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flower 7

by 이룸

그녀의 말마따나 금세 자연스러워졌다. 벗은 몸을 보고 새삼 흥분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옷을 비롯한 문명의 산물이라는 것들은 우리를 얼마나 복잡스럽게 하고 애달게 하는 것들인지. 생각건대 프란츠 카프카 같은 작가는 문명 세계의 복잡스러움을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게 느꼈고, 그 복잡스러움을 글로써 표현했고, 그러다 보니 신경쇠약에 걸려 시달린 것 아니겠는가. 아예 이참에 다 때려치우고 그녀와 함께 무인도 같은 곳으로 가서 둘만의 낙원을 건설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 생각마저 파닥거렸다.

옷을 벗고 지내다 보니 몸도 홀가분해졌을 뿐더러 머리도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갑갑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지 않은가. 누군가, 왜 그러느냐고 물어올까 봐서, 그런 낌새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그야말로 부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러움으로 연출하기 위해 애썼다. 간헐적으로, 세상만사야 어떻든 훌러덩 옷을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출렁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출판사 사장에게, 다 함께 옷을 벗고 일해 봅시다, 그러면 매출이 팍팍 올라갈 겁니다, 하고 진지하게 제안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가라앉혀야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말이나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녀가 항상 다소곳한 태도로 근무에 임하는 것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아지자 일종의 동료의식에서 나오는 미소가 절로 입 안을 맴돌았다.

*

언제나처럼 예고도 없이 우울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어쩜 이다지도 변치 않고 주기가 찾아오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회사에서는 어떻게 참고 견디는지 그것도 신기했다. 그런 날들에도 회사에서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그러나 집에 오면 그녀는 밥도 먹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침대에 웅크리고 누운 채 병든 강아지처럼 가끔씩 눈만 껌벅거렸다. 이런 날엔 평소와 다른 점이 또 한 가지 있었는데,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에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잘 때 배 위에만 이불을 덮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두 번 세 번 겪다보니 그녀의 우울이 생리현상과 연관된 것 같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기이한 것은 평소에 뽈록하던 가슴이 이런 날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처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았다.

“뭐 먹고 싶은 것 없어요? 죽이라도 사올까요?”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타고난 예민함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 자신이 아닌 한 어떻게도 이해할 수 없는. 아니, 그 자신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 어쩌면 수렁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일지도 모른다. 버둥거려봐야 더 깊이깊이 빠져들 뿐이기에 고요히 잠겨 있는 것인지도. 섣불리 도움을 주려 해보았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함께 빠져들게 되어 문제만 더 불거질 수도…….

그동안 나는, 진통제라도 사올까요? 병원에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같은 말들을 했고, 그때마다 그녀는 힘없이 고개만 내저을 뿐이었다. 어떤 말을 해도 반응은 똑같았다. 그래서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책을 보거나 글을 끼적거리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픔이 조금이라도 내게로 흘러와서 그녀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 했으면 싶은 바람에서였다. 그런 마음을 읽어서였을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줄기 강물 같은 눈물이라는 인식이 내 마음속에서 출렁거렸다. 그녀라는 이름의 나라. 내가 가보지 못한 장소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올라와요.”

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서, 불편하게 앉아 있다가 잠들지 말고 침대 위로 올라와 곁에 누우라는 의미가 읽혔다.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 옆으로 눕고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함께 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함께 잠드는 걸 불편해 했었다. 그래서 그녀가 소파에서 잘 땐 내가 침대에서, 그녀가 침대에서 잘 땐 내가 소파에서 잤었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땐 사오 일 지나서야 쾌활해지던 그녀가 이번에는 삼 일이 지나자 쌩쌩해졌다. 사흘간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잠이 들었으며, 나흘째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그녀가 옆으로 누운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곤 살포시 미소 지은 다음 입을 맞추었다. 나는 그녀를 꼬옥 껴안았다. 아, 이제 우리도 일반적인 연인들처럼 지낼 수 있게 되는 건가, 하는 기대가 꿈틀거렸다. 기대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것으로까지 둥실 떠올랐다. 조만간 결혼반지를 준비하고 프러포즈해야지. 어디서? 당연히 숲에 가서 해야지. 우리 둘만의 숲에서…….

그리하여 나는 엉덩이를 좌우로 앞뒤로 흔들면서 밥을 하고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욕실에서 나오던 그녀가 내 모습을 보곤 마치 텔레비전을 보며 웃듯이 깔깔거렸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더욱 신이 나고 흥분까지 된 나는 더욱 동작을 크게 하며 엉덩이를 좌우로 앞뒤로 흔들어댔다. 그런 어느 순간 빳빳하게 솟아오른 녀석이 싱크대에 부딪쳤고, 나는 고꾸라진 채 아야야, 고통스런 신음을 연거푸 입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자지러질 듯 웃어넘기던 그녀가 웃음을 뚝 그치고 놀란 얼굴로 다가와 저런저런, 하며 안쓰러워하더니 솟아오른 녀석에게 얼굴을 가까이하곤 입김을 뿜어내며 호호, 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주기를 내심 고대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