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8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토요일이었으며, 아침부터 무더웠다.
여름이 물러가기 전에 더위가 마지막으로 발악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연거푸 부채를 부치다가 선풍기를 틀고, 냉동고에 얼려둔 물을 가져와 사타구니에 두었다가 겨드랑이에 두었다가 발바닥에 두기를 반복했다. 거실에 에어컨을 설치해 두었지만, 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녀가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더위를 타지 않았다. 그리하여 회사에 갈 때면 위에는 속옷을 두 개씩 껴입었고, 아래에는 기모스타킹을 신었으며, 늘 긴팔 옷을 입었다. 쉴 새 없이 틀어대는 에어컨에 대비해서였다.
여름에 이 정도니 날씨가 쌀쌀해지면 과연 어찌될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쌀쌀해지자마자 보일러를 쉼 없이 가동해야 하는 걸까. 난방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오겠는걸. 그나저나 숲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숲을 여름에만 가는 건 아니겠지? 가을이나 겨울엔 텐트를 가지고 가야 하나? 그건 아닐 텐데…… 그럼, 설마 다시 여름이 오기까지 나는 도를 닦으며 기다려야 하는 건가? 오, 끔찍하여라!
내가 이런 생각 속을 떠다니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그녀는 텔레비전에 눈을 박고서 언제나처럼 깔깔거리고 있었다. 내가 볼 땐 전혀 우습지 않은 걸 보면서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젠 달라질 거야. 나는 속으로 도리질을 치며 생각을 이어갔다. 어젯밤에, 그리고 오늘 아침에 분명 달라진 모습이 보였잖은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녀도 달라지는 거야. 진심을 다한 애정은 무쇠도 녹인다고 하지 않던가. 암, 그럼, 그렇고말고. 나는 주문을 외우듯 생각을 몰아쳤다.
“어디…… 시원한 계곡에라도 갈까요?”
그녀가 웃음을 멈춘 사이에 미세한 기대를 품고 물어보았다. 그녀가 여지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유명한 곳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가면 발가벗을 수 있지 않을까요?”
“대낮엔 그런 곳 없어요.”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하긴, 말해 놓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런 곳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그런 곳이 있다한들 벌건 대낮에 땡볕 아래서 발가벗고 있는 건 몹시도 민망스러울 것 같긴 했다.
실로 변화무쌍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길 없는 날씨였다.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온 세상을 사막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작심을 한 듯이 타오르던 태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두워졌다. 커튼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니(그녀가 온 뒤로는 늘 커튼을 닫아둔 채로 지내왔다. 커튼을 열어둔 채 지낸다면 밖에서 누군가 목격하곤 구청에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지 않은가. 풍기 문란 같은 것으로 말이다.) 태양을 집어삼킨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점거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조그맣게 번쩍번쩍하며 크르르르, 괴물이 으르렁거리는 둣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느 순간 후둑, 후둑, 후두둑…… 빗줄기가 산발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큰 번쩍거림에 뒤이어 우르릉 쾅! 하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번개 소리가 온 세상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 들려왔다. 건물이 통째로 흔들렸으며, 그와 동시에 빗줄기가 경쟁이라도 하듯 굵직한 선을 그으며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커튼을 닫고 뒤돌아서니, 언제 와 있었는지 그녀가 내 뒤에 서 있었다.
“와, 장난이 아니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가요.”
그녀가 말했다.
“가다니, 어딜요?”
“숲에.”
“숲? 지금?”
미쳤군, 미쳤어, 소리가 절로 입 안에 감돌았다. 나는 눈을 치뜨고 입을 헤 벌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행거로 향하더니 원피스를 꺼내어 머리 위로 쏙 집어넣었다. 참 간단하기도 하지. 별 수 없이 나도 팬티를 입지 않고 트레이닝 반바지와 셔츠를 몸에 걸쳤다. 어차피 숲에 가면 홀라당 벗을 것이니 벗기에 편리한 것으로 고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도 원피스를 입어볼까, 싶은 생각을 잠시 해보았지만, 참기로 했다.
어지간히 내리는 비가 아니었다.
건물 현관으로 나와 보니 벌써 온 세상이 부옇게 변했고, 길바닥은 이미 호수가 된 상태였다. 이 지경인데? 하는 얼굴로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뭐가 어때서?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곤 우산을 펴들고 주차된 곳으로 향했다. 세상에, 그녀는 신발도 신고 오지 않았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우산을 펴고 걸음을 옮겼다. 철벅, 철벅, 샌들이 물에 잠겼고, 우산을 썼지만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옷이 금세 젖어버렸다.
시동을 걸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윈도브러시와 비상등을 작동한 채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몸을 앞으로 잔뜩 수그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운전을 해야 했다. 앞이 부예질 때마다 수시로 환풍기를 틀었다.
모든 차들이 비상등을 켠 채 거북이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움직이는 차들은 다 뭘까, 싶은 의문이 일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에도 차를 움직여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딘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폭우를 만나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하는 차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뭐란 말인가. 이런 날씨에 사서 고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면 그녀는? 흘깃 옆을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눈앞을 주시하고 있다가 시선을 느끼곤 나를 쳐다보았다.
“운전 힘들어요? 제가 할까요?”
“아니에요.”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버럭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뻘짓이에요! 당신이란 여자는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화창할 땐 싫다고 하더니 이런 날씨가 되어서야 숲에 가자고 하고……. 그러나 나는 그런 마음을 짓눌렀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것에 머물러 있는 한, 내 생각만을 고집하는 한 새로운 길은 열리지 않는다. 그녀를 이해하는 길, 그것이 카프카로 가는 길이다……. 생각을 그런 쪽으로 몰아붙이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