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나는 훌쩍 떠났다.
S에게는 이 한 문장이 머릿속을 떠돌 때가 많다. 뜻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릴 때는 종적을 감추었다가 답답한 삶이 이어질 때 이 문장은 머릿속에 떠올라 붕붕 떠다닌다.
그럴 때면 S는 자신을 옭아매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들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 가서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매일 오가는 길이 지겹고,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에 신물이 나고, 반복되는 일과 생각들에도 염증이 난다. 뭐 다른 건 없을까, 새로운 길은 없을까,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보아도…… 없다. 그럴 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어디선가 덜그럭덜그럭…… 기차 소리라도 들려온다 싶으면 그런 마음이 더욱 출렁거린다.
국내 여행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제주도.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한 바퀴 돌고, 안쪽을 또 한 바퀴 돌고, 마지막으로 한라산을 오른다. 서해나 남해에 자리 잡은 무인도에 가서 한두 달 살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문명의 산물들은 모두 한쪽 구석에 치워두고 원시인이 되어 맨몸으로 야생의 세계를 호흡하는 것이다.
국외 여행이라면 히말라야, 알프스, 킬리만자로, 나이아가라, 장가계와 계림……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광대한 자연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한동안 머물고 싶다.
지구 밖이라면……으로까지 상상은 나아간다.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의 행성들을 하나하나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태양계를 벗어나 카시오페이아, 안드로메다, 오리온…….
이렇게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 가까이 있는 대상의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기도 한다. 예컨대 ‘그녀’라는 존재가 곁에 있었을 무렵 그녀와 자꾸만 부딪치고 신경전을 벌이게 될 때면 그녀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여행 생각은 머릿속에 가득하지만,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건 쉽지가 않다. 생각하는 건 쉽고 간단하지만 실제로 떠나는 건 그렇지가 않으니까. S가 지금껏 바다 밖으로 다녀온 곳이라야 제주도와 장가계가 전부였다. 그것도 3박 4일, 4박 5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그녀’의 내면으로의 여행 또한 카시오페이아를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웠다.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애쓰기는커녕 자신의 생각대로만 하려고 했고, 그래서 계속 충돌만 커졌고, 결국 헤어졌다.
생각하는 대로 모두 실행하며 사는 삶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생각과 실제의 간극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리라. 그러니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고 해서 절망에 빠질 일은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며 살 수도 있고,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선택은 전적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S는 오늘도 여행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 생각은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삶은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르튀르 랭보가 말했듯 진정한 삶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여행 생각,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인식을 지니고 S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