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절망의 이중주 #2

by 이룸

그때 절망이라는 이름의 녀석이 영우를 찾아왔다. 녀석은 희망과는 반대로 외모도 꼬질꼬질했고, 얼굴은 몹시도 어두웠으며, 말은 어눌하기만 했다.


“이런 게…… 인생이라는 거지. 넌…… 이제야 비로소 인생을……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영우는 결국 프로팀에 입단하지 못하고 대학에 체육학과 특기생으로 진학했다. 열패감이 온몸을 휩싸고 돌았다. 그저 관성적으로 하루하루에 몸을 내맡겼다. 아무 감흥도 없이 캠퍼스를 거닐고 훈련에 임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프로야구 경기를 지켜볼 때마다, 신인으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쳐 보인다는 K고 출신의 투수와 타자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열패감은 커져만 갔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절망이라는 녀석이 나타나서 기를 죽였다.


“어차피 특출한 소수는…… 탄생하는 거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지.”


대학의 코치는 미친개와는 정반대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 보는 게 어떨까, 하고 권유하고 독려하는 스타일이었다. 6년 동안 미친개의 방식에 익숙해 있던 영우는 대학의 코치에게 오히려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간혹은 미친개가 그리울 때도 있을 지경이었다.


마음이 한없이 풀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그동안 저 구석으로 밀쳐두었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몸을 간질였다. 외로움은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야구는 참으로 단순하고 편리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외로움은 시간과도 공간과도 규칙과도 무관했다. 부지불식간에 불쑥불쑥 쳐들어와서 처분을 기다렸다. 줄곧 야구만 알고 살아왔던 영우에게 그것은 정체불명의 외국어를 처음 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영우 또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주말이면 합숙소에서 빠져나와 동료들과 어울려 도심을 배회하거나 오락실이나 피시방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자 단체로 움직이는 경우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처음엔 단체로 모여 술을 마시거나 당구를 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플레이로 바뀌었다. 이유가 뭔가 했더니, 여자를 만나 연애라는 걸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우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만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혼자된 시간이면 오락실이나 피시방이나 만화방에 들어가 시간을 때웠다. 운동장에 나가 혼자서 연습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좀처럼 그런 의욕이 일렁이지 않았다.


피시방이나 만화방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허무감이랄지 공허감 같은 감정이 온몸을 휩싸고 돌았다. 하지만 별다른 대안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런 채로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그런 기간이 길어지자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까지 밀려들었다. 왜 사는 걸까, 하는.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지만, 영우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주로 4학년 선배들이 주축이 되었고, 영우는 대타로 한 번 나가서 삼진을 당했을 뿐이었다.


간혹 프로팀에 스카우트 되어 떠나는 선배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역량 부족을 실감하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사정이 생기거나 하여 선수생활을 그만두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선수로서 성공하겠다는 미련을 버리고 지도자의 길로 나서거나 아예 진로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중고등학교 때는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했다. 과연 나는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가, 하는. 중고등학교 때는 오로지 꿈에만 부풀어 살았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스타 선수들과 자신의 미래를 동일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미래의 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막연한 미래가 아닌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고 보니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어떻게든 프로선수가 되어야 해, 하고 영우는 생각했다. 다른 삶의 길은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염두에 두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껏 투자해 온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프로선수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남들이 여자를 만나고 술을 마시러 다닐 때 지쳐 쓰러질 때까지 훈련하자, 하고 영우는 이를 악물었다. 매일 저녁 운동장을 열 바퀴 돌고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한 다음 스윙 연습을 했다. 직구일 때, 커브일 때, 슬라이더일 때를 머릿속에 그리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오랜만에 희망이 모습을 보였다.


“기적은 간절한 소망에 의해 이루어진다.” 녀석이 말했다. “절망이 있기에 희망도 있는 것이다, 어둠이 깊어야 빛이 강한 것처럼.”


노력의 효과가 나타났고, 주전선수로 뛸 수 있게 되었으며, 대학리그에서 결승전까지 올랐다. 영우는 3번 타자에 3루수로 4할이 넘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이었다. 프로구단의 스카우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3:3의 팽팽한 접전 속에서 8회말 2사 1, 3루 상황이었고, 영우에게 기회가 왔다. 긴장하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가볍게 밀어 쳐서 타점을 기록하자는 생각을 지니고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편 투수가 공을 던졌고, 스윙을 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힘이 너무 들어갔다. 빗맞은 공이 왼쪽 발목을 강타했다. 얼얼한 통증을 느끼며 영우는 쓰러졌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병원에 실려 갔고, 발목골절에 인대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영우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희망과 절망이 번갈아 다녀가다가 어느 날은 동시에 나타났다.


“이렇게 부상당한 것도…… 다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절망이 말했다.


“누구에게나 운이 안 좋을 때가 있는 거야.” 희망이 말했다.


“이제 그만…… 미련을 접는 게 좋을걸. 부상당한 인간 따위…… 세상은 거들떠보지도 않아. 어차피 세상은…… 냉혹한 거니까.” 절망이 말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퇴원하고 나서 충실히 재활훈련에 임한다면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전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게 될 거야.” 희망이 말했다.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야. 달리 먹고살 궁리를 하는 게…… 좋을걸.” 절망이 말했다.


“긍정의 힘을 믿어! 넌 할 수 있어!” 희망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