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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Jun 13. 2022

왜 우리는 축구에 열광하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생활 곳곳에 인공지능이라는 게 많아지면서 좀 더 빠르고 편리하게 원하는 것을 얻거나 행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물론, 좋다. 30년 전, 40년 전과 비교해 보라.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었고, 컴퓨터가 보급되긴 했어도 지금처럼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없었다. 얼마나 좋아진 세상인가. 그러나 문명의 발전이 주는 혜택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건 기계화, 자동화의 ‘가속화’를 의미할 따름이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지닌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미 1차 산업혁명 때부터 기계에 의해서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2차, 3차로 갈수록 그런 현상은 심화되어 왔다. 술을 마실 때 1차에서 2차, 3차로 갈수록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형국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2차, 3차, 4차 산업혁명으로 갈수록 인간이 만든 기계에 의해 인간이 밀려나는 형국이 커지고 넓어진다. 사용자는 기계를 선호하게 되어 있다. 인건비 절감은 물론이려니와, 불만투성이인 인간에 비해 기계는 끊임없이 부려먹어도 아무 불만을 내뱉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하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아무나 최첨단의 삶을 살 수는 없다. 그에 걸맞은 경제력을 갖춘 사람만이 4차 산업혁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미 충분한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야 4차든 5차든 걱정할 게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려한 열차에 동승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서라도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 거기에 실패한 사람들은 박탈감을 안고 허름한 열차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에 따라 사람끼리의 관계는 갈수록 서먹해지고, 사람과의 접촉 자체가 현격히 줄어든다. 주유소 같은 곳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 만날 일이 없어졌고, 마트에서도 무인 계산기가 많아지고 있으며, 무인 편의점까지 등장했다. 침대에 누운 채로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뭐든지 집에서 편하게 배달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수입이든 지출이든 기계로 처리하면 오해로 인해 얼굴 붉힐 일도 없다. 


  기계의 편리함이 인간끼리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멀어지게 만드는 세상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은 고독감이다. 인간(人間)이라는 용어의 본뜻이 무색해지고 있다. 이제 인간을 규정짓는 용어로는 ‘기계 속의 삶’이 더 적합할 듯하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기계는 발전 또 발전을 거듭하고, 그 발전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인간은 노력 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못하면 뒤처진 삶을 살아가거나 낙오자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지친 인간은 단순하고 원초적인 삶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축구에 열광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같은 집단끼리 힘을 모아 열심히 뛰어서 목표하는 골을 넣는 것, 경쟁 집단과 겨루어 이기는 것. 그것은 선사 시대의 부족집단이 사냥을 하거나 이웃 부족과 필사의 생존경쟁을 벌이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우리의 유전자에 깊숙이 각인된 원초적인 인간(人間) 상태를 일깨워준다.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영원한 노스탤지어’를 향해 우리는 열광한다. 석기 시대에 비한다면 산업혁명 이후의 시대란 인류 역사를 1년 365일로 계산했을 때 단 하루는커녕, 하루 중의 단 1분에 불과하다. 경기장에서 직접 선수로 뛰고 싶지만, 아무나 그러한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원초적인 몸과 민첩함을 지닌 사람만이 선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수들을 바라보며 대리만족한다.


  그것이 어디 축구뿐이랴. 원시성에 대한 그리움은 게임, 격투기, 마약, 야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네 삶에 변형되어 침투해 있다. 대개 그것은 팍팍하고 메마른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너무 깊이 빠져들면 현실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삶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함께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인간은 머리가 아플 것이고, 그에 비례하여 단순성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갈 것이므로. 원초적인 상태에 대한 향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우리 몸을 흔들어댈 것이므로.


  S는 오늘도 컴퓨터를 켜고서 축구나 격투기를 본다. 마약은 접해본 적 없지만, 온건한 마약이라고 할 수 있는 술과 담배를 주기적으로 흡입하고 있다. 야동은…… 으음…….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던가, 말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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