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우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야구부 유니폼을 입은 동네 형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희망이라는 이름의 녀석이 찾아와,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말로 영우를 꼬드겼다. 녀석은 번지르르한 얼굴에 말은 청산유수였다. 영우는 그 꼬드김에 홀라당 넘어가 야구부에 들어갔다.
텔레비전을 통해 프로야구 경기를 볼 때마다, 예쁜 연예인과 결혼하는 야구선수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녀석은 불시에 나타나 말하곤 했다. 저것이 너의 미래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몫이다. 영우는 그때마다 기대와 흥분에 휩싸인 채 부르르 몸을 떨곤 했다.
녀석의 말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중고등학교를 지나 프로선수가 되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리라. 운이 좋으면 미국의 메이저리그에까지 진출해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누리게 되리라. 가슴이 벅차게 부풀어 올랐다.
초등학교 때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저 잠깐씩 놀이하듯이 훈련을 했고, 그래서 재미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달라졌다. 어쩌면 코치를 잘못 만나서인지도 모른다. 코치는 학생들 사이에서 ‘미친개’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는데, 자신의 기분대로였다. 기분이 좋을 땐 잘 대해주는가 싶다가도, 한 번 기분이 틀어지면 걷잡을 수가 없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한다’가 훈련의 일관된 지침이었다.
학생들의 타격이나 수비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시범을 보인 다음 똑같은 자세로 100번을 반복하도록 시켰다. 꼭 100번이었다. 지금 몇 번 했냐? 물어보았는데, 까먹었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68번 했는데 78번 했다고 요령을 피우기라도 하면 버럭 성을 내곤, 운동장 열 바퀴! 하고 뺑뺑이를 돌렸다. 훈련에 임하는 자세에 열의가 없어 보인다 싶으면 엎드려뻗쳐를 시키곤 방망이로 허벅지를 향해 풀스윙을 했다.
지옥이 따로 없었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그럴 때면 희망이라는 이름의 녀석이 나타나,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화려한 선수들도 다 겪은 과정이다, 세상에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말들로 영우를 얼렀다.
학생들끼리 있을 때면 시발 새발 욕을 주고받다가도 코치가 나타나면 또 잔뜩 긴장한 채 훈련에 임해야 했다. 안 맞기 위해 영우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뛰었고, 3루수에 4번 타자로 활약하게 되었으며, 전국대회에서 4강이라는 쾌거를 이룰 때 결승 타점을 날리기까지 했다. 거 봐라,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거야, 나만 믿고 따르면 되는 거야, 희망이 다가와서 말했고, 영우는 뿌듯한 기분으로 녀석을 얼싸안았다.
고등학생이 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줄 알았다. 좀 더 유능한 지도자를 만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웬걸, 영우가 진학한 고등학교에 미친개가 배정받은 상태였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연극의 대사 같은 말이 절로 입 안에서 맴돌았다. 미친개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옮겨 온 것은 4강이라는 ‘신화’를 일궈내서 승진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나를 다시 만나니 기분이 어떤가?” 미친개가 물었고,
“기분이 좋습니다!”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일행은 살짝 미소까지 머금으며 소리쳤다.
“나도 너희들을 계속 이끌게 되어 몹시 기쁘다.” 미친개가 흡족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나를 처음 만나는 애들에게는 너희들이 얘기해 줘라, 내가 얼마나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겸비한 지도자인가를. 나를 따르면 못 이룰 게 없다는 것을.”
이제 미친개의 목표는 전국대회 우승이었다. 그리하여 더욱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고등학생이 되어 첫 전국대회가 열렸고, 16강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8강에서는 와르르 무너졌다. 7:0 대패였다. 경기 시간 내내 미친개는 악다구니를 썼지만,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대조가 되었다. 상대팀은 여유 있게 플레이를 했지만, 영우의 팀은 경직된 플레이를 했다. 미친개의 악다구니로 인해 실책도 자주 범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어떻게 혼날지가 걱정이었는데, 웬일인지 미친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울한 표정으로 버스에 올라탔을 뿐이었다.
미친개가 달라졌다. 8강에서 패배를 안겨준 팀이자 그 대회에서 우승한 K고에게서 강한 자극을 받은 게 분명했다. 불호령이 사라졌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놀이하듯 즐겨라’가 새로운 훈련 방침이었다. 학생들은 놀이하듯 즐기다가도 오래된 습성으로 인해 미친개의 눈치를 보곤 했다. 미친개는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채 학생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다.
6개월 뒤에 다시 전국대회가 열렸는데, 16강에도 들지 못했다. 그러자 미친개는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했다. 다시금 불호령과 얼차려와 뺑뺑이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역시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법이 최고야, 하고 마음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다 너희들 잘 되라고 하는 거야, 알겠나?” 뺑뺑이를 돌리거나 얼차려를 시킨 다음에 어김없이 뒤따르는 미친개의 훈계였다. “경험해 봐서 알겠지? 정신이 해이해지면 16강에도 들지 못한다. 악으로 깡으로 뛰어야 가능한 게 8강, 4강의 세계야. 죽을 똥을 싸지르면서 뛰면 우승도 못할 게 없다, 이 말이야! 그런 성과가 나와야 프로팀에서 스카우트를 해 갈 거 아닌가, 안 그래?”
철저히 경험에 의거한 미친개의 말에 학생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좀 더 유능한 코치로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는 한에서는 미친개의 말이 옳았다.
다음에 열린 대회에서는 8강까지 올랐고, 영우에게 있어서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대회에서는 4강까지 올랐다. 미친개는 다시금 4강의 ‘신화’를 고등학교에서도 일궈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준결승에서 다시금 K고와 맞붙게 되었고, 5:1로 패배했다. 준결승 경기에 프로팀의 스카우트들이 많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영우는 프로팀 입단에의 부푼 꿈을 안고 뛰었다. 경기가 끝난 이후로도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은 채 하루하루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만 또각또각 흘러갈 뿐이었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으며 프로팀에 입단하는 K고의 에이스 투수와 4번 타자를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