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flower 6

by 이룸

그러니까, 한 달에 딱 한 번이었다. 너무 가혹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숲에 가지 않는 거였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들 지경이었다. 처음에, 숲에 가지 않을래요? 라고 했을 때, 미쳤어요? 이 밤중에 무슨 숲을. 가고 싶으면 혼자 가세요,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아니, 회식하던 날 그녀의 옆자리에 앉지 말았어야 했는데……. 눈에 뭐가 단단히 씌었던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씩 갖는 숲에서의 합일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열락의 세계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 모아 발산하는 듯한 희열을 잃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한 달에 딱 한 번이어서일 것이었다. 오랜 기다림이 안겨주는 선물인지도 몰랐다. 이삼 일에 한 번씩 경험한다면 그런 희열감은 희석되고 말리라. 오랫동안 참고 견디다 들이켠 술이 달콤한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한단 말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한없이 착잡해졌다. 고행을 자처한 수도승도 아닌 것을…….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는 글쓰기에 몰입하기는커녕이었다. 책을 펴놓고 앉아 이런 생각 위로만 둥둥 떠다녔다. 이제 내 정신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은 카프카가 아니라 그녀라는 존재였다.

그녀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슨 카프카란 말인가, 그녀를 이해해야 카프카에 다가설 수 있다, 그녀가 카프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그녀와 함께 지낼수록 나 또한 그녀처럼 이상한 논리에 빠져들고 있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도 옷을 벗고 지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그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 왜 일찍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며 나는 탄식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면 타인의 방식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형식이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자꾸만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얽혀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술술 풀려나오는 듯싶었다. 생각건대 나는 그동안 카프카의 소설 내용에만 빠져 있었지, 카프카의 살아온 과정이나 사고방식 같은 것에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타인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놈의 문학을 하겠다는 것인가. 문학의 시작은 인간 이해로부터가 아닌가. 그녀를 이해하는 것이 곧 카프카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다! 주술적인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점령했다. 논리적 비약이라는 생각이 슬쩍 끼어들었지만, 무시했다. 오랜만에 가슴속에 희망의 빛이 환하게 밝혀졌다.

아, 그러나 습관의 두꺼움이여! 관습의 단단함이여!

막상 옷을 모두 벗고 문밖으로 나서려니, 쉽지가 않았다. 문손잡이를 잡으려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몸을 섞기 위한 전단계로서의 옷 벗기는 그토록 자연스럽건만, 아무 목적 없이 홀라당 옷을 벗은 채 돌아다니는 것은 마음만큼 쉽지가 않았다.

문손잡이를 소리 나지 않게 돌리고 나서 열린 문틈으로 그녀를 살펴보았다. 발가벗은 그녀는 앉아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빨대로 맥주를 흡입하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새삼 대단하게 여겨졌다. 아, 어쩌면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을까. 새삼 존경심이 우러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천천히 문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어색하게 욕실로 향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왜 옷을 벗었어요?”

“더, 더워서요.”

버벅거리며 말한 다음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변을 본 후 거울을 통해 새삼스레 내 몸을 찬찬히 관찰했다. 그리고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았다. 헬스클럽에라도 다녀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슴과 어깨엔 근육이 사라졌고, 배와 허리에는 군살이 꽤나 붙어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건대,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달리기나 농구, 탁구 같은 걸 간간히 했었지만, 그 이후로는 운동이란 걸 통 해본 적이 없었다.

샤워를 하고 물기를 대충 닦은 후 밖으로 나왔다. 혹시 아는가, 물방울이 군데군데 포진해 있는 몸을 보면 그녀가 반응을 보일지. 그런 생각이 들자 흥분이 불쑥 치솟았다. 쑥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그녀의 곁으로 가서 섰다. 그러나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항상 발가벗은 내 모습을 보아왔던 것처럼. 불끈 솟아오른 녀석의 자태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였다.

“왜 옷을 안 입어요?”

“어, 나도 유리 씨처럼 벗고 살아 보려고요.”

그러자 그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더 이상 쑥스러움을 가눌 길 없어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건데요?”

흥미가 당기는지 그녀가 리모컨으로 볼륨을 낮추며 물었다.

“그냥……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서요.”

생각나는 대로 대충 얼버무렸다.

“처음엔 부자연스럽겠죠. 하지만 조금 지나 익숙해지면 곧 자연스러워질 거예요, 세상사 뭐든 그렇듯이.”

초연한 눈빛으로 그녀가 말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력을 거역하며 솟구쳤던 녀석의 기가 한 풀 꺾이는가 싶더니, 이내 한없이 오그라들었다.

이제 나는 그녀와 똑같이 살았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홀라당 옷을 벗어던졌고,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나서 그녀와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들여다보았다. 빨대로 맥주를 흡입해 보았지만, 그건 못할 노릇이었다. 감질이 나고 답답하기만 했다.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있다니! 되지도 않는 글쓰기에 얽매여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억압과 긴장 속에 살아왔던가.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평화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