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오늘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소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동차를 몰고 송광사에 먼저 들른 다음 위봉산성과 위봉폭포를 거쳐 위봉사까지 갔다. 10월초여서 그런지 아직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기지는 않았다.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위봉산성을 지나 오성한옥마을에 주차를 한 다음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고택과 갈대가 어우러진 장면을 촬영했고,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시 자동차에 올라탄 나는 집으로 향하려다가 오성제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목이 마르던 참에 ‘갤러리 카페’가 생각나서였다.
몇 년 전에 딱 한 번 간 적이 있었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나중에 돈 벌어서 이런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 경치 좋은 곳에 카페를 차리고 내부에는 그동안 촬영한 사진들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두고……. 그러나 ‘나중’이 과연 언제가 될 것인지……. 이런 카페를 차리려면 적어도 5억은 있어야 될 텐데…….
커피를 마시며 책을 좀 읽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입구 옆에 개 두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는 내가 카페 안으로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계속 엎드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눈을 약간 치뜨더니 다시 감는다. 투실투실한 몸에 투실투실한 얼굴이다. 모든 것에 초탈한 듯한 개의 생김새에 나는 끌렸다. 양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다음 카메라의 조리개를 조절하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소리에 개가 다시 눈을 약간 치떴다. 약간 치떴다기보다는 눈꺼풀의 절반만 올려 눈을 뜨는 것이 본래의 모습인 듯했다.
“기본은…… 돼 있고만.”
개가 느릿하게 말했다.
“무슨 기본?”
“다른 사람들은…… 서거나 앉아서…… 찍는데, 자네는…… 엎드려서 찍는 걸 보니…….”
“자네?”
개의 말을 끊으며 내가 말했다.
“내 나이가…… 인간으로 치면…… 60은 될 거거든. 자네는…… 몇인가?”
“40대 중반.”
“하는 일은…… 무엇인고?”
어이구, 무슨 말투가 이래. 꼭 조선시대 영감 같은 말투로군.
“학원에서 국어강사로 일하고 있어.”
“벌이가…… 시원찮은가 보구만 그래.”
“그건 왜?”
“잘 나가는…… 강사라면 평일이고 주말이고…… 정신없을 테니 말이야.”
“그런 감은 어떻게 터득한 거야?”
“그동안…… 인간들이 하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들었겠나.”
“그런데 왜 계속 잠만 자고 있는 거야? 만사가 귀찮아?”
“꿈을…… 꾸고 싶어서…… 그래.”
“무슨 꿈?”
“자네는 무슨 꿈을 꾸고 싶은고?”
꿈이라……, 하고 나는 떠올려 보았다. ‘희망’의 뜻으로 쓰는, 추상적인 의미의 꿈은 여러 번 생각해 보았지만, 잠 잘 때 꾸는 꿈에 대해서는 어떤 꿈을 꾸고 싶다고 궁리해 본 적이 없었다.
“질문이…… 어려운가? 뭘 그렇게…… 오래 생각해?”
“예쁜 여자랑 데이트하는 꿈?”
떠오르는 대로 주워섬겼다.
“솔로인가…… 보구만.”
“사귀던 여자랑 몇 년 전에 헤어졌는데…… 새로운 만남이 쉽지가 않네. 그래서 사진에 취미를 붙였어.” 사람이 아니라 개와 대화를 나누게 되니 속마음을 편하게 노출시켰다. “또 뭐가 있을까……. 몽골 초원에서 말달리는 꿈? ……로또 되는 꿈?”
“로또 되면…… 뭐 할 건데?”
“이런 근사한 카페를 하나 차려야지.”
“인간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구만. 인간으로 사는 게…… 만족스러운가?”
“그건 아니지만…… 다른 동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걸. 그런 그쪽은 무슨 꿈을 꾸고 싶은데?”
인간으로 치면 60이라는 존재에게 ‘그쪽’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지만, 달리 부를 만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개는 그런 것에 전혀 괘념치 않았다.
“한 달 전쯤…… 난생 처음으로…… 파란 나비를 보았다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잊히질 않네. 그동안 하얀 나비, 노란 나비, ……호랑나비, 멋쟁이나비, 제비나비…… 여러 종류의 나비들을…… 보았지만…… 그 어떤 나비에 대해서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파란 나비를 보는 순간…… 매혹되고 말았다네. 그 우아한…… 자태를 보고 입을…… 헤 벌린 채…… 쳐다보고만 있었지. 말을 붙여볼…… 생각도 못했어. 사리지고 나서야…… 아…….”
파란 나비에 대한 기억에 잠기려는 듯 개가 눈을 지그시 감더니 한참만에야 떴다.
“난 어쩌면…… 전생에…… 파란나비였나 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아…….”
개가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더니 팔이 저리고 고개도 뻐근했다. 잠시 이마를 땅에 대고 양팔을 좍 펼쳤다. 카페 입구를 오가는 사람들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남자, 개 앞에서 뭐하고 있다냐?” “개처럼 되고 싶은가벼.” “개팔자가 상팔자여.”
“그날 이후로……”
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본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개는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견지했다. 인간으로 치면 수도승 같다고나 할까.
“파란 나비가…… 다시 나타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건만…… 다시 오지 않더군. 그래서…… 꿈에서라도 보기 위해…… 줄곧 잠을…… 청하고 있는…… 거라네.”
“그랬더니 꿈에 파란나비가 나타나던가?”
“가끔. 매번…… 나타나지야 않지. 가끔…… 나타나기 때문에…… 달콤한 거지.”
“그런 건가?”
“그런…… 거지.”
“그럼 내가 그쪽의 달콤함에 방해를 한 건가?”
“그건…… 아니야. 대화를 통해…… 달콤한 존재를……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어.”
“그거 다행이군. 다음에 또 보자고,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별인사를 했다.
“자네도…… 달콤한 꿈을…… 꾸게나.”
개는 여전히 똑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억양 없는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했다. 나는 양팔을 좌우로 흔들고 고개를 돌려대며 몸을 풀었다.
달콤한 꿈이라……. 자동차 옆에 멈춰선 채 저수지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해 보았다. 딱 한 번 보았어도 잊히지 않는 존재. 나에게 그런 존재는 누가 있을까. 전생에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고 생각될 만큼, 꿈에서라도 다시 보게 되기를 염원하게 되는 존재……. 그런 존재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한편으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스멀거리며 몸을 간질였다. 그 바람은 점차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되어 몸을 흔들어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