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그날 밤, 영란은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둘째 아이의 눈빛 속에는 말 못 할 분노가 고였다.
“엄마, 나 커서 아빠 꼭 죽일 거야.”
그 말은 아이의 영혼 깊은 데서부터 터져 나온 비명이었다.
영란은 그날 밤, 모든 걸 내려놨다.
더 늦으면, 아이의 마음마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은 이미 무너졌어도, 아이는 무너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가방 하나.
그 안에 아이 옷 몇 벌, 밥 한 덩이, 돈 몇 장.
영란은 일단은 시급한 둘째만 안고 밤기차를 타고 대전 고향으로 도망쳤다.
그녀가 선택한 곳은 대전 시내 끝자락의 허름한 원룸이었다.
철길 옆, 뒷골목 사이에 숨은 반지하 방.
창문은커녕, 습기 찬 벽과 곰팡이 냄새만이 함께했지만
그 방에서 만큼은 아이가 밤에 발차며 악몽 꾸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영란은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
공장 일, 포장 작업, 식당 설거지, 장날 좌판까지.
때론 며칠 밤을 새운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아이에게 그 피곤함을 들키지 않았다.
그렇게 세 달.
시댁에 남아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언젠가 함께 할 날을 앞당기기 위해 정말 열심히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채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생활을 만들어 나갔다.
그런데 먼발치에서 금속이 바닥을 긁는 소리 가 들리더니
챙- 탕 탕 탕
철재 공구들이 부딪히며 정체 모를 울림을 뿜어 냈다.
그렇게 점점 그녀의 집 앞까지 다가오더니
그녀의 집 앞에서 멈춰 섰다.
그가, 찾아왔다.
그날도 영란은 시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겨우 찌개 하나를 끓이고 있었다.
현관문이 쾅, 하고 박살 나듯 열렸다.
술 냄새가 썩은 기름 냄새처럼 진동했다.
그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와이셔츠는 한쪽이 바지 밖으로 빠져나온 채
기름 자국과 피 같은 무언가가 번져 있었다.
그리고 흐릿한 눈동자.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금방이라도 그녀를 죽일 것 만 같았다.
“야 XX 년아!!!”
그의 눈엔 광기와 배신감이 엉켜 있었다.
“네가 감히 날 피해? 내 자식을 데려가?!"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슴이 떨렸고, 따듯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어떻게.. 왔어?"
그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은 한 손으로 내 목을 잡고, 숨을 헐떡거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도망가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냐??"
"지금 장난하나 너는 나한테서 못 도망가 알았어?"
"아니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알아?"
그녀는 극심한 공포감에 휘감겨 있을 때,
둘째가 배고프다며 잠에서 일어났고 그녀는 그 순간
그의 손안에 있는 연장을 보았다.
그녀는 순간적인 힘을 발휘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둘째를 욕실로 밀어 넣고
몸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문을 막았다.
그러자 그는 연장으로 영란의 머리를 내리쳤다.
창문이 깨지고, 벽지는 피로 얼룩졌고,
냄비와 식칼, 밥상이 날아다녔다.
그는 그녀를 자신에게 순종하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무서운 협박과 폭언,
집안에 모든 것을 부셨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식에게 이런 모습을 안 보여 주기 위해서 방어했고.
소리조차 지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도망을 왜가!!"
"너만 가만히 잘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변하지 않았을 것 아니야."
자식을 위해 더 미친 듯이 숨죽여서 맞았고, 그 공포를 견뎌냈다.
그는 마치 자신이 키우던 도베르만처럼,
이빨을 드러내듯 눈을 치켜뜨고,
화분을 부수고 젓가락으로 흙을 후벼 파며
“다 죽여버릴 거야, 다 너 때문이야!”
소리를 질렀다.
영란은 말이 없었다.
자식에게 이 광경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모든 고통은 자신의 몸 안에서 끝내고 싶었다.
"내가 이 똑똑한 머리로 잘 다니던 대학도 포기하고,
너랑 잘 살겠다고 현장 나가서 막일하고, 나는 내 모든 걸 포기했는데, "
"너만 말 잘 듣고 내가 시키는 데로만 움직였으면, "
"내가 이렇게까지 변하진 않았을 것 아니야!!"
남편은 아니 그 사람 그 인간은 더 이상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고 더 이상
인간의 언어로 , 인간의 감정으로 대화할 수 없는 사람 아니 동물이었다.
그가 철제 막대기를 들고 다시 욕실 문을 향해 다가올 때쯤,
복도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대전에서 자주 도움을 주던 오빠의 후배였다 그 후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남자를 쓰러뜨렸고, 격렬한 몸싸움 끝에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골목을 흔들었다.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영란은 쓰러진 채로,
욕실 문 너머에서 울음을 터뜨린 둘째의 이름을 겨우 불렀다.
"형님 저 만석이입니다.
이 말씀은 안 드리려 했는데.."
형님 동생분이 어떤 개새기한테 맞고 쓰러져서
지금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단도리 잘하고 있겠습니다"
"대전병원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상황은 마무리돼 가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허락된 지옥이었다.
다행이었다, 눈앞은 흐릿했고
그 사람이 경찰에 붙들려 가는 장면을 보았고
정말 그 모습은 마치
개장수가 개를 잡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지막 한마디가
그녀를 더 소름 돋게 했다.
"여보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아니 사랑해."
나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고.
알게 모르게 오빠의 귀로까지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정말 말하고 싶지도 들키고 싶지도 않은 나의 모습이었는데
오빠한테 만큼은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하고 싶지 않았는데
과거의 내가 떳떳하게 살던 내가 당찼던 내가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면서 오빠에게 자부했던 내가
이런 모습 이런 상황으로 오빠에게 알려진다니
무언가 나의 영혼 한쪽을 잃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