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예술가들 #3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노래는 남녀 간의 만남과 이별을 소재로 한 ‘사랑 타령’이 80퍼센트 이상이다, 내가 느끼기로는. 개인적인 일상사에 대한 감정 표현이라는 범주로 영역을 확장하면 90퍼센트를 훌쩍 뛰어넘으리라. 그리하여 노래를 즐겨 듣다가도 이 노래가 저 노래 같고 저 노래가 이 노래 같은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장미꽃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꽃이든 사람이든 음악이든 다채로워야 좋은 법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사회와 시대를 노래하는 정태춘의 존재는 소중하다. 장미꽃 만발한 꽃밭 속에서 깊이 뿌리 내리고 우뚝 솟아오른 엉겅퀴를 만나는 느낌이랄까.
대한민국 노래에 있어서 내 첫사랑은 김현식이었다. 강렬한 가창력에 꽂혔다. <빗속의 연가>, <어둠 그 별빛>, <비처럼 음악처럼>, <넋두리>……. 슬픔, 우울, 절망, 절규 같은 단어들이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정서였고, 그것은 내 젊은 날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정서이기도 했다.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 시절이다. 사회 전체의 지배적인 정서이기도 했으리라, 아마도. 그의 노래를 자주 들을수록 한계가 느껴졌다. 가사가 너무 상투적이고, 앨범이 바뀌어도 큰 변화를 찾을 수 없었다. 개인적인 고민에 갇힌 채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느낌. 더 깊이 빠져들기만 할 뿐. 이제 김현식은 나에게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절망한 음악가로 기억된다.
정태춘의 노래는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다. 차분하다. 잔잔하다. 그래서 서서히 스며든다. 처음엔 강하게 끌리지 않았다. 그저 마음에 든다, 정도였다. 특히나 초기의 노래들은 다른 대부분의 가수들 노래처럼 감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인의 마을>, <촛불>, <떠나가는 배> 같은 노래들. 내용이 모호한 경우도 많았고, 목가적인 이상향을 꿈꾸는 방랑이 주된 정서였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와 다른 점이라면 가사가 좀 더 시적이라는 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태춘은 변화했다. 목가적인 이상향에서 현실 사회로 눈을 돌리게 됨으로써 모호했던 방향성이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서슴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사회적 약자들을 따뜻하게 보듬는다. 서정성에 사회성이 결합한, 진정성 있고 울림이 강한 노래들을 뿜어낸다.
“우리들의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힘든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멀리서 보이는 불빛처럼 따스함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죠. 그런데 정태춘 씨 생각은 달라요. 위로는 무슨 위로냐.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거죠.” 1998년에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박은옥이 한 말이다.
그렇다. 노래로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우리에게 낯선 인식이었다. 노래란 그저 공감과 위로의 영역이었다. 사회 변화는 정치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생각건대 영역이라는 건 단순하고 명확하게 구획되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이 정치의 영역이다. 대통령, 국회의원만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네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게 정치 아니겠는가. 감상적인 노래들은 우리에게 감상적이 되도록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고,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고 좋은 세상을 모색하는 노래는 사회 문제에 무심한 사람들을 자극하여 세상을 바꾸자는 생각이 스며들게 한다.
<아, 대한민국…>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에겐 무관심하고 돈과 권력 위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하며 반어적으로 탄식하고 있다.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절망적인 상태로 흘러가는 시대를 장마에 빗대었고, 장마가 끝나고 맑은 날의 시대로 나아가기를 염원하고 있다. <5.18>에서는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라고 노래하며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의 아픔에 눈 감지 말기를 당부하고 있다.
몇 년 전에 가수들이 나와서 누가 더 노래를 잘 부르는지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방송이 있었는데, 한 마디로 ‘성대 대결’이었다. 누가 더 목청껏 소리를 내지를 수 있느냐가 주된 경쟁거리였다. 소리를 크게 내질러야 노래를 잘 한다는 인식이 강박관념처럼 작용하는 세상에서 정태춘은 나지막하지만 묵직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다. 음반 제작의 주요 동기가 상업성에 초점이 맞춰진 세상에서 타고난 서정성에 서사성과 사회성을 장착한 채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자기만의 길을 이어가는 정태춘의 존재는 값지고 빛난다.
2016년에 미국의 포크록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인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가 주어졌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훌륭한 미국 음악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낸 딜런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대한민국에서 비슷한 이유로 노벨문학상이 주어진다면 누구에게 돌아갈까. 단연 정태춘이다.
하나 더. 정태춘의 구슬프고 투박한 목소리와 박은옥의 아련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고운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노래를 들을 때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나도 누군가와 저런 환상적인 호흡을 주고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꼭 노래가 아니더라도 그 무엇으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