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_12장 또 다른 시작 또 다른 그림자

팔자

by 아르칸테

충청도의 작은 마을. 고요한 풍경 속에,


영란은 마침내 남편 없는 삶을 시작했다. 아이 넷을 데리고, 조용히,


조심스럽게 다시 삶을 꿰매려 했다.


무너진 시간들 속에서 그녀를 붙잡아준 건 둘째 오빠였다.


오빠는 말은 투박했지만 항상 영란의 편이었다.


그렇게 오빠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어른이었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중.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전화 한 통


영란의 큰언니라면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영란아? 영란이 맞지?"


"나 큰언니야"


"강철이는 뭐 해? 강철이는 잘 지내고 있어?"


그렇게 그녀도 모르게 갈라져야만 했던 큰언니를 찾게 되었고


큰언니에게서 우리의 복잡했던 가정사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오빠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숨긴 채 살아가고 있었다.


오빠가 말하길 그때 그녀는 3살 인가 5살이어서 몰랐고


그냥 그렇게 알고 살 길 바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충격인 것은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과


친엄마는 그녀와 오빠를 찾기 위해 일을 하고

매일 밤마다


술로 하루를 버티며 지내다


우리를 찾기 1년 전에 간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식구들은 다시 모이게 되고


영란은


다시 한번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란이 식자재를 사러 간 시장 골목 한편,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구불구불한 골목 끝에서, 불쑥 나타난 사내는 이진철이었다.


“혹시, 영란 씨 아니세요?”


낯선 얼굴이지만 낯설지 않은 기세. 그 남자는 지나치게 반듯하고, 지나치게 다정했다.


며칠 후,


같은 동네 식당에서 다시 마주쳤고, 그 이후 매일 그녀 근처에 나타났다.


“영란 씨, 나 진짜 결혼하고 싶어요. 당신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녀는 수차례 거절을 했다


그러는 그는 포기한 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날은


가스통을 들고 영란의 집 앞에 나타나


“안 받아주면 난 여기서 죽겠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영란은 그 모습을 보고 피해버렸다.


그러나 사람을 단칼에 뿌리치지 못하는 그녀였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며


아이들에게 남자인 보호자


‘아빠’가 필요하다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었다.


이진철은 식당을 운영하며 건축 일도 병행하고 있었다. 이미 한 아이를 둔 돌싱이었고,

성격은 장난기 많고 수다스러웠다


그렇게 아이를 버리지 않았다는 남자라는 이유로,


마음은 여리고 착하니까 또 정을 아니까

자식을 안 버리고 키우고있는걸 꺼야 하며 또 한 번 결혼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진철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를 두려워하고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계산 능력, 돈의 흐름을 읽는 감각, 사람을 꿰뚫는 통찰력은


이진철을 압도했다. 아니 너무나도 뛰어났다.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당신은 어떻게 그런 건 다 알아봐? 진짜 무서워 죽겠어.”


영란은 암산으로 땅값의 추이, 임대수익, 운영 마진까지 정확히 계산하며 그를 놀라게 했고,

사업에 있어서만큼은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



이진철은 처음엔 이런 영란에게 존경을 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두려움은 남자의 본색을 자극했다.


그 남자는 영란보다 능력면으로 돈 버는 쪽으로 항상 위에 있고

싶었지만 영란에게 밀린다는 것에 분노했고


남자로서 자존감을 세우지 못하자 돈 관련 능력 관련 면에서

항상 부딪히기 일쑤였고 우기기 일쑤였다.


그렇게 매일 같이 일로 싸우고 이제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싸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란은 엄청난 성공을 했고 살고 있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라 이야기하고


모든 이가 영란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진철 모든 이가 부러워하는 만큼 질투를 했고 그녀를 이기고 싶어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자식이 고등학교에 갈 때쯤 오빠가 찾아왔다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인 오빠의 모습이 너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오빠 무슨 일 있어? 다리도 너무 붓고 병원 가봐야겠는데? "


"오빠 꼭 오래 살아야 돼, 알았지?"


그렇게 오빠는 그 말을 웃음으로 받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중 며칠 지나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빠가 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영란에게 그런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


그 말이 자꾸 맴돌아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간암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만 것이다.


