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니스와프 렘
우리는 인간 말고는 아무것도 찾으려 하지 않아. 다른 세계는 필요치 않은 거지.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인 거야. 지구에서 포화 상태에 이르러 질식할 지경인데도 지구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우주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상화된 이미지, 지구본과 같은 모양에 지구의 문명보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문명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가 미개했던 시절의 원시적인 이미지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야. 그런데 우주는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도 있는 법이지. 우리가 지구에서 갖고 온 것이 미덕의 결정체나 인류의 영웅적인 자질만은 아니질 않나!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이곳에 도착한 걸세. 그런데 상대가 우리에게 진실의 단면, 즉 우리가 침묵 속에 영원히 묻어 두고 싶어 했던 어떤 일부분을 드러내 보인다면, 우리는 절대 동의하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지!”
“그렇다면 그것의 정체는 뭔가?”
나는 스나우트가 말을 끝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물었다.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것일세. 다른 문명과의 접촉과 교류. 우리는 지금 그 접촉을 실현하는 중이라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우리 자신의 추악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수치스러움과 대면하게 된 거지. 그것도 엄청나게 확대된 형태로 말야.” -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중에서 -
우주 저편에 두 개의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 행성이 있다. 두 항성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불규칙한 인력 때문에 행성의 공전 궤도가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중력장에 변화가 일어나면 행성의 궤도가 단축되거나 연장되기도 해야 한다. 광선의 고열이나 혹한의 냉기 탓에 생명체가 등장해도 멸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궤도가 계속 일정하게 유지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준다. 지구에서 ‘솔라리스’라고 이름 지은 그곳으로 탐사대를 파견하여 연구한다. 솔라리스에 있는 ‘바다’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행성의 궤도에 능동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다. ‘바다’가 ‘사고력을 지닌 괴물’이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바다’는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뇌 속에서 ‘강렬한 기억의 원형질’을 읽어 내어 형체를 만들어낸다. 형체는 상처가 나도 금세 새살이 돋아나고, 로켓에 태워 정거장 밖으로 발사시켜도 다시 나타난다. ‘바다’는 인간의 지성과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따라잡을 수도 없는 존재가 우주 저편 어느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의 지능을 월등히 뛰어넘는 존재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어리석고 무기력한 자기 자신과 대면해야 한다. 그러니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손해지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일종의 은유(메타포)로써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구에 있는 바다도 우리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바다에는 인간의 기억, 더 확장해서는 온 생명의 기억이 간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신비의 영역이므로, 그저 받아들이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해변만 서성이고 나서도 바다에 대해 많이 안다고 떠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십 년 동안 심해를 탐사하면서도 바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오만한 마음이 꿈틀거릴 때면 바다로 가서 넓고 깊은 세계를 바라보며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야겠다.
'마음의 바다'가 연상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항해하다가 자신의,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읽지 못하거나 잘못 읽어 망망대해에 빠진 채로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 소설에서 심리학자 크리스는 솔라리스를 탐사하기 위해 우주 정거장에 갔다가 십 년 전에 자살한 연인 하레이를 예전 모습 그대로 만난다. 만약에 내가 솔라리스에 간다면 나에게는 누가 나타날까. 지금껏 살면서 나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의 대상은……. 5년 동안 사귀다가 헤어진 여자가 떠오른다. 처음 보았을 때 우아한 느낌을 받아 반했고, 그리하여 애정 공세를 펼쳤고, 상대방도 나에 대해 호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어 사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격 차이로 부딪치기 시작했고, 점차 싸움이 빈번해졌고, 결국 구질구질한 방식으로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서 처음엔 상대방을 욕했다.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왜 나는 저런 여자를 만나게 되었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에 대한 욕은 자책과 반성으로 바뀌었다. 나는 왜 너그럽지 못했을까, 왜 내 욕심에만 사로잡혀 살았을까……. 솔라리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 소설은 1961년에 출간되었다. 1972년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에 의해, 2002년에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제목 : 솔라리스
지은이 : 스타니스와프 렘
옮긴이 : 최성은
펴낸곳 :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