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오후 #3

by 이룸

5


그녀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눈을 꼭 감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어디 아프세요?”

그녀는 다시 눈을 뜨고는 쌔액 웃어보였다.

“별 거 아니야. 가끔씩, 편두통이 있어. 우리 밖으로 나갈까?”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우리는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낙지볶음밥을, 나는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와 나는 줄곧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두고 있었고, 밥이 나왔을 때에도 텔레비전을 보며 간간이 얘기를 나눴을 뿐이었다. “텔레비전 자주 보니?” “텔레비전보다는 영화를 많이 봐요.” “어떤 영화 좋아해?” “대중없어요. 누나는요?” “책을 많이 보는 편이야.” “어떤 책을요?” “주로 전공과 관련된 책들이지.” 마지못한 듯 우리는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을 지우기 위해. 그러나 자연스레 이어지지 못하는 대화들은 여전히 어색함을 휩싸고 돌았다.

식당에서 나와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이곳에 대학교가 생겼느냐고 내가 물었고, 이제 5년 되어간다고 그녀가 대답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학교 안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학생회관 건물 앞에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 또 걸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서로가 말이 없었다. 뭔가 말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왜 우리가 지금 이렇게 같이 걷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생각건대 그녀와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만난 사이도, 가깝게 지낸 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기간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한때 내 마음에 커다랗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랗게 자리했던 존재였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어떨까?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야외음악당이었다. 무대며 객석이며 할 것 없이 온통 노란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무대 위로 올라갔고 나는 무대 바로 앞의 객석으로 향했다. 그녀는 쌔액 웃음 지으며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르며 빙글빙글 몇 바퀴 돌았다.

“그땐 참 욕심이 많았지. 한꺼번에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고 한 거야. 가난, 그리고 욕망.”

그녀는 또 국문학 강사답게 압축적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넌 왜 그때 갑자기 사라졌니?”

‘그때’라는 건 역시나 십 년 전을 말함이었다.

“대학교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었지요.”

나는 둘러대었다.

“칫, 그래도 말이라도 하고 떠났어야지.”

그녀는 귀엽게 눈을 흘겼다.



6


나는 지금도 내가 조연으로 출연했던 연극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때만큼 열심히 한 순간에 몰입했던 적은 없었다.

초여름이었다. 분명 나는 배역에 맞는 연기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연습에 몰두했다. 배역을 맡았던 사람이 무슨 일인가로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자리였다. 대본은 어느 소설가의 중편소설을 각색한 것이었고,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다. 그래서 역을 소화해내기가 버겁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 연약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호흡하며 연습에 임했다.

“중요한 건 실력이 아니라 정성이야.”

그녀의 그런 말들이 또한 나에게 힘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연극은 별 탈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과정에 충실하면 결과는 자연스레 결실을 맺게 된다, 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곧 내 삶의 지표가 되었고, 그래서 나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지닐 수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내가 해냈다는. 이참에 아예 배우의 길로 진로를 결정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우선은 대학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연극영화과를 지원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집안에서도 말리겠지만, 나 또한 평생을 배우로 살아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나에게 배우로서의 자질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갈 즈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재수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부가 잘 안 될 때나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에는 소극장에 들러 일을 도와주었다. 언제까지나 나는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어느 고급 술집 앞에서 그녀를 보고 말았다. 간판에는 ‘최상의 룸서비스’라는 글씨가 불을 뿜고 있었다. 새빨간 루주를 칠하고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굽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 분명 그녀였다. 어떤 분장을 해도 나는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가 새까만 양복을 입은 술 취한 남자의 어깨에 매달려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남자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호기롭게 손을 펼쳐들었다. “어머, 사장님 멋져!” 그녀가 교태를 부리며 흐드러지게 웃음을 뿌렸다. 나는 눈을 꽉 감았다가 다시 뜨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역시 그녀였다.

그녀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완벽한 연기였다. 남자가 검정색 승용차에 올라타자 그녀는 남자의 볼에 입을 맞추며 또 뭐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차가 떠나자 서둘러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전봇대에 등을 기대고 망연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7


“특별한 삶을 살고 싶었지 그땐.”

