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로 칼비노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자녀를 많이 두었으며 올바른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에서 -
동화나 고전소설에서는 착한 존재와 악한 존재가 선명하게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는 고전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권선징악이라고 외우기까지 한다.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서도 착한 존재와 악한 존재가 나뉘어 전개되는 이야기가 여전히 많다. 그런 이분법은 내집단은 옳고 외집단은 그르다는 쪽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가족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 민족 이기주의로 이어지는 생각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지구상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있다. 착하기만 한 존재, 악하기만 한 존재는 없다. 그리고 착함과 악함이 어떤 상황에서나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것도 아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의 행위를 우리는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본 관료들에게 상냥한 태도로 일관한 이완용을 선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관점이나 맥락에 따라 선과 악은 달라질 수 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긍정의 웃음을 내보이는 사람, 아무런 관점도 없이 무작정 좋은 게 좋은 거야 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바보나 머저리라고 부른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이유는 상황과 맥락을 바탕으로 올바른 사리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선과 악의 고민 속에 살아가는 한 인간이 자신의 양면을 약물을 통해 분할하여 사는 방식으로 형상화했다면,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은 온전했던 인간이 전쟁으로 인하여 선한 면과 악한 면으로 나뉘어 존재하다가 다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선은 좋고 악은 나쁘다는 이분법을 바탕으로 했다면, <반쪼가리 자작>은 내가 행하는 선함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고 큰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착하기만 한 아이는 자라서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과 악을 경험하면서 올바른 사리 판단 능력을 지닌 존재가 현명한 인간이다. 비판의식을 지니고 분노해야 할 땐 분노할 줄 알아야 온전한 인간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이분법적인 선악 교육은 지양해야 마땅하다.
내란 사태로 인하여 두 쪽으로 갈라진 나라가 빨리 온전한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끝맺는다.
제목 : 반쪼가리 자작
지은이 : 이탈로 칼비노
옮긴이 : 이현경
펴낸곳 :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