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ddest thing 11

by 이룸

“어떤 책은 백만 부 넘게 팔리는데, 어떤 책은 일천 부도 나가지 않는다……. 그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오?”

“그거야 뭐…… 능력 차이라고 봐야죠.”

그러자 왕규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게 아니오. 대부분은…… 운이오.”

“운도 결국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따를 수 있는 거잖아요.”

나는 반발했다. 그러나 왕규는 차분한 자세와 표정을 유지했다. 술도 천천히 조금씩 마셨다.

“팔리지 않는 책을 제지공장에 헐값에 팔아넘길 때마다 마음이 무겁기만 하오. 자식을 화장시키는 부모의 심정이 되오. 물론 그 중에는 대충 끼적거린 글도 있겠지만, 뼈를 깎는 고통으로 써내려간 작품도 있을 것 아니겠소. 그런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아 사람들의 손에 가 닿지 못하고 도살되는 걸 생각하면 한없이 슬퍼지오.”

평소 술을 마실 때의 호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극히 감상적인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어디 그게 책뿐이겠어요? 사업도 그렇고, 스포츠도 그렇고, 연예계도 그렇고……. 평가받지 못해도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말을 마치고 나자마자 부끄러웠다. 내뱉은 말을 불러 모아 다시 삼키고만 싶었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말이었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힘든, 스스로 실행하지도 못하면서 남에게는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일반론.

왕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니오. 거기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침울한 얼굴로 왕규가 소주를 한 모금 삼켰다. 나도 소주잔을 비웠다. 세상에, 이런 날도 있다니…… 놀라웠다. 왕규는 이제 철학가의 모습이 되어 곰곰 상념에 잠겼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야겠소. 천천히 걸으며 생각 좀 하고 싶소.”

그리하여 1차만 마시고 헤어졌다, 소주를 단 두 병 마신 채로. 조금 더 마시자고 내가 조르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진 사람마냥 허청허청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더할 수 없이 쓸쓸해 보였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나 또한 걷고 싶어졌고, 그리하여 집까지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운전을 하기도 싫었고, 대리운전에 몸을 맡기기도 싫었고, 택시를 타기도 싫었다. 그저 하염없이 걷고만 싶었다.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속이 텅 빈 조개껍데기가 된 것 마냥 허전하고 공허하기만 했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 남짓 걸은 것 같았다.

*

“고 선생에게는 첫사랑이 누구요?”

금요일 저녁, 일이 끝나고 순대국밥집에 앉았을 때 왕규가 물었다. 첫사랑이라…….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요.”

떠오르는 대로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왕규가 히죽 웃으며 훼훼 손을 내저었다.

“에이, 그런 소꿉장난 말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첫사랑은 누구였을까?

“고등학교 때 독일어 선생님?”

나는 스스로 의구심에 사로잡히며 말했다. 도대체 첫사랑이란 게 무엇을 기준으로 설정해야 하는 것인지 개념 정립이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이성인지, 흠모하며 짝사랑하던 대상인지, 첫경험을 말해야 하는 건지……. 왠지 갈수록 멍텅구리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 선생님 영향으로 헤르만 헤세나 프란츠 카프카 같은 작가들에게 매료되었고, 대학도 독어독문학과를 들어가게 되었으니까요. 가냘프게 생겼는데, 독일어 발음이 참 섹시했죠. Ich liebe dich…….”

나는 그 선생님의 발음을 떠올리며 느끼한 말투로 흉내 낸 다음 핼핼 미소 지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있는 사이 왕규는 이미 자기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 들어가 있는 듯했다. 고개를 쳐들고 망연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더니,

“오늘…… 내 첫사랑을 만나게 되오.” 하고 말했다.

그의 눈은 저 멀리 우주 저편을 떠돌고 있었다.

“거의 30년 만이오. 30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거라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소?”

그의 눈이 우주 저편에서 다시 나에게로 이동했다.

“네, 궁금합니다.”

그러자 그가 휴대전화를 치켜들었다.

“요즘 세상은 다 이걸로 통하오. SNS라는 게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다 지워버리잖소.”

그가 동의를 구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SNS를 잠시 했었지만, 시간 낭비인 것 같아 언제부턴가 하지 않게 되었다. 내 대답과 상관없이 그가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