무대 위에서 내려와 내 앞에 앉으며 그녀는 말했다.

“중학교 때 사업이 부도나고, 아버지가 자살했어. 고2 때 어머니가 재혼을 했는데, 새아버지라는 사람은 나를 여자로 보더라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어. 그래서 휴일에도 집에 있기가 싫어졌어. 목적 없이 거닐다가 소극장을 알게 되었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지. ……혼자 떨어져 나와 살면서, 꿋꿋이 일어서고 화려하게 성공하는 모습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어. 그러나 꿈은 거창하고 현실은 초라했지. 분수에 맞지 않는 꿈이었어. 현실과 이상 사이에 너무 큰 간극이 있었던 거야. 그러다 보니 스스로 상처를 덧내는 경우도 많았지.”

그녀는 씁쓸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나와의 만남이 기억 저편의 아픔을 끄집어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먼 기억 속을 나도 헤집어 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 년 동안의 내 삶을 뒤흔들었던,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을 그녀라는 존재. 그러나 모든 것이 흐릿하게 떠오르다가 갈라지고 흩어져 버렸다. 남겨진 것은 마주 앉아 있는 현재뿐이었다. 불투명한 오후의 현재만이 그녀와 나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

“그땐 참…… 체화(體化)되지 않은 말들을 툭툭 내뱉으며 살았지. 그래야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나 나나 어린 건 마찬가지였는데…… 그때 넌 한참 어려 보였고, 난 세상을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했지. 어디서 그런 자만심이 생겨났을까?”

그녀는 쓸쓸하게 웃어보였다. 당신은 저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었어요, 하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십 년 전의 그녀는 한때는 저 멀리에서 찬란히 빛나는 별빛이었고, 또 한때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별의 이면(裏面)이었다. 이제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때, 그리고 대학 졸업 이후에도 숱하게 배우 오디션에 응모해 보았지만 번번이 불합격이었어. 지방의 소극장에서 연극하는 사람이 직업배우로 성공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언제까지나 순수한 열정 하나로 살아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6개월 간 이곳저곳 떠돌아다녔어. 내가 진정 원하는 건 뭘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동안 항상 무언가에 떠밀리듯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군. 특별한 삶을 꿈꾼 것도, 그래서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천천히 되짚어보니 어쩌면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고. 비루한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도피처를 마련하고 싶었던 거야. 이제부터 현실을 바로 보자, 하고 마음먹었어. 거창한 것을 버리고 현실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

“후회하세요?”

나는 물음을 던졌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후회하지 않아. 어쩔 수 없는 길,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였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됐어요.”

“뭐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얽매여봤자 좋을 거 없잖아요.”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앞으로가 중요하지. ……십 년 뒤에는 지금을 돌아보면서 활짝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

그러면서 그녀는 동의를 구하듯 활짝 웃어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십 년 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을 하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그녀가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임이 있다고 했다.

야외공연장을 빠져나오며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각자의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잘 지내.”

“누나도요.”

대학교 정문을 빠져나와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으면서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망각 속으로 깊이깊이 묻어두었던 지난날의 조각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그녀가 떠오를 때마다 나쁜 년, 나쁜 년! 하고 욕해댔던 나날들이, 그 누구도 진정으로 가까이하지 못하고 불신과 의심의 눈길로 바라봤던 나날들이, 모든 것을 이율배반이라 단정 짓고 허무와 체념 속을 유영했던 나날들이…….

버스에서 내려서야 나는 아, 그 오솔길, 하고 생각하며 월하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날 월하리에 간 것도, 그곳에서 그녀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녀를 만나러 그곳에 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그럼 필연은 무엇인가, 하고. 그런 우연들이 모여서 필연으로 연결되는 것 아닌가, 하고.

현실의 흐름이 마음에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마음의 흐름이 현실에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흔적이 어떤 모양새를 지닐 것인가는 오롯이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생각이 파닥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투명한 하늘 아래 벚나무가 길게 늘어선 그리움의 오솔길. 그곳에서 그녀와 손을 맞잡고 나란히 걷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