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욕이 입에 붙었다. 뉴스를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욕이 나온다. 길거리를 거닐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4년 12월 3일에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충격과 공포를 느꼈지만 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고 몇 시간 뒤에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계엄 해제를 선포해서였다. 국회로 달려간 국회의원들, 보좌진들,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주가는 폭락했고, 대외 신인도는 추락했다. 그러나 12월 4일에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됨에 따라 나라가 차츰 정상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수처와 경찰이 소환을 통보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체포영장 집행에도 응하지 않았다. 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검찰총장을 지내고 대통령직에 오른 사람이 법을 저렇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때부터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가장 애용하는, ㅆ으로 시작하는 욕이.
대통령은 2025년 1월 15일 다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어서야 체포에 응하여 서울구치소에 구금되었다. 계엄을 선포하며 군인들을 동원했던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나와서는 거짓말을 마구 동원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법은 받아들이고 불리한 법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오고 욕이 비어져 나왔다.
어디 대통령뿐인가. 여당 국회의원들은 나라와 국민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계엄을 옹호하고 모든 책임은 야당에 있다는 식으로 사태를 몰아갔다.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국무위원들은 또 어떤가. 제 살길을 찾기 위해 역시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양심을 가슴 깊은 곳에 꼬불쳐 두고서 거짓말로 일관했다.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 탄핵 반대 집회가 점점 거세어졌다. 대통령이 구속 기소되자 법원에 난입하여 폭동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집회 현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그들의 모습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대한민국이 미국의 주로 편입되기라도 바라는 것일까. 목사 두 명이 집회의 선봉에 각기 자리 잡고 있는데, 사랑보다는 반공을 신조로 삼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을 '종북좌파'로 몰며 혐오와 폭력을 선동하고 조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한국사 강사라는 사람이 탄핵이 인용되면 ‘제2의 4·19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면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4·19 혁명과 내란 동조 폭동을 동일시하는 사람이 한국사를 강의한다고?
대통령 측의 구속 취소 청구를 3월 7일에 법원이 인용했다. 법조문과 오랜 관례를 깨고 영장 심사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꿰맞춤으로써 이루어졌다. 법원의 이해할 수 없는 판단에 대해 대검찰청이 즉시항고를 포기함에 따라 내란수괴가 석방되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처리한 행태다. 욕이 안 나올 수 없다.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않으며 헌법상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욕이 아니 나올 수 없다. 내란 동조자들이 욕 유발 경진 대회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구심마저 밀려든다.
가장 많이 나오는 욕은 ‘개’로부터 시작된다. 개들에게 미안해진다. 개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사람들은 욕할 때 개를 끌어들이게 되었을까. 기분이 나쁠 때 가까이에 있는 동물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 것 아닐까 싶다. 오래전부터 습관적으로 사용해 온 욕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사람은 역시 관습이나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욕은 ‘지랄’, ‘염병’, ‘병신’ 같이 장애나 질병과 관련된 욕들이다. 이런 욕을 뱉고 나서도 반성하게 된다. 소수자를 향한 무시나 멸시를 입에 담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 소수자를 존중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데,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는 것인데, 나 또한 권력이 없는 약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세 번째로 많이 나오는 욕은 글로벌 시대인 만큼 영어로 나온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리라. 초등학생들까지 ‘What the fuck’ 같은 말을 유행어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욕을 하고 나면 절로 한숨이 이어진다. 내가 왜 이러지? 제발 그만!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를 욕하게 된다.
욕을 유발하는 내란 세력과 내란 동조 세력에게 내 심성을 악화한 책임을 물어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바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법과 원칙을 따르겠다고 선언한다면 나는 즉각 청구를 취소할 준비가 되어 있다. 혐오와 폭력보다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실체를 가늠할 수 없이 교묘하고 끔찍하게 작동하는 법과 권력의 세계를 소설 <소송>을 통해 나타낸 바 있다. <소송>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그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판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아직 가 본 적 없는 상급 법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는 두 손을 쳐들고 손가락을 쫙 펼쳤다.
그러나 K의 목에 한 남자의 두 손이 놓이는 동시에 다른 남자가 그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고 두 번 돌렸다. 흐려져 가는 눈으로 K는 아직 자기 앞에서 두 남자가 뺨을 맞댄 채 결말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개 같은!” 그가 말했다. 그는 죽어도 치욕은 살아남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