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는 말로 세상의 이치를 요약한 바 있습니다. 세상에 흐르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멈춰 있는 광물이나 흙도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변하기 마련입니다. 우주 자체가 흐름 속에 있으며, 우주에서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도 자연히 흐르는 것이고, 지구에서 작은 점 하나로 살고 있는 우리 또한 가만히 있어도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 또한 끝이 아닌 것이, 모든 생명은 죽음을 자양분으로 살아가고 죽음이 있어야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흐름에서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듯이 사회의 흐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광포한 사회 속에서는 광포한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자유로운 사회 속에서는 자유로운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의 흐름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지만 사회의 흐름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광포한 사회의 흐름에 저항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로 변화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여러 번 반복된 일입니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의 가사 중에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 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라는 구절에서처럼 우리는 번민과 갈등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흐르듯이 우리의 마음 또한 흐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장을 ‘어떻게 흐를 것인가’ 또는 ‘어느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로 치환해도 될 듯합니다. 지금 당장의 즐거움이나 편함을 위해 욕심을 부리거나 양심을 거역한다면 훗날 후회와 탄식의 흐름 속에 놓여 있을 공산이 큽니다. 지금 당장 손해를 보거나 불편하더라도 올바름을 추구한다면 훗날 만족스러운 흐름이 찾아올 것입니다.
똑같은 물의 흐름도 단노출로 촬영할 때와 장노출로 촬영할 때의 느낌과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단노출이 자연스럽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면, 장노출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순간순간이 자연스럽고 역동적으로 느껴지고, 길게 보았을 때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삶이라는 느낌을 주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위 사진은 백무동 계곡이고, 노출 시간은 1/100초입니다. 아래 사진은 지리산 이끼폭포이고, 노출 시간은 1.6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