소년들은 그저 황홀하기만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질문하는 학생이 있을 경우, 여교사의 치마 아래로 손거울을 들이밀어 안을 들여다보는 녀석도 있었다. 


  성(性)은 이데아와 같은 것이었다, 저 멀리에서 신비롭게 반짝거리지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몸이 변화를 시작했지만 아직 미미하고, 어른의 세계로 섣불리 들어서는 것은 께름칙하기도 할뿐더러 진입도 쉬이 허용이 안 되고, 그런 상태에서 소년들은 분화된다. 어른들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며 공부나 운동에만 열중하는 소년, 어른들에게 반항을 하며 빨리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소년, 어른들 앞에서는 말 잘 듣는 것처럼 연기하고 혼자 있을 때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다르게 행동하는 소년. 아마도 세 번째의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었고, S도 거기에 속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주말이 되면 한물간 성인영화만 상영하던 싸구려 영화관에 가서 앉아 있곤 했었다.


  S는 대학생이 되어 여자를 사귀면서 성(性)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 성(性)은 더 이상 이데아가 아니게 되었고, 그 자리를 음악과 문학이 대체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줄곧 라디오를 통해 즐겨 들었던 노래들.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면서 S는 수많은 군중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달뜨곤 했다. 대학생이 되어 기타를 산 뒤 기타 학원을 잠깐 다니고 나서 독학을 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도 미진하기만 했다. 기타를 마음껏 자유자재로 주물럭거리고 싶은데, 기본 코드를 잡고 기본 아르페지오와 기본 스트로크를 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런 미흡한 상태로 몇 개의 곡을 만들었고, 대학가요제에도 나가보았지만 여지없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문학에서의 첫사랑은 헤르만 헤세였고, 강렬한 사랑은 프란츠 카프카였다. 그러나 그때껏 일기조차 길게 써본 적이 없었던 S로서는 소설쓰기는 아직 먼 나라 얘기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를 썼다. 시를 썼다기보다는 시 같은 것을 끼적거렸다는 게 좀 더 적합한 표현이리라. 소설은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막상 쓸 때는 희열에 사로잡히곤 했지만, 나중에 다시 들여다보면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돌이켜보건대 좀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험했어야 했는데, 모든 게 어설프기만 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품었으면 미친 듯이 책을 읽어도 모자랄 판에 시간이 날 때만 쉬엄쉬엄 읽었고, 무언가 경험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도 머뭇거리다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꿈은 높게 설정해 놓은 상태에서 꿈을 이루기 위한 실행은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삼십대엔 연애에 푹 빠져 지냈다.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일이 끝나면 사귀는 여자와 함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관계를 갖고, 때로는 여행을 다니고…….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꿈은 오래 전에 접었고,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도 접었다. 학원 강사로 많은 돈을 벌고, 달콤한 연애를 바탕으로 결혼을 해서 살게 되면 그런 대로 괜찮은 삶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학원 강사로 많은 돈을 벌지도 못했고, 연애도 달콤함보다는 쓴맛을 느껴야 할 때가 더 많았다. 달콤함보다 쓴맛이 훨씬 깊고 진했다.


  사십대에 다시 혼자가 된 S는 침울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사진에 취미를 붙였다.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게 점점 희박해져 간다는 것이 느껴지고, 몸은 여기저기서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학원 강사로서의 일도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게 쉽지 않고, 그래서 조그마한 공간을 얻어 교습소를 열었지만 수입은 미미하기만 하고, 이래저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까이에 자리한 건지산, 덕진공원, 전주한옥마을 같은 곳을 다니다가 차츰 옥정호, 대둔산, 덕유산으로 행동반경을 넓혔고, 나중에는 설악산으로, 남해로, 제주도로, 중국 장가계까지 가게 되었다.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보정을 하고 정리를 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휙휙 지나갔다.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우울해지는 마음을 그런 방식으로 치환시켰다고나 해야 할까. 사진을 보면서 가끔씩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짤막하게나마 기록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다시금 글쓰기에 마음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오십대에 홀로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S는 주식 투자를 하게 되었다. 교습소를 운영하면서부터는 생활비도 충당하기 힘든 생활이 이어졌고, 게다가 언제까지 이 일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상황이다. 노후를 대비해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던 중 아는 사람을 통해 주식에 입문했다. 시작한 지 1년 6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뭐든 그렇지만 주식의 세계도 쉽지가 않다. 꾸준히 공부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가는 수밖에는 없어 보인다.


  S는 그렇게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주식 투자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는 게 막막하고 힘겨울 때도 종종 있지만, 그럴 때마다 뼛속 깊이 스며드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며 꿋꿋해지려 한다.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매거진의 이전글 귀에서 들려온 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