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시간

by 이룸

탄핵 선고가 가까워지자 탄핵 반대 집회가 점점 거세어지는 모습을 보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발악을 주동하는 사람들은 탄핵이 되면 자신들의 힘이나 이익이 줄어든다고 판단한 사람들일 것이다. 주동자들이 자신들이 지닌 돈과 권력을 바탕으로 탄핵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퍼뜨렸을 것이며, 거기에 동조하거나 세뇌된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한 것이리라. 동조하는 사람들이야 자신들의 힘이나 이익과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그러는 것이겠지만, 세뇌된 사람들은 힘이나 이익과 관련이 없더라도 주동자와 동조자들의 주장에 서서히 침윤되어 그들의 말이 올바른 것이라고 결정을 내린 것이리라.


탄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건대, 주동자와 동조자들은 상식과 법보다 돈과 권력을 더 중시하는 자들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전혀 아닌데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온갖 궤변과 억지로 두둔한다는 것은 상식과 법 차원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럴 리 없었지만, 만약에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계엄을 할 상황이 아닌데 계엄을 선포했다면 나는 당연히 탄핵에 찬성했을 것이다. 만약에 세상에서 가장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그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닌데 계엄을 선포한다면 나는 역시 탄핵에 찬성할 것이다. 그것이 법이 있는 이유이고 상식이 통용되는 세상 아니겠는가.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에 이해관계나 호불호를 따질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내란을 일으킨 자가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당한 행위를 했으며,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이 내란 세력이라고 한다. 강도가 강도짓을 당한 사람에게 모든 죄가 있으며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태도와 마찬가지다. 내란을 일으킨 자와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내란을 일으킨 자의 정당성을 부각하고 그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들추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나치즘의 심리를 파헤쳐 분석한 바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자유가 없는 대신 안정이 있었다. 주어진 조건대로 그냥 살다가 죽으면 되었다. 신분제 사회가 해체되고 자유의 시대가 열렸다. 자유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지만, 안정 대신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가능성이 좌절로 향하고 무기력해지면 불안이 부풀어 오른다. 그러면 힘 있는 자가 나타나 자신을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된다. 힘 있는 자에게 자발적으로 종속함으로써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힘 있는 자는 그들을 마음껏 이용해 먹을 수 있게 된다.


자유가 없더라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 세상, 나에게 이익이 안 되어도 자유가 있는 세상. 둘 중에서 당신은 어떤 세상을 선택하겠는가. 안정이 주어지는 종속 상태가 좋은가, 불안정하더라도 주체적인 삶이 좋은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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