그렇게 또 한 번 부모와 같은 오빠를 잃게 생겼고, 오빠가 살아있는 동안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때까지 해주지 못했던 밥도 해주고 놀러도 가고.


그녀의 자식들이 안마도 매일 해주었다.


살아나길 바랐다 기적은 있으니까.


하지만 기적은 저 빛 속으로 묻히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해야만 했다.


나는 너무 복잡한 마음과 터질 것 같은 심장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곳엔 큰언니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빠 밖에 없었다. 내유일한 가족 아빠 같은 사람 엄마 같은 사람.


내가 막 울고 있을 때쯤 오빠는 눈을 뜨고 나를 불렀다.


멎일 것 같은 숨으로 천천히 이야기했다


“영란아, 저 사람, 네 남편 말이다. 조심해라.


겉 다르고 속 달라. 네가 저 사람보다 백 수천 배 똑똑한 거 아는데,


사람 마음은 몰라서 넘어가는 거야. 꼭 조심해야 돼 다 믿지 마


저 놈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의리도 없고,


사람이 많이 야비하다."


"꼭, 조심해라."


이것이 오빠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슬픔에 잠길 틈도 없이 일을 해야 했고 오빠의 말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언이 되었다.


영란의 아들이 군대를 간 사이, 집 안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이진철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외출했고, 어느 날부터인가 향수 냄새가 묘하게 섞여 돌아왔다.


그녀는 말없이 냉장고에 물을 넣으면서 그를 바라봤다.


“건강검진 어디서 했는데?”


“응? 아.. 대전 쪽 병원.”


“그래? 근데 거기 검진표 왜 안 가져왔어?”


이진철은 아무 말 못 했다. 며칠 뒤, 영란은 직접 병원에 확인했고,


거기엔 그의 기록이 없었다. 그날 밤, 그는 늦게 들어왔고, 영란은 단 한마디만 했다.


“밖에서 헛짓거리 하는 건 좋은데 걸리지 마라..”


그 이후 집안은 전쟁터였다.


고등학생이던 셋째, 중학생 딸 둘은 매일 두 사람의 싸움을 들으며 자랐다.


이진철은 점점 더 뻔뻔해졌고,


엄마는 절대로 아이들 앞에서는 소리치지 않았지만 방 안에서는 매일 울음이 터졌다.


“난 왜 이렇게 인생이 험하냐.. 난 그냥 애들만 잘 키우고 싶었는데..”


"참,, 내 팔자 왜 이러냐."


그렇게 충청도의 집 안에선, 또 하나의 지옥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 사람의 폭력,


그 사람의 뻔뻔한 거짓말


그 사람의 죄책감 없는 얼굴


하지만 이번엔, 그녀는 예전 같지 않았다.


무너지는 대신, 계산했고, 파악했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진철 조차도 결국,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의 어두운 그림자가 밝혀지고


그로부터 5개월 후 서로 갈리 지게 되었다.

하지만 영란은 같이 살았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마지막으로 인간 대우를 해주었다.


나쁜 짓은 나쁜 짓으로 묻어두고,


그래도 그녀의 옆에서 고생한 보람으로 재산의 절반정도를 그에게 주면서


잘살고,


“사람같이 살아라”라는 말을 남긴 채,


그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이진철은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영란을 만나


영란이 이룩한 모든 것의 절반을 얻은 채


바람난 여자와 같이 살게 되고,

그 후로도 정리되지 않는 문제들로 영란을 괴롭히곤 했다.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저 여자가 잘못한 거 아니야?"


"어떻게 재산을 절반을 주겠어 분명히 남자가 잘못한 게 아닐 거야


상식적으로 말이안 돼.."


"맞아. 거기 남편이 하는 이야기 들었는데 그 여자가 바람난 거래."


하지만 이 모든 추문에도 영란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지 그녀는 이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진실은 밝혀진다"


그녀가 굳이 떠들지 않아도 해명하지 않아도,


진실은 밝혀진다.


그렇게 그런 소문들과 함께 이진철과 의 관계도 조금씩 종료가 되어가는 중이었다.