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by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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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도 짧고 그림이나 사진이 곁들여져 있고, 그래서 어린이나 청소년용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린왕자>와 <갈매기 조나단>이 대표적인데, 두 작품 모두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이며, 나이 들어서 읽어도 여전히 좋습니다. 두 작품 말고 또 하나의 작품을 말한다면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입니다.


먹고 자라기만 하는 것을 따분하게 여긴 호랑 애벌레가 다른 애벌레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갑니다. 애벌레들은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짓밟습니다.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와 사랑을 느끼고 땅으로 내려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위로 오르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노랑 애벌레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고민하며 헤매 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비가 되기 위해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늙은 애벌레를 만납니다. 노랑 애벌레는 늙은 애벌레를 통해 꽃들에게 사랑의 씨앗을 날라주는 나비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한편 꼭대기에 다다른 호랑 애벌레는 꼭대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노랑나비가 기둥 주위를 맴돕니다. 힘들게 기어오르지 않고도 높이 나는 존재가 있다니! 노랑나비가 호랑 애벌레에게 눈빛을 보내고,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가 나비가 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기둥에서 내려온 호랑 애벌레는 노랑나비의 인도로 ‘보다 나은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남을 짓밟으면서 높이 오르는 삶을 살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다른 존재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 것인가……. 세 번째의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입니다. ‘애벌레’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고치’ 속에서 오랜 시간 참고 견뎌야 ‘나비’가 될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도 <데미안>에서 말한 적이 있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자기중심성 속에서 살아가며, 그것을 깨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이, 존재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늙은 애벌레의 영향으로 노랑 애벌레는 벌레가 되고, 노랑나비의 영향으로 노랑 애벌레도 나비가 됩니다.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들이 많을수록 좋은 세상이 되겠지요. 그 출발점은 ‘나부터’입니다. 나부터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위의 사진은 2011년 9월에 건지산 안에 자리한 오송지에서 촬영한 산호랑나비이고, 아래의 사진은 2025년 7월에 진안의 모래재에서 촬영한 호랑나